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설픈 비건 Oct 27. 2019

거창하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으론 택도 없어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몇 개월 전 무책임한 소비로 짊어지게 된 빚을 기적적으로 갚고 꽤나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우연찮은 기회로 따오게 된 프로젝트덕에 카드대금지불일 당일 오전에 선금을 받아 몇 시간 차이로 신용불량자의 신분을 면했다. 그렇게 한 달내내 나를 유령처럼 쫓아다니던 빚을 갚고도 한참이나 돈이 남았다. 처음으로 영앤리치가 된 기분으로 친한 친구 생일로 비싼 코스요리도 사주고 룰루레몬 레깅스도 색깔별로 사고 그랬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천 만원대의 금액에 한껏 신이 나서 그게 그렇게 큰 돈인 줄 알았다. 물론 그렇게 큰 돈 맞다. 내가 그딴 식으로 쓰지만 않았더라면.. 


천 만원대는 써도써도 끝이 안 나는 화수분 같은 돈 인줄 알았다. 학생 시절 시급 몇 천원으로 곱셈을 해서 알바를 시작하기도 전에 벌 수 있을 돈을 계산하고는 반올림하여 백만원이 나오면 흐뭇해하던 금액과는 차원이 다르게 느껴졌다. 나의 소비수준에서 아무리 비싼 걸 해봤자 소고기 먹기나 책 잔뜩 사기가 전부다. 몇 백만짜리 명품백 살 베짱은 가져본 적도 없거니와 집이나 차같은 건 아직 꿈도 못 꿀 나이이고 그런 식의 레벨에서 생각을 하면 천 만원은 가소롭기 짝이 없다. 


이 풍요로움을 최대한 오래 끈질기게 즐기고 싶다. 이 짜릿함을... 하지만 웬걸 한 번에 천 만원을 받았더라도 그걸로 몇 달을 일해야 하는 프로젝트인 것을 간과했다. 되려 초반에 받은 큰 금액에 편한 마음으로 몇 만원씩하는 밥을 매일 쳐 먹었더니 돈은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이러다간 일 잘 따와서 마무리 해놓고는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겠군 싶어 57만원 최저가에 파리행 비행기표를 끊어놨다. 유럽에는 친구들이 있고 그 집에서 지내면 대충 호텔비는 아낄 수 있을 것이고.. 싼 거만 먹고 싸게 다니면 얼마 안 들지 않을까? 서울 거지보다는 파리 거지가 행복하지. 그치만 이왕 가는 건데 CD 몇 장이랑 책 몇 권 정돈 사와도 되겠지? 친구집에서 얻어 잤으니까 남부로 여행 갈 때 숙소는 내가 좋은 데로 며칠 쏴야지. 슈프림 매장은 전세계 몇 군데에 없으니까 몇 십만원 짜리 후드티를 사도 이득이야. 안 입을거면 다시 팔면 되니까.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긴 친구한테 돈 좀 빌려줄 정도의 관대함도 있지. 어차피 안 갚을 것도 아니고. 그리고 또.... 


정신을 차리고 한국에 돌아오니 어느덧 잔고가 0원에 가까워 오고 있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것일까. 이 천원짜리 꽈배기도 눈물을 삼키며 지나치던 올챙이적 시절을 다 잊고 무슨 재벌집 딸이라도 된 듯이 마음 편하게 사고 싶은 걸 다 사버리다니. 난 정말 구제불능이군. 다시 우울감이 몰아쳤다. 불안함과 우울감은 항상 내 인생 전체를 지배해왔지만, 그 부정적인 그림자를 걷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줬던 건 역시 돈이였다. 프로젝트를 따오고 당장 내 앞가림에 걱정이 없고 가끔은 관대하게 비싼 술도 베풀 수 있을 때 조금 행복했다. 이런 식으로라면 조금 더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다시 생수 사는 돈도 아까워지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한심함까지 덧붙여져 한층 더 깊고 어두워진 그림자가 나를 덮쳐왔다. 그리고 내 사고회로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최종 종착지를 향했다. 역시 답은.... 죽는건가? 


멍하니 방에 앉아 벽지에 묻은 검은 자국을 바라봤다. 돈 많은 프리랜서 행세를 할 때에 샀던 비이싼 향초를 태우다 그을린 자국이다. 대체 그 향초를 왜 샀단 말인가? 그게 꼭 필요했는가? 이제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소비를 곱씹으며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그깟 음악 CD 몇 장이 더 생겨서 행복한가?! 멍멍이에게 비싼 목줄을 사줘서 행복한가?! 탄산수랑 아무 차이도 못 느끼는 너따위가 샴페인을 먹어야만 했는가? 그것도 굳이 취해서 너가 사겠다고 해야했던가? 이 미련한 인간아! 


그 순간에는 나를 행복하게 해줬던 수많은 소비들이 불행의 근원으로 탈바꿈해 나를 옥죄어 왔다. 결국 나는 이 천원짜리 꽈배기도 먹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왔다. 인간은 정말 얼마나 간사한가. 우리는 코앞의 불행을 계기로 지나온 모든 발자취를 훑으며 모든 선택을 후회하곤 한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좋은 선택인 지를 묻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현재가 되어버린 지금의 상태다. 돈을 그렇게 펑펑 쓰고도 만약 또 돈이 들어올 일이 있었다면 이 소비들은 나에게 유쾌하고도 찬란한 청춘의 기억이 되었을 텐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급하게 돈 백 만원이 나갈 일이 생겼다. 정말 미쳐버리겠군. 영구적인 행복은 바란 적도 없지만 단기적인 행복은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 다시 한 번, 아 이 미련한 인간이여!  


.

.

.


정말 구제불능이라 이렇게 삶을 영위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이렇게 살아도 살아지니까 계속 이딴 식으로 살고 있는건지. 나는 또 기적적으로 일을 따왔다. 다시 안정적인 삶의 궤도로 돌아올 수 있는 금액의 일을. 지불날짜가 정해지고 나니 모든 불안이 가셨다.


계속 이런식으로 산다면 언제가 큰 일이 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그런 적이 없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살고 있는 이 불안한 삶을 이번에야 말로 정말로 끝내야 할 것 같다. 아무 보호막이 없는 인생은 정말이지 불행하다. 나의 삶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확실하고 단단한 방패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돈이다. 돈으로 행복은 살 수 없을 지 몰라도 어느 정도의 불행과 불안은 막을 수 있다. 


매일 불행한 사람에게 소확행은 없다. 어떻게 소소한데 확실하냐는 말이다. 곰돌이푸랑 빨간머리 앤같은 건 집어치우란 말이다. 나에게는 거창한 행복이 필요하다. 로또 당첨이나 숨겨진 자산가 증조할머니의 유산이나 하다못해 만수르가 자기 발가락 하나를 빨면 오백억을 준다는 제안같은 것. 제가 앞으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게 해주세요! 같은 것은 절대 이루어질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거창하고 확실한 행복, 그것은 바로 돈이다.


며칠 째 맛있는 커피가 너무 먹고 싶었다. 엊그제는 통신사 멤버십으로 커피를 얻어 먹으려고 망해서 몇 개 없는 커피 브랜드의 체인을 찾아 3km를 걸었다. 그렇게 먹은 커피는 정말이지 맛이 없었다. 다시 되새기자. 무책임한 삶이 마실 수 있는 커피의 맛은 이거다. 3km를 죽어라 걸어서 하필이면 어느 모텔 1층에 입점해 있는 뻘쭘한 분위기의 망해가는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먹고는 다시 3km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그 맛. 처절한 좌절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아주 끈적하게 버무려져 뒤지고 싶다는 생각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주는 비극의 맛. 


오늘은 햇살 좋은 카페에 앉아 육천원짜리 커피를 시키고 초코 까눌레도 덩달아 시켰다. 생각이 많고 예민한 사람은 소비 하나에도 너무 많은 상징과 관념을 부여하게 된다. 상징을 우걱우걱 먹어치우면서 나는 또 조금 행복해졌다. 아, 너무 맛있다. 커피는 이런 맛이여야지. 다 마시고 나서야 커피잔을 들여다보니 모기 한 마리가 빠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또 다시 죽음을 떠올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