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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Apr 02. 2019

한강의 낭만 고양이

우리의 첫 만남

냥비를 만나기 전,

나는 1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낸 강아지를 무지개다리로 보내고

깊은 상실감에 빠져 펫로스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뭘 해도 그 슬픔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집 근처 한강변으로 매일 저녁 운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강변을 한참 걷다 오면 그래도 제법 기분 전환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누비며 운동하는 사람들 틈에서

간간히 그곳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들이 보였다.


사실 난 고양이에 대해 잘 몰랐다.

기본적으로 동물을 좋아해서 고양이를 싫어한다거나, 적대시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

굳이 따지자면 '강아지파'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한강변에는 꽤 많은 고양이들이 있었고, 그 녀석들을 챙겨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유독 내 눈에 밟힌 한 녀석이 있었으니 -

바로 나의 첫 고양이. 냥비였다.

공원 쪽에 있던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리,

혼자 물가 쪽에 덩그러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꼬마 고양이.

이때만 해도 내 식구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


공원 쪽에는 밥그릇이 있었지만, 혼자 지내는 냥비가 있는 곳에는 밥그릇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에 홀린 듯 이때부터 나는 운동하러 나갈 때마다 고양이 사료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집사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르는 고양이 초보였지만,

왠지 냥비를 챙겨주고 싶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처음 냥비를 봤을 때는 몸집이 꽤 작았다.

이제 막 어미 품에서 독립을 했을 법한 4-5개월 정도 돼 보이는 아기 고양이였다.

사료를 줬을 때, 며칠은 굶은 애처럼 허겁지겁 먹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번에 그렇게 많은 양의 사료를 먹다니 -

대체 얼마나 굶었던 건가 싶었다.

그렇게 약 두 달 동안 녀석을 챙겼다.

운 좋게 녀석을 보는 날도 있었고, 보지 못하는 날도 있었지만

늘 같은 곳에 사료와 물을 두고 왔다.

녀석 덕분에 매일 운동가는 시간이 너무나 기다려졌고 즐거웠다.

고양이가 이렇게 귀여운 동물이었다니.

이미 마음만은 집사가 되어버린 상태...

호기심 대마왕

나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지만, 주변에는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그중 한 친구가 내게 해 준 말이 있는데 -

고양이는 '묘연'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주인이 될 사람을 자신들이 택한다나 뭐라나.

즉, 묘연이 있다면 집사로 '간택'을 당한다는 것.

정말 그런 게 가능할까 싶었다.


그런데 그게 바로 묘연이었을까 -

사람들을 경계하고 곁을 잘 주지 않던 냥비가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부비부비도 하고 만지는 걸 허락했으며, 마치 원래부터 잘 알던 사이처럼 뒤를 따라오기도 했다.

더욱 신기한 건 모든 사람에게 그렇진 않았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게

'키우는 고양이세요?'라고 묻기도 했다.

이때부터 애교쟁이

그렇게 가을이 지나 겨울이 찾아왔고,

한강에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날 나는 큰 결심을 했다.

가족들의 동의를 얻고 냥비를 집에 데려오기로.


그렇게 집사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

당시 다른 냥엄마가 냥비를 발견하고 찍어주신 사진 :)
한강 경치를 감상하는 그야말로 낭만 고양이 시절 :)
지금도 쪼그려 앉으면 작은데, 이때는 더 작았다.
다른 냥엄마가 주는 밥도 냠냠냠
이때도 귀여웠던 엉덩이
이곳저곳을 누비던 한강의 무법자
너는 이때를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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