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를 가기 위해 휴직을 했다.

아니 어쩌면, 휴직을 하기 위해 세계일주를 간다.

by jenny

나는 원래 회사 욕과 상사 욕은 하나도 하지 않는 회사원이었다. 그게 가능한 가 싶은데 그랬다. 상사가 특별한 일 없이 매일매일 야근을 시켜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당한 일을 시켜도 우리 회사는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사람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존재하는 회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런 것쯤은 괜찮다고. 해도 된다고.

난 앞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는 뒤에서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속해있는 조직을 욕하는 건 나를 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 사람들은 물론 친구들에게도 회사 욕을 하지 않았다.


회사와 개인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오래오래 직장인 생활을 할 수 있는데 그런 기본적인 부분을 몰랐다. 그래서 버틸 수 있던 건데 그래서 힘들었다. 성공하면 기뻤고 생각했던 것처럼 안되면 나는 자주 무너졌다. 그냥 일이 좀 잘 안 풀렸을 뿐인데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여겼다. 잘되면 운이 좋았을 뿐인데 자만했던 건 덤이고.


그리고 상처를 꽤 많이 받았던 '그'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정서적으로 궁지에 몰려있었다.



마음이 다했다.

그깟 회사를 다니는 일에 마음을 다 쓰다니. 비웃을 지도 모르지만 스타트업이 좀 그렇다. 마음을 다 쓰지 않으면 절대 3년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확신한다. 적절한 보상이 가능하지 않으니 직원들의 열정이 아니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힘든 구조고 그 열정에 대한 보상을 해줄 수 없으니 다른 방법으로 더 열정을 자극한다. 그래서 일정기간 이상 재직 후 퇴사하는 사람들은 정말 기진맥진한 상태로 나간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마음은 다했는데 몸은 회사에 있는 날이었다. 나는 아주 작은 사건에 폭발했고 다시 퇴사를 말했다. 세계일주를 변명 삼아서.


저 요즘 상태가 심각하게 안 좋아요.
정신과 다니면서 회사에 붙어있을까요. 아니면 그만두고 여행 갈까요?


내가 대성통곡하면서 퇴사를 말할 때도 절대 안 된다며 꿈쩍도 하지 않았던 상사는 그 말에 움직여 휴직을 권했다. 나는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설득했고 나는 몇 가지 조건을 걸었다. 수락하지 않을 것 같았던 조건을 그가 수락했고 나는 퇴사 대신 휴직을 했다. 무리일 수도 있는 조건을 들어준 건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한 회사의 사과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마지막 출근을 하는.

만감이 교차했다.


휴직을 하던 날, 내 책상에서는 015B의 이젠 안녕이 울렸고(이 노래는 떠나는 사람을 보낼 때 부르는 우리 부서의 일종의 유행가였다.) 내 손에는 마음이 꾹꾹 눌러 담긴 롤링페이퍼와 선물이 들려있었다. 나에게 세계일주는 내가 살던 세상에서의 도피였는데, 도망가는 나를 응원해주고 1년 간 함께하지 못하는 걸 슬퍼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따뜻했다. 떠나기 싫다는 감정이 들뻔했고, 나는 조금 울었다.

조금 더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서 돌아오겠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정든 사무실을 떠났다.


출발하기까지 13일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이 글은 떠나기 전인, 2018년 6월에 작성한 글을 재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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