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마음 풍경(2)
-개망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복수

by 조현숙Jenny

개망초


조현숙




개망초 무성한 묵정밭을 지나며

오래 슬픈 이름*을 견뎌온

꽃들의 무성한 반란을 바라본다

쓸모없음이 죄가 되는 세상에서

쓸모없는 몸짓들이 모여

이처럼 눈부신 꽃을 피우다니

절망의 이름을 붙여준 세상에게

복수란 이런 거라고

짓밟히고 베여도 끝내 살아서

세상 한 편을

이토록 환하게 밝히고 서 있다니


* 개망초: 개(犬)에 망할 망(亡)을 붙인 이름




개망초가 지천으로 피는 계절이 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나 척박한 토양에서도 기죽지 않고 길가든, 밭둑이든, 공터든, 어디서나 피어나는 이 흔한 들꽃을 나는 좋아한다. (잡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들꽃이라 부르고 싶다.)

하얀 꽃잎이 노란 중심부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계란을 닮았다 해서 계란꽃이라고도 불리는 개망초….

노랑과 하양의 꽃송이들이 초록 이파리와 어우러져 흔들리는 풍경을 보면 내 속에서도 초록 생명이 차오르는 것 같다. 이 작고 예쁜 꽃에게 왜 사람들은 ‘개망초’라는 미운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개망초’라는 이름에는 슬픈 유래가 있다. 망초와 개망초는 둘 다 구한말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에 들어왔는데 아마도 철도공사용 침목으로 들어온 미국산 목재에 따라왔을 가능성이 높다. 생전 보지 못한 풀이 번지는 걸 보고 백성들은 그때가 일제 침략기여서 나라를 망하게 한 풀이라는 뜻으로 분풀이라도 하듯 ‘망초亡草’ 라 불렀다고 한다. 망초는 억센 번식력으로 농부들에겐 밭농사를 망치는 ‘망할 풀’로 인식되어 더욱 미움을 받았다. 망초와 비슷하게 생긴 개망초는 거기에 더해 천하다는 의미의 접두사 ‘개’까지 붙었으니 꽃의 입장에서 이보다 치욕적이고 슬픈 이름이 또 있을까.

그러나 풀꽃이 무슨 죄가 있을까. 꽃은 그냥 꽃으로 무심하게 피고 진다. 그것이 꽃의 일이므로.

물질적, 세속적 성공으로 인간의 존재가치를 재단하는 세상은 작고 힘없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성공하지 못한 인생은 쓸모없는 삶으로 치부되고, 멸시와 천대의 시선 앞에서 약자들은 분노하고 좌절한다. 때론 다시 일어서지 못할 만큼.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무너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누가 어떻게 부르든 당신은 당신 자체로 아름다운 존재라고. 연약한 존재가 폭력적인 세상에 가장 크게 복수하는 방법은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끝까지 살아내는 것이라고. 그 어느 것도 끈질기게 일어나는 생명을 이길 수는 없을 터이니.

끝까지 견디는 자가 결국 진정한 승리자일 것이다. 베이고 짓밟혀도 기어코 살아내는 일, 절망 속에서도 여린 빛으로 세상 한 편을 밝히는 일, 그것이 바로 미움과 갈등 가득한 이 세상을 이기는 가장 아름다운 복수가 아닐까.

이 뜨거운 여름, 온천지에 눈부시게 꽃을 피우는 개망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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