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설픈 비건 May 26. 2020

평온한 일상에 균열이 생길 때

최근에는 여러가지 환경적 변화로 (특히 코로나 때문) 일상에 많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는 행위나 재택근무처럼 물리적 행위에서 균열이 생기기도 하고 카드빚의 압박이 커지거나 장기적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지는 정신적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매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슷한 몸의 움직임과 감정적 변화를 겪던 일상의 그래프(아침 7시 기상 - 아 졸리다,오후 12시 점심시간 - 뭐 먹지!? 밤 6시 퇴근 - 와 신난다!)에 예상치 못한 input이 들어올 때 일상에는 틈이 생긴다.



울퉁불퉁해진 일상을 메꾸기 위해서 우리는 일정부분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을 투입해야한다.

예) 밥 주는 길고양이, 은행에 갚아야 하는 돈,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들, 아직 읽어야 하는 책, 맛있는 음식 등등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어느정도 인생의 경험치와 비례하기도 하다. 살아갈수록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내지는 '삶의 이유'라는 것이 점점 모호해지고 '그냥 산다'라는 생각을 하면 왠만한 균열쯤은 무시하고 메꿀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인생 경험치가 쌓인 사람의 삶힘(살아갈 힘)은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의 일상을 오랫동안 지켜낸 사람은 균열을 금방 메꾸고 수정된 일상을 새로운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울퉁불퉁 했던 새로운 일상의 표면은 다시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쌓여서 단단해진다.


그렇게 금이 가고 메꾸기를 반복하다보면 레이어가 쌓여서 나중에는 꽤 강력한 균열이 생겨나도 큰 타격이 오지 않게 된다. 몸의 근육이 파열되고 다시 생겨나는 과정과 비슷하다. 인생을 살아가는 근육도 점차 단련된다. 그렇게 사람은 성장한다.


그렇지만 균열이 한 번에 너무 많이 또는 깊게 생기면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거나 붕괴할 수 있다. 아직 인생 레이어가 덜 쌓였거나 균열을 모두 메꿀만큼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충분치 않는데 그것을 초과하는 균열이 올 때 발생할 수 있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균열을 메꾸기엔 턱없이 부족한 경우 일상은 울퉁불퉁해진다. 예를 들어 아직 5살밖에 안된 아이가 가정폭력을 일상적으로 당한다고 할 때 그 아이에게는 그 균열을 메꿀 힘이 없다. 혹은 우울증 중증 환자여서 그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0.5만큼 있다면 샤워를 하는 것조차 일상에 깊은 균열을 낼 수 있다.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에 실린 한 우울증 환자는 편지에 이런 말을 남겼었다. "나는 요새 샤워는 안 해요. 목욕만해요. 내 몸에 닿는 물방울이 너무 아프게 느껴져요."



일상이 울퉁불퉁해진 사람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사건들을 쉽게 왜곡하게 된다. 공격받고 있다고 느끼거나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인생에 평온한 일이 없는 것이 일상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은 되려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상대방의 호의에 매번 '조까튼 새끼'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행동에서 본능적으로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일직선으로 사람들의 의사가 오고간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울퉁불퉁 돌아돌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자신만의 필터를 거친 호의를 안고는 상대방도 그런 식으로 사고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울퉁불퉁한 일상은 삶을 살아갈 수는 있는 수준의 것이라면,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깊이의 균열이 생겨 삶 전체가 붕괴되기도 한다.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쌓아왔어야 하는 레이어를 쌓지 못했거나 남들보다 레이어의 막이 얇아서 균열에 취약한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우리는 일종의 안전막을 쳐놓아야 삶을 잘 영위할 수 있다.



일종의 감정 콘돔, 그러니까 내 일상의 균형이 자극을 버텨내지 못하고 휘청할 때 그 타격이 나의 코어까지 영향을 끼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1) 사람을 낙원으로 삼는 것이다. 사람을 낙원 삼아 중간 지대에 안전막을 쳐놓으면 효과가 확실하고 빠르다. 우리는 대부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전막 삼으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 안전막 인간의 자질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일단 1) 쉽게 없어질 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이 사람을 나의 인생에서 건드리면 좆되는 코어를 지키도록 맡겼다가 갑자기 사라지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곧 죽는다거나 뭐 그런 식이면 곤란할 수 있겠다.



보통 이런식으로 관계의 끊어질 확률이 존재하기 때문에 축의 좌측으로 갈수록 의존도를 높이는 편이 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내가 절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고 확실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와 지내는 시간을 낙원으로 만드는 방법을 많이 알아야 우리는 이 균열들을 잘 버텨낼 수 있다.


물론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필요는 없다. 일반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은 이렇다.


사람들이 도와주면 더 높이 뛰어서 균열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


아니면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쌓아서 자극을 더 높은 곳에서 받아쳐 타격을 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 몇 십권을 쌓아도 사람 한 명 높이도 못 나온당..


그런데 만약 자극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죽을 수도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