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잔칫날
잔치국수가 먹고 싶어 장을 보러 갔다. 주기적인 무기력증이 정점에 도달한 때라 그깟 당근이랑 애호박 사러 300미터 앞 마트에 나가는데 큰 결심이 필요했다. 돌아오는 길에 이유없이 피자집에 들어가서 피자랑 맥주를 먹었다. 육수 낸다고 집에 불을 키고 나온 것도 까먹어서 집주인 아주머니한테 전화를 해야했다.
낮술에 취해 집에 돌아와 낮잠을 퍼질러 잤다. 일어나니 두 배로 무기력했다. 오늘부터 또 잘 해내자고 시간관리법도 정리한 주제에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다니. 그럼 하고싶은걸 해보자 싶어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보릿대 모빌 만들기 책을 펼쳤다. 보릿대가 없으면 대신 뭘 써야 하는지 찾아보느라 한 시간을 썼다. 황동파이프를 사러 나가려다 포기했다. 장난하냐. 그런건 다이소에서도 안 판다구. 취미생활도 부지런한 사람만 할 수 있겠군. 빨대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제일 간단한 팔면체 모빌 만들기를 폈다. 어려웠다. 두 번 망하고 다시 했다. 꾹 참고 완성했다. 완성하고 나니 그냥 쓰레기같아 보였다. 옥이는 비웃듯이 모빌을 물어뜯었다.
저녁으로 아까 먹고 남은 피자를 먹으려다 너무 한심한 것 같아 잔치국수를 만들었다. 평소같으면 고명을 예쁘게 다듬어 위에 얹어 먹을텐데 야채를 다 통으로 볶아서 육수에 퐁당 넣어버렸다. '평소 같으면'이라는 말도 이젠 민망하다. 일년의 절반쯤은 우울하고 절반쯤은 잘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어떨 땐 우울한 날이 더 많다. 그러면 그게 평소일테니까, 그래 오늘의 잔치국수도 평소처럼 개판으로 해먹었다.
잔치국수를 냄비 채 들고와 식탁에 앉았다. 음 존나 맛이 없군.. 국물은 따뜻하고 맹탕이였다. 마트에서 산 볶은 김치는 혼자서만 따로 놀았다. 오로지 날 위해서 마트에 가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차린 밥상이 이렇게나 맛이 없을 일인가.
갑자기 미치도록 외롭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한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딱히 전화를 걸만한 사람도, 또 건다고해도 할 말도 없었다. 군대에 있는 친한 친구 생각이 났다.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마침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고 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으로 눈물을 닦고 전화를 받았다. 자기가 부탁한 걸 오늘 붙였냐며 내일 붙이면 늦게 도착한다고 했다. 죽이고 싶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삶은 가끔씩 말도 안 될만큼 벅차고 괴롭다. 고통스럽다. 결국 나는 혼자이기 때문에.
어제 꿈에는 내가 살아왔던 집들과 그 때의 시간들이 불쑥불쑥 등장했다. 특유의 편안한 냄새가 나던 외할머니집, 처음 넓은 집으로 이사가 살았던 대전집, 북적북적한 대가족과 살았던 왕십리집, 밤마다 울며 엄마한테 전화를 했던 호주에서의 집.. 꿈 속에서조차 나는 무기력했다. 숨이 막혀 얼른 일어나고 싶었다. 근데 내가 지금 어떤 집에서 자고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지금의 내가 몇 살의 나인지 어디에 살고 있는 나인지.. 아무리 생각해내려고 해도 예전 집들만 생각이 나고 지금의 내가 누구인 지를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눈을 뜨고나서야 내가 지금의 집에, 지금의 나로 있다는 걸 알았다. 아, 맞어. 벌써 여기서 3년이나 살았지. 나는 이제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니였지. 힘든 것을 피하려는 본능 때문일까. 무기력하고 우울한 날들 틈에서는 현실보다 과거가 훨씬 생생하다. 나는 계속 멀리멀리 도망치고 있다.
아무 맛도 없는 잔치국수에 면을 다 건져 먹고 나니 남은 고명들이 둥둥 떠다녔다. 육수를 내려다보며 애호박과 당근을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크리스마스 같았다. 멸치와 다시마로 우린 고소한 육수. 길게길게 채 썰어진 야채와 노오란 계란 지단. 어설프게 빨간 마트 김치.
내 장례식장에는 잔치국수가 나오면 좋겠다. 아무 맛도 안 나는 면은 얼른 훌훌 건져먹고, 알록달록 고명들끼리 남아 파티를 하자. 국물은 좀 싱거워도 괜찮다. 시뻘건 눈을 감추려 국수 그릇을 내려다보다 눈물을 뚝뚝 흘려 간을 맞추자. 내 인생의 마지막 잔칫날, 당신도 잔치국수 한 그릇을 먹게 된다면 그건 나의 아주 소심하고도 잔혹한 복수임을 기억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