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이라는 말은 하는 일이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아침잠이 없는 편이라 어릴 적부터 새벽 다섯시에 여섯시가 기상시간이였다. 아무리 오래 자려고 버텨봐도 10시를 넘어서까지 침대에 등을 붙이지 못하는 타고난 아침형 인간! 다행히도 아침형 인간은 성공형 인간(?)이라는 지론덕에 주변에 성실하고 모범적인 이미지로 쉽게 자리잡았다.
일찍 일어나게 되면 하루가 길다. 일어나서 개를 산책시키고, 아침을 차려 먹고, 집을 싹 치우면 그제서야 8시가 된다. 요새같은 겨울에는 갓 밝아지는 시간이다. 나갈 채비를 하는데 시간을 적게 쓰는 스타일이라 그 때부터 준비해도 8시 15분이면 학교든 회사든 갈 준비가 끝난다. (샤워 5분. 화장 1분. 머리는 안말려)
그런데 백수(a.k.a 프리랜서)가 되고나니 일어나는 시간이라는 건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중요한 건 깨어있는 시간동안 뭘 하냐는 것일뿐. 백수가 된 나의 루틴은 이렇다. 일어나는 시간은 똑같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집을 치우는 일도 똑같다. 다만 이제는 아침에 짧게 개를 산책시킬 이유가 없으므로 새벽산책은 생략한다(꼭 지금 안해도 되겠지). 나갈 채비는 하지 않는다(나갈 이유가 없으니까).
명분이 없다는 것은 모든 행동을 유예시킨다. 그렇게 일을 조금 하는 둥 마는 둥, 글을 좀 쓰는 둥 마는 둥.. 하다보면 어느덧 해가 머리위로 가까워지고 집안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아침도 빵빵하게 챙겨먹었겠다 서서히 찾아오는 낮잠의 유혹.. 아니 낮잠이라 말하기도 조금 민망한 다소 이른 낮잠 (그냥 아침잠)의 유혹.
오전 11시가 넘어가면 나는 홀린듯이 침대에 등을 붙이고 눈을 감는다. 옆에서는 옥이가 산책을 왜 안가냐며 나를 째려본다. 주인. 설마 자려는 건 아니지? 지금 자면 대체 언제 일어날건데... 산책은 언제하고..!! 옥이의 불만가득한 눈초리를 무시하기 위해 눈을 감는다. 그렇게 나는 아침형 인간에서 낮잠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낮잠에는 이상한 중독성이 있다. 낮잠은 밤에 자는 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필요해서 자는 잠이 아닌 잉여의 시간을 떼우는 가장 잉여로운 행위이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시간에 나 혼자 전면으로 자본주의를 맞서는 듯한 짜릿함. 나의 몸은 정수리부터 발까지 긴 수평선을 만들며 수직의 중력을 저항한다.
그렇게 혼자만의 짧은 저항행위(?)를 멈추고 나면 옥이는 한계점에 도달했단 듯이 짖기 시작하고, 우리는 어김없이 산책을 나간다.
한낮은 가장 바쁜시간이기도 하지만 가장 한가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강남역이나 광화문역 근처에서는 점심시간이 되면 직장인들이 쏟아진다. 은행과 병원도 점심시간에 맞춰 일을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찬다.
그렇지만 한강이나 공원은 얘기가 완전히 다르다. 평일 한낮에 한강을 가면 내가 마주칠 수 있는 건 몇몇 노인분들이 전부이다. 대신 비둘기와 참새가 많다. 넓은 잔디가 있는 곳까지 조금 걸어가면 정말 아무도 없다. 이 때만큼은 잠시 옥이에게 목줄을 풀어주고 뛰놀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안타깝게도 서울의 자연은 그리 쾌적하지 않다. 한강 앞으로 크게 나 있는 벌판이 하나 있어 옥이를 종종 데려간다. 다른 잔디밭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큰 사이즈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잘 오는 곳이 아니라 견주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다. 간만에 벌판을 찾았는데 개똥이 오만데에 있어 나까지 짜증이 났다.
가끔씩 풀과 잡초와 나무만 몇 그루 있으면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똥도 자연에서는 그대로 분해가 될테니 가만 두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걸까..?
안타깝게도 자연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록색이 있다고 자연인게 아니라, 그 안에서 끊임없이 생태계가 순환해야 한다. 똥을 준다고 풀이 와 똥이다! 하고 먹는게 아니라, 흙에 있는 미생물에 의해 똥이 분해되고 균들은 죽고 등등의 과정이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똥이 비료가 되지 않는다. 자연상태에서도 이와 같은 분해가 일어나려면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리는데 인간이 인공적으로 조성한 잔디쪼가리 틈에 그렇게나 빨리 개똥이 분해될 리가 없다.
거기다가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에 낚시 쓰레기에 이런 도시에서 개를 키우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전에는 임시보호하던 개가 해외로 입양을 가게 되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할까 싶고 앞으로 보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게 속상했는데 입양을 간 개들이 누리는 삶을 본 뒤로는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숲, 호수, 언제든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잔디밭과 수영장. 모든 개는 그런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서울에서 내가 찾은 최선의 차선은 한낮의 산책이다.
밀도가 높은 이 도시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도 개도 마주치지 않는 법은 쉽다. 도시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한낮에 공원을 찾으면 된다. 줄을 길게 잡아도 눈치 볼 사람이 없을만큼 한낮의 한강은 인적이 드물다. 그렇지만 한낮의 산책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한낮'의 시간을 낮잠이나 반려견과의 산책 따위의 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부를 상징하거나 엄청난 가난을 상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과 그 불안감을 뛰어넘는 행복감을 동반한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며 집에 가서는 글을 써야지라는 생각을 하다 불안해졌다. 이렇게 오늘도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건가? 집에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다 뒤가 조용해 돌아보니 옥이는 다리를 잔뜩 뻗고 진짜 낮잠을 자고 있다. 무슨 꿈을 꾸는지 연신 다리도 흔들고 꼬리도 흔든다. 이런 것들에서 불안감을 상쇄하는 행복감이 쏟아진다.
나도 백수가 되어 개산책을 시도때도 없이 시키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인데, 개들도 진짜 피곤하면 주인이 나가든 들어오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 키워지는 대부분의 개들은 에너지를 방출할 방법이 너무 적어 주인에게 집착하게 될 때가 많다. 이렇게 한 두시간 정도 마음껏 뛰어놀고 들어오면 옥이는 내가 나가는 것도 누운자리에서 눈만 꿈뻑거리며 쳐다본다.
지금을 틈 타 나도 은행업무를 보고 장도 보고 해야겠다. 결국 누구든지 간에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써야만 한다. 다만 그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서울에서 한가롭게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싶다면 한낮에 공원에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