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익는 마음 풍경(3)
-도마
- 한 끼의 식사가 전하는 말
도마
조현숙
조기를 손질한 뒤 도마를 씻다가
칼자국 무수한 도마의 몸을 본다
다져지고 으깨지고 잘려 나간 흔적들
비명과 핏물로 얼룩진
도마의 실금을 따라가다
날마다 금이 가는 당신을 만난다
금 간 자국마다
칼날을 받아낸 시간이 새긴 비린내
비린 시간 속에 매운 눈물을 풀어 넣고
파도와 바람을 썰어 끓인 매운탕 한 그릇
따뜻한 한 끼를 위해
칼금이 차려 낸 저녁 식탁이다
저녁에 매운탕을 끓이려고 재료를 다듬었다.
도마를 꺼내 씻으려는데 문득 무수하게 자국이 난 칼금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무수한 칼질에 깊이 난자당한 흔적이 도마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 칼금들을 도마는 어떻게 다 받아내었을까.
애초부터 칼질을 받아내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게 슬프고 아프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세상의 맛있는 음식들은 모두 그 도마가 칼날을 받아내어 만든 것이 아니던가.
도마 위에서 함께 잘려나간 식재료들, 생선이며 고기며, 채소들도 그 칼금과 함께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채워 주었을 것이다.
우리가 평안한 마음으로 누리는 작은 행복들도 그런 거 아닐까.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기쁨이나 편리함도 그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나 땀이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 그러니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빚진 존재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보이지 않는 낮고 낮은 곳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하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그나마 돌아가는 것이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수고한 도마의 칼금을 헤아리며 누군가에게 자꾸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