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의 직장 생활에 쉼표를 찍고, 떠나는 이유
버킷리스트 따위는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굳이 버킷리스트를 써서 소중히 간직하고 이루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걸 언제든 할 수 있을 만큼 만족스러운 삶.
'그런 삶이 꽤 어려운 거구나.'라고 깨달았을 때, 서른 살이 되기 전 하고 싶은 세 가지를 정했다.
'1억 모으기, 세계일주, 책 쓰기'
1억 모으기는 그냥 서른 살에 1억 쯤 모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세상 물정을 몰랐다.)
세계일주는 멋있어 보여서.
책 쓰기는 원래 글이나 쓰는 한량이 꿈이었어서.
큰 생각 없이 다이어리에 적어 놓은 저 세 가지는 내가 힘들 때면 꼭 이뤄야 하는 목표가 되었다.
'나는 힘들어서가 아니고, 버킷리스트를 이루려고 그러는 거야.'라고 포장할 만한, 좋은 변명거리.
첫 번째를 이루고 난 뒤 바로 두세 번째 변명을 집어 들었다.
세계일주 혹은 세계여행, 혹은 장기여행, 그리고 그 내용을 책으로 발간.
난 이 곳으로 도피하기로 결정했다.
생각은 오래 했고, 결정은 충동적이었다.
마케터로 6년 남짓을 일했다.
사실, 원래부터 마케팅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나는 pd나, 작가, 기자가 되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사실 pd, 작가, 기자가 되려고 공부할 만큼의 심적/경제적 여유가 나에겐 없었다.) 흘러 들어와서, 6년을 일했다.
회사는 50명 남짓한 인원이 일하던 스타트업에서, 1000명이 넘는 직원이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고,
나는 패기 넘치고 버릇없고 최저임금도 못 받던 신입사원에서 두 번의 승진을 하고 나쁘지 않은 임금을 받는 관리자가 되었다.
회사의 성장이 꼭 나의 성장인 것 만 같았다.
워커홀릭처럼 일만 했다.
매일매일 야근을 했다. 철야도 종종 했고.
그래도 재밌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좋았고, 바로 눈에 보이는 성과들이 가슴 뛰었다.
월요병도 없었다. 긴 휴가를 보내면 회사에 가고 싶었다. 내가 쉬던 시간에 회사에서 일어난 일들이 궁금했다.
긴 슬럼프가 온지는 2년쯤 되었다. 2년을 꾹 참고, 견뎠다.
견디는 것이 강한 것이라고 믿으면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을 앞으로는 위로하고 뒤로는 나약하다고 여기면서.
슬럼프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참을 수 있는 역치가 낮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업무 환경에도 나는 자주 폭발했고, 자주 울었다.
그리고, 평소와 같던 그 날, 울면서 '또' 말했다.
"퇴사하겠습니다."
회사는 내게 휴직을 권했다.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있다.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자기 몫의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세상이 정한 안정적인 삶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나는,
평범해지려고 죽도록 노력했던 나는,
가장 평범해질 수 있었던 시기에 가장 불안정한 길을 선택했다. 자의로.
M은 돌아와서의 삶이 두렵지 않냐고 물었다.
두렵다. 나는 늘 오지 않은 불행까지 대비하며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돌아와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회사에서의 내 자리도, 1년간 놀다 온 사람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도, 내가 두고 가야 하는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부모님도, 받지 못할 월급도, 그 이후 펼쳐질 정해지지 않은 내 인생도.
그러나, 지금처럼 사는 게 더 두려웠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평생 내가 원하는 것은 한 번도 못하고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갑니다. 도피와 여행, 도전과 도박 사이를.
(이 글은 떠나기 전인, 2018년 6월에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