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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Oct 30. 2024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사람냄새 나는 편의점

누군가 나에게 손을 내민다면 그것은 바로 위로, 배려, 따뜻함일 거다. 바로 요즘 내가 잊고 살았던 것.

두 달간 cu알바를 했다. 보통 편의점은 최저시급을 주는데(9860원) 여기는 11000원을 준다 해서 지원했다. 그래, 회사는 참 두렵지만 알바는 뭐. 지원하면 붙는다. 왜냐? 난 인간 알바몬이니까


그렇게 오랜만에 cu를 했다. 이전에도 1년 넘게 gs25를 한 적도 있고 3개월간 cu 야간을 한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만두집, 엽기떡볶이, 파리바게트... 다양하게 오래 했었다.

첫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의심을 했다. 점장님이 과연 좋은 사람일까, 이 편의점은 괜찮을까.

내가 일했던 편의점 앞에는 엄청 큰 건물이 공사를 하고 있어서 공사장 인부들이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렇기에 늘 보던 사람, 차츰 얼굴이 익숙해지는 손님들도 생겨났다.


처음 물류가 왔을 때 정말 많이 오는 걸 보고 놀랐지만 항상 점장님이 그 시간마다 도와주셔서 그리 힘들진 않았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점장님이 옆 카페에서 두 번이나 커피를 사다 주셨다. 의아했고 감사했다. 둘째 날 왜 커피를 또 사다주냐는 내 물음에 점장님은 원래 본인이 커피를 잘 사준다 하셨다. 그 말에 익숙해지지 않으려 했다. 너무 감사했다.



내가 일했던 편의점은 물류가 정말 많았는데 그게 어느 수준이냐면 이 쪼그마한 가게에 물류가 왜 이만큼 오는 거지...? 의 수준.. 아니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지, 어쨌든 내가 일을 하고 3주 정도가 지나 물류가 줄긴 했지만 그전엔 혼자 하긴 정말 힘든 수준이었다. 어느 날은 혼자 그 많은 물류를 감당하게 되었는데, 이때 시급이 왜 11000원이었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난 이 편의점이 정말 좋았다. 별말 없이 유령처럼 왔다 사라지는 점장님, 근데 수줍게 가끔 말을 걸어주셔서 그게 또 웃긴 포인트랄까. 꾸밈없이 담백하고 쿨한 매력이 있으셨다. 쿨한데 따뜻했다. 물류를 가져오시는 기사님 또한 좋은 분이셨다. 내가 좀만 더 다녔으면 친해졌을 것 같은데, 그걸 못해서 약간 아쉬운 느낌이다. 교대했던 오전근무자님도 재밌으셨다. 한 달 정도 바쁜 시기였을 때 두 시간을 같이 일했었다. 물론 그때가 손님이 줄어드는 시기여서 둘이 떠드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참 별별 이야기를 다했다.


마감에 교대하는 근무자분도 좋았다. 하루는 8700원의 시재가 비었는데, 내가 출근을 했을 때부터 비어있었고 오전 시재기록을 보니 그때도 8700원이 비어있었다. 그 말인즉슨 그 전날의 교대자가 펑크 낸 금액이라는 것이다. 난 오전에도 8700원이 비어있다는 것을 확인했기에(나는 오후파트다) 내가 채우지 않은 채 8700원이 비었다고 기록만 한채 퇴근했는데 그다음 날 시재가 다시 0원으로 맞춰져 있었다. 시재가 0원이라는 것은 누군가 빵꾸난 8700원을 메꿨단 얘기인데, 알고 보니 내 다음으로 교대하는 마감근무자님이 그 돈이 내가 잘못해서 빵꾸난 줄 알고 메꾸신 거다. 근데 아무 말씀 없이 메꾸셔서 너무 놀랐다. 그래서 내가 그거 어제 오전부터 비어있어서, 제가 점장님께 말씀드렸는데!!라고 했더니 허허 웃으셨다. 아무래도 오전 때부터 비어있었다는 기록을 못 보신 것 같다. 내 잘못이라 생각하셨던 거다. 근데 그걸 아무 말 없이 덮어주려 했다니, 그때 느낀 그 의아함과 그 감사함을 또 뭐라 표현할지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


손님들도 좋았다. 내가 그동안 편의점을 하면서 손님을 좋아해 본 적이 없는데,.. 아까 말했듯 대부분이 공사장 인부들이었는데, 3-4명 아저씨들 이서 막 수다 떠시면서 계산대로 오시는데, 그 수다가 정감 있는 수다였다. 쿨하게 계산만 하고 가시는 인부들이 대부분이었다. 미리 카드를 준비하셔서 계산이 진짜 빠르다. 인사해 주시는 손님들이 많았다. 물류정리하고 있다 못 들어도 이해하고 기다려줬다. 그 편의점에선 내가 계산하는 기계가 아니고 사람이었다. 대개 담배는 4500원인데 4800 원하는 전자담배가 있다. 그 4800원짜리 전자담배를 구매할 때 꼭 5천 원 현금을 내미는 손님이 계셨는데, 내가 그때마다 500원을 줬다. 그때마다 그 손님은 아잇! 또 500원 줬네 ㅋㅋㅋ라고 하셨다. 그렇게 사람 냄새나는 그 편의점이 점점 좋아서 그만둔다고 했던 게 잘한 결정이 맞겠지라고도 생각했다. 물론, 후회하진 않는다. 아직은..



어떤 손님은 동전을 다발로 갖고 오시고, 어떤 손님은 봉투를 꼭 계산하고 난 뒤 달라고 말하셨다. 어떤 손님은 cu 키핑을 즐겨하셨고, 어떤 손님은 나에게 2+1의 초콜릿을 주셨다. 그 모든 손님의 대부분이 인부들이었다. 나는 그 모든 인부들에게 정들었다.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발 다음 주 월요일에 내가 없어서 어, 그 아르바이트생 그만뒀네라고 하는 인부가 한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


이렇게 보면 사는 건 또 별거 아닌 듯싶다. 내 맘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그 cu가 참 좋았다.

7시간이었던 근무시간이 6시간으로 줄면서 내 시급도 당연히 줄었다. 그게 내가 그 좋았던 cu를 궁극적으로 그만둔 이유지만, 점장님과 연을 이어가고 싶어 땜빵이 있을 때 날 쓰라고 했다. (원래 난 땜빵을 싫어한다)

내가 그만둔다고 말했던 그때, 점장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 채 괜찮다고 하셨고, 마지막날 찾아와 나에게 마지막으로 커피를 사주셨다.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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