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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픈 비건 Oct 31. 2019

편지에는 이상한 시차가 있다

언젠가는 지금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마도 우리나라는 군대제도 덕분에 편지가 오래오래 연명할 몇 안 되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나야 한 번도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본 적은 없다. 군대라는 것은 보통 20대 초반에 가기 마련이고 20대 초반의 나의 연애는 누군가를 군대에 보낼 때까지 버텨주질 못했다. 남자인 친구들이 군대에 갔을 때에는 딱히 편지를 주고 받으려고 한 적이 없다. 그건 너무 수고스러운 일로 느껴졌다. 손 아파가며 길게 적을 말도 없고,구구절절 무슨 말을 또 적고 주고받고 우체통에 넣고 그런다는 말인가. 세상 모든 것은 간편하고 편지의 불편함을 뛰어넘을 만한 애정을 나는 잘 가지지 못했다.


그러던 나도 드디어 사람이 되어가는건지, 뒤늦게야 군대에 가게 된 친구에게 처음으로 인터넷 편지라는 걸 써보았다. 세상은 참 편리해져서 이제는 핸드폰으로 어플을 깔아서 위문편지 코너에 몇 자 두드리면 바로 접수완료라는 글이 뜬다. 나정도의 애정으로도 군대에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편지를 세 통쯤 쓰고 나니 접수완료였던 편지들이 모두 전달완료로 바뀌었다. 그런데 전달완료라는 글자를 보고 나니 참으로 허무해졌다. 나에게는 즉석에서 바로 보낼 수 있는 편지들이였는데, 상대방은 어떤 답장도 바로 할 수가 없고 나는 그렇게 벽에다가 혼자 떠드는 기분으로 편지 몇 통을 더 쓰다가 조금씩 질려서는 편지 쓰기를 그만두었다.


그러다 간만에 본가에 다녀오니 문앞에 봉투가 하나 메달어져 있었다. 우리집 우편이 모두 집주인 아주머니댁으로 가게 되어 있어 아주머니는 나한테 우편이 오면 이렇게 문에다 봉투를 메달아 주곤 하셨다. 이 집에 산 지 2년이 되도록 내가 받아본 우편은 가스고지서가 전부다. 그마저도 몇 달전에 카카오톡 서비스로 바뀌어서 근래에는 한 번도 문고리에 봉투가 걸린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나는 그저 가스고지서 회사가 기분전환삼아 종이 고지서를 보냈나 보다 하고는 지나쳤다. 엊그제 아침에서야 문득 봉투가 조금 두껍다는 생각이 들어 안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8통이나 되는 편지가 있었다. 나는 함박미소를 짓고는 사탕을 까먹는 어린이처럼 한 통 한 통을 아껴서 읽고 또 읽고, 그렇게 8통의 편지를 온종일 가방에 들고 다녔다.


뭐라고 썼는지 기억도 안 나는 편지의 답장들을 읽고 있자니, 상대방보다도 그 때의 내 감정들이 선명하게 기억 났다. 괜한 일로 우울하다고 엉엉 울며 편지를 썼던 날도, 새로운 일을 따왔다고 싱글벙글하며 편지를 썼던 날도 있었구나. 내가 운다고 자기도 속상하다는 답장을 보면서는 나 이제 안 우는데 걱정하면 어쩌지 싶어 답답했고, 일을 따와서 축하한다는 답장에는 그 돈 벌써 다 썼는데 하고 짜증이 났다. 고작 며칠 사이에 그 순간들은 모두 고이고이 과거로 자리잡았고, 나는 지금 여기에, 또 다른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힌 채로 영원히 과거로 밖에 상대에게 닿을 수 없는 현재 속에 서 있었다. 해외에 있는 친구와도 이 정도의 시차를 체감해본 적이 없었는데, 꾹꾹 눌러담은 글자 몇 자에 행성 몇 개는 떨어져 있는 듯한 거리감이 들었다.


편지에는 이상한 시차가 있다. 편지에 쓰여진 모든 일은 과거의 일이다. 과거의 순간들이 현재의 나에게 도착해서는 계속해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다시 나는 그 시차만큼 앞서 있지만, 상대방에게 닿을 때 쯤이면 이번에는 상대방이 그 시차만큼 앞서있다. 그만큼의 간격을 줄일수도 늘릴수도 없는 채로 계속해서 시간을 여행하는 편지의 이상하고도 애틋한 시차. 그렇게 시간이 촉촉히 베인 글자들은 박제된 과거 속에서 반점 하나와 온점 하나까지 현재보다 더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편지가 만들어낸 이상한 시차탓에 강제적으로 불어난 버린 시간은 고작 며칠 전의 과거를 농염하게 바꾸어놓았다. 한참 전 일로 느껴지는 편지 속 날들과 그 안에 담긴 감정, 생각, 날씨, 온도, 그 모든 것들이 그 날에 대한 기억을 더욱 선명하고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우리는 무언가와 시간을 쌓기 시작할 때 사랑을 시작한다. 첫 눈에 반한 열렬한 연인끼리도 만난 지 며칠만에 사랑을 고백한다면 어딘가 어설프게 느껴진다. 쌓아온 시간들이 내 안에 견고하게 자리 잡기 시작할 때, 잠시 멈춰서서 나와 떨어진 간격에서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을 자주 가슴 속에 새기며 살아왔다. 너무 좋은 순간도, 너무 아픈 순간도 결국은 지나갈테니까 일희일비하지 말고 버텨보라고. 어차피 다 잊게 될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닐테니까. 매번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세상 만사에 초연해지는걸 넘어서 세상 모든 일이 허무해지곤 했다. 이것도 저것도 죄다 아무것도 아닌데, 어차피 다 뒤지면 잊는 거 사는게 뭐가 그렇게도 중요하단 말인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의 진짜 희망은 모든 일이 지나가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사건은 지나갈테지만, 그것이 좋은 날이든 나쁜 날이든 시간만은 확실하고도 묵묵하게 쌓여갈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쌓여 벌어지게 될 시차에는 아주 가볍고도 잔잔한 사랑이 베어나올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의 희망이다. 이 순간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라, 이 순간도 사랑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언젠가 모두가 도착하게 될 죽음이라는 종착지에서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봤을 때, 시차의 도움을 받아 내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조금이라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러니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만 우리는 많은 시차를 낼 수 있다. 인생은 버티고 봐야한다. 내일 뒤지면 오늘이 어찌 후회스럽지 않으리요. 하지만 100년 뒤 요양원에 누워 오늘을 기억한다면 오늘은 정말 존나게 행복하고 사치스러운 20대 청춘의 아름다운 하루겠지. 나에게는 긴긴 시차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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