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마음 풍경(4)
-멸치
-삶의 깊은 맛을 위하여
멸치
조현숙
육수 건더기를 건져내다가
퉁퉁 불은 멸치의 희멀건 몸을 본다
살점이 허물어진 저 몸도
한때는 파도와 싸우며 바다를 달리던
푸른 물고기였을 것
달빛이 물결 위에 부서지는 밤
은빛 가루와 비늘을 섞으며 대양을 꿈꾸다가
그물에 걸리던 날
지느러미를 접으며 울었을 것이다
그러다 햇볕 속에 누워
몸속에 차 있던 바람과 파도의 흔적
소금기만 남기며 말라 갔을 것이다
오늘은 끓는 물속 다시마 사이를 헤엄치며
옛 기억을 떠올렸을까
마른 몸속에서 우러나오는 바다
한 그릇 국물을 위해
한 생의 깊은 바닷속을 쏟아 놓는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든 국의 베이스로 멸치 육수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걸쭉하고 기름진 맛보다는 깔끔하고 맑은 맛을 선호하는 가족들의 입맛도 친정엄마로부터 영향을 받은 내가 길들였을 공산이 크다.
오늘도 멸치 육수를 끓이고 난 뒤 멸치와 다시마 건더기를 건져내는데 퉁퉁 불은 멸치의 몸이 문득 가슴 한편을 아릿하게 했다.
이렇게 허물어진 몸으로 음식쓰레기 통 속으로 버려지는 멸치도 한때는 저 넓고 푸른 바다를 누비며 헤엄치고 다녔겠지. 거대한 파도도 두렵지 않은 듯, 날렵한 몸을 반짝이며 수많은 멸치 떼 속에서 찬란한 은빛 군무를 추었을 것이다.
달빛 환한 밤이면 반짝거리는 물결에 은빛 제 몸을 뒤섞으며 세상의 아름다움에 몸을 떨기도 했겠지.
그런 밤, 그물에 걸려버린 걸까. 몸부림쳐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절망으로 파닥 거림마저 쉽게 포기한 걸까.
사람들은 잡아 올리면 바로 죽어버리는 멸치에게 성질이 급해서 그렇다는 멸시의 뜻을 담아 멸치라는 이름을 붙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건 살아서 해체 되는 오욕을 맛보느니 죽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멸치의 자존심 아니었을까.
가망 없어 보이는 현실 앞에서 몸부림쳐 본 적 있는가. 가망 없는 몸부림을 바라보는 인간은 또 얼마나 잔인한가.
멸치는 잡힌 즉시 배 위에서 쪄서 육지에서 말린다. 매끄럽게 빛나던 몸은 바람과 볕에 말라 쭈글쭈글 마른 몸으로 변한다. 크기도 작고 무기도 없어 먹이 사슬의 최하위에 사는 멸치가 그 작은 몸 때문에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하지 않고 최후까지 온전한 형태로 몸을 지켜 온 것도 삶의 역설이겠지.
오늘 내가 끓이는 육수 속에서 멸치는 다시마 사이를 헤엄치면서 떠나온 바다를 떠올렸을까. 은빛 비늘 반짝이며 떼 지어 춤추던 벗들과 청춘의 꿈을 생각했을까.
멸치가 품고 온 넓고 푸른 바다가, 햇볕 속에서 말라 가던 눈물이, 하늘로 펄떡이며 튀어 오르던 그의 꿈과 빛나는 춤들이, 이 작고 메마른 몸속에 숨어있다가 마지막 숨을 거두며 풀려나오는 중이다. 육수 맛이 깊어지는 건 이 모든 것들이 빚어낸 한 생의 눈물 때문일 것이다.
멸치처럼 작고 마른 몸으로 병석에 누운 엄마를 보며, 젊은 날 접어버렸을 엄마의 날개를 생각한다. 홀몸으로 사 남매를 키우느라 엄마는 꿈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세상을 향한 욕망과 감각이 깡그리 죽어버린 것처럼 살았겠지. 오늘 우리 사 남매가 이렇게나마 마주 보고 웃으며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그런 엄마의 희생 덕분일 것이다. 엄마가 한 생을 다 바쳐 우려낸 삶의 육수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몸과 맘을 살찌우며 살아온 거다.
건져 낸 멸치를 보며 생각한다. 내게도 우려낼 뭔가가 있을까. 누군가를 위해 맛을 낼 수 있는 내공이 내 속에도 있을까. 최소한 멸치만 한 삶이라도 살아낼 수 있는지 되돌아보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