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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May 28. 2019

가슴이 철렁

못난 집사를 용서해

장장 5주 치나 됐던 다래끼 약을 드디어 다 먹였다.

그런데 약을 끊은 첫날 저녁,

갑자기 냥비가 아침에 먹은 사료를 다 토해내고 말았다.

평소에 헤어볼도 토하지 않는 아이인데 갑자기 사료를 토하다니 -

어찌나 놀랐는지 지금도 가슴이 철렁한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료를 다 토해내고 밤에 다시 한번 물을 토하더니 하얀 거품토까지.

그날 냥비는 그렇게 세 번이나 구토를 했다.

시간이 늦어서 24시간 병원이라도 데려가 볼까 했지만

일단 구토는 멎었고, 저녁을 굶겼으니 아침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걱정되는 마음을 겨우 부여잡고 힘들게 그날 밤을 보냈다. 


새벽에는 속이 좀 편해졌는지 물도 좀 마시고, 더 이상 구토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걱정이 돼서 눈 뜨자마자 냥비 상태를 살피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나 약을 먹다가 끊어도 이런 일이 생기나 싶어서 담당 의사에게 물어봤으나

그런 경우는 없다고... 장염이나 다른 질환일 수도 있다고 했다.

괜찮으면 저녁까지 지켜보고, 밥을 안 먹거나 토하는 증상이 또 생기면 내원하라는 말과 함께.


하긴 약을 끊었는데 부작용이 생기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겠지...

평소에 냥비가 밥을 빨리 먹는 편도 아닌데, 갑자기 소화불량이 온 건 아닐까 온갖 추측을 다해봤지만

도무지 왜 구토를 한 건지 좀처럼 짐작 가는 데가 없었다.

고양이는 이틀 이상 굶으면 간이 나빠진다는 얘길 들은 것 같아서 

식욕이 사라졌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그날 냥비가 저녁에 준 유동식을 잘 먹어줬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음날 모래 속 냥비의 응가를 치우다 나는 기절할 뻔했다.

냥비 응가에서 웬 이물질이 나왔는데 고무 재질이었다.

'도대체 이 고무가 뭔가... 아니 얘가 고무를 대체 왜 먹었지? '

'아무거나 먹는 애가 아닌데 이런 걸 어디서 어떻게 먹은 거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아차!!! 하고 머릿속에 스치는 게 있었다.

바로 알약을 먹일 때 쓰는 필건이었다.

손으로 먹이는 것보다 더 편한 것 같아서 냥비에게 약을 먹일 때 필건을 사용했다.

그런데 그 앞에 약을 끼워 고정하는 고무패킹이 응가에서 나온 것이다.


'.... 아니 이게 여기서 왜 나와...'

설마 내가 약을 먹이다 약과 함께 튕겨져 들어갔는데 그냥 모르고 있었다는 건가.

생각해 보니 약을 끊기 한 3일 전부터 앞에 끼우는 고무가 사라졌었다.

청소하면서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질 않길래 

내가 못 본 사이 냥비가 발로 차서 어딘가로 굴러들어갔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먹었을 거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게 3일 정도는 됐을 텐데, 그래서 마지막에 이틀 정도는 손으로 그냥 먹였는데...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직접 먹었을 리는 만무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약과 함께 튕겨져 들어갔을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근데 그걸 지금껏 몰랐다니 이 얼마나 한심하고 답 없는 집사란 말인가.

정말 기가 막혀서 원...

그게 변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대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

구토하고 숨기 바빴던 냥비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미안함과 속상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말도 못 하고... 얼마나 속이 답답하고 아팠을까.

그러니 생전 안 하던 구토까지 하고...

제 몸이 평소 같지 않으니 녀석도 이상했겠지.

정말이지 너무 미안해서 한참 동안 냥비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가장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기껏 약을 먹었는데도 크게 달라진 건 없고

괜히 5주 동안 약 먹느라 고생만 시킨 것 같아서 안 그래도 미안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자책감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수술하는 것보다는 약으로 치료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데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걸 그랬다.


다행히 냥비는 그러고 나서 속이 좀 편안해졌는지, 밥도 잘 먹고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약 때문에 폭발하던 식욕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조금이라도 냥비가 잘못됐더라면 난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천만다행이었다고 밖에는...


아무튼 이번 사건으로 냥비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나의 부주의에 대한 반성의 시간 또한(...).

아직도 제대로 된 집사가 되려면 멀었구나... 하고.

그래도 이 정도로 괜찮아져서 다행이다, 정말.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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