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집고양이였던 것처럼
극심한 한파 예고에 냥비를 이동장에 넣어 데려오던 날.
시간이 늦어 병원은 다음날 아침에 가기로 했다.
낯선 집, 낯선 방 안에 내려놓자마자
냥비는 당연한 듯이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데려오기 전에 주의해야 할 점이나 준비해야 할 것들을 찾아봤던 터라
급하게 화장실부터 마련해뒀다.
억지로 나오게 하지 말고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게 좋다기에
침대 밑에서 꼼짝하지 않더라도 모른척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려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눕자
슬그머니 느껴지는 움직임.
오도독오도독 사료 씹는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들은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꼼짝 않는 일이 다반사라던데
오자마자 나와서 사료를 먹다니
대체 얜 뭐지(...)
내심 기쁘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아는 척이라도 했다간 다시 침대 밑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아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냥비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아직 나이는 어려 보였지만 길 생활을 했으니 질병이 있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됐다.
냥비를 꼼꼼히 살피던 수의사는 아이가 6개월이나 7개월령쯤 되어 보인다고 했다.
길고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진드기도 없고 귓속도 깨끗하다며 놀라는 눈치였다.
그 말을 듣으니 혹시 누군가 키우다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생각은 이후로 몇 번 더 병원을 가면서 바뀌었지만...;)
부끄럽지만 데려올 때까지 냥비의 성별도 확신하지 못했던 나는 이날에서야 냥비가 여아라는 걸 알았다.
특별히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됐다.
일단은 몇 가지 예방 접종만 하고 집으로 왔다.
한강에 있던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리 냥비는 TNR이 되어 있지 않아서
예방 접종이 끝나는 대로 중성화 수술을 해주기로 했다.
온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으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보통 길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은 바뀐 장소가 자신의 영역임을 인지하는 데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까지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웬걸...
병원에서 오자마자 냥비는 방에서 바로 나와 거실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번엔 소파 뒤로 쏙 - 들어갔다.
그래도 두 달 동안 챙긴 보람이 있는 걸까.
이 녀석 적응력이 최고다.
'그래, 어디 맘껏 누비고 다녀봐. 앞으로 네가 살 집이니까.'
그러고 보니 당장 이름부터 지어야 했다.
'음... 다른 곳보다 먼지가 많은 침대 밑, 소파 밑에 상주하는 시간이 기니까
그냥 먼지라고 해버릴까?'
이름이 참 중요한 건데 이렇게 대충 결정짓다니 -
난 몹쓸 집사였구나(깊은 반성)...
그렇게 지금의 냥비는 '먼지'가 되었고,
하루를 채 못 넘기고 다시 개명을 하게 되는데.......-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