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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픈 비건 Jul 29. 2020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나의 존재를 사랑하기 어려울 때


생일.


그렇다,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나이가 들수록 특별할 것도 유난스러울 것도 없는 생일이 올해도 돌아오고야 말았다. 생일이 가까워질수록 우울함은 한층 깊어진다. 이유는 모르겠다. 누군가는 1년 중 가장 기쁜 날, 축하받는 날, 선물과 케익, 카카오톡으로 쏟아지는 (그리 큰 의미없는) 기프티콘과가 이모티콘이 가득한 축하메시지를 받는 날이지만, 나에게 생일이란 피하고 싶은 날, 1년 중에 삭제하고 싶은 날.. 생일 전 날 수면제를 잔뜩 먹고 하루를 건너뛰고 일어나면 생일 다음날이 오길 바라는 그런 날이다.


생일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딱히 생일인걸 알리거나 생일날 누가 만나자거나 축하 메시지를 보내와도 대충 얼버무려 버렸고, 그렇게 평생을 지내다 보니 이제 생일이 되도 가족을 제외한(까먹지 않았다면) 사람들에게는 거의 아무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렇게 스스로가 남들로부터 자신을 왕따시키고 자신의 고독함에 엉엉 울며 그래 아무도 나를 축하해주지 않아라고 고통스러워하는 바보같은 비극.


우울증을 겪고부터 나의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리고 정면으로 그 사실을 마주해야 하는 날은 바로 생일이였다. 내 탄생, 내 존재, 나의 태어남, 그것을 저주라고 여겨왔으니까. 대체 내가 왜, 왜, 왜 태어났는지. 삶이라는 저주 속에서 아둥바둥 고통받으며 안간힘을 다해 버텨왔는데, 1년에 한 번 들이닥쳐버리는 '생일'. 


자! 오늘은 너가 태어난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뻐할 것이고, 넌 너의 삶을 감사해야해! 어때? 이 아름다운 세상에 나오게 되서 행복하지 않니? 오늘 많은 사랑 받고 행복한 하루 되렴. 이라는 생일의 암묵적 메시지.. 


삶은 조금씩 나아지고, 영원한 고통도 영원한 행복도 없다. 영원히 나를 떠날 것 같지 않던 우울증도 조금씩 나와 작별인사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겠지, 그 흔적들고 흉터들이 나에게 새겨질테니까. 그렇지만 만약 그런 흔적과 흉터들이 아무렇지 않아지게 된다면 그건 나 혼자 버텨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지. 내가 코웃음 치며 비웃던 생일 축하한다는 친구의 카톡 한 마디, 아메리카노 2잔 + 케이크 한 조각이 담긴 기프티콘 한 개, 그런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받아들이는 법을 나는 배워가고 있다.


오늘은 하필이면 날까지 우중충하다. 희망적인 느낌으로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장마비. 그래, 내 생일은 하늘도 우는구나. 그래도 상관 없어 나도 언젠가는'생일 축하해!'라는 말을 듣고 잔뜩 웃게 될테니까. 아니 사실 오늘부터도 시작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친구가 오래 전 써줬던 편지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낯간지럽고 뻔한 것들에 조금이나마 기대를 걸어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신선하진 않지만 분명 우리를 또 살아가게 하는 힘인걸 알잖아!'


낯간지럽고 뻔한 것, 삶이란 결국 뻔한 것. 생일도 결국 뻔한 것. 모두가 태어나고, 모두가 살아가고, 그렇게 삶은 너무 아름답지도 너무 끔찍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것, 그냥 평범하고 뻔한 것. 그럼에도 생일을 축하하는 건 그 뻔한 삶속에 서로의 존재가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 내니까. 너의 존재가 내 삶에 들어와준 것이 고마워서.


그래 큰맘 먹고 오늘은 해봐야겠다.

우선은 내가 나에게 먼저,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이 뻔한 말이 왜 그렇게도 하기 어려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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