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얼굴 인식장애

개들은 모두 표정이 다르다

by 산만한 프리랜서


개에게 그닥 큰 관심이 없다 갓 '개사람'으로 개종된 친구 A와 나는 파리에서 함께 지내는 6개월간 적절한 분배로 반려견 솜이를 육아했다. 솜이는 실내에서 배변을 하지 않아 하루에 3~4번 정도는 산책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내가 아침.점심 산책을, 늦게 일어나는 친구가 오후.저녁 산책을 맡았다.


아름다운 몽쏘공원


집에서 7분 정도 거리에 몽쏘 공원이 우리의 주요 산책루트였는데, 매일같이 산책을 하다보니 마주치는 얼굴들도 비슷했다. 다리가 짧은데 무지 빠른 애, 뭘 믿고 목줄을 안하는지 아무한테나 왕왕 짖는 치와와, 주인 무릎에서 내려오지를 않는 시바, 덩치만 큰 쫄보... 등등. 모두 다른 덩치에 다른 성격이지만 산책을 할 때 만큼은 입을 헤벌쭉 벌리고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아마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개가 웃고 있는다는 표정이 어떤 것인지 잘 알 것이다.


스마일~~


어느 날은 친구와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동네 개들 이야기가 나왔다.


'그 개 있잖아 왜~ 엄청 조그맣고 사나운데 목줄도 안하고 당당하게 다니는 치와와'

'아~ 그 안경 쓴 수염 긴 할아버지가 키우는 그 개?'

'응 그랬나? 근데 그 개가 싸움이 났었는데. 왜 엄청 덩치큰 하얀개 있잖아. 겁 엄청 많은 개.'

'그게 누구더라? 긴 금발머리에 좀 통통하신 할머니가 키우시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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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어떤 개를 특정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방법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개를 중심으로 기억을 되짚고 있고, 내 친구는 주인을 중심으로 기억을 되짚고 있었다.


'나는 아직 개들이 잘 분간이 안돼.. 검은 개는 검은 개고, 큰 개는 큰 개고, 근데 비슷비슷한 애들은 못알아보니까 주인 보고 개를 기억하는데?'


세상에나! 나는 한 번도 그런 방식으로 사고회로를 돌려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일단 개를 본 다음에 주인을 연결해냈는데, 친구는 반대로 주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한 다음에 이 사람의 개는 어떻게 생겼지! 하는 식으로 개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너는 같은 개를 다른 사람이 산책하고 있으면 처음 보는 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 야! 그거 완전 개얼굴 인식장애네. 개들은 너 안다고 반가워서 꼬리치는데, 너는 어 처음 보는 개네.. 할 거 아니야~!'


'야. 그러면 너는 다른 개 데리고 집 앞에 나가면 동네사람들이 전부 다 처음뵙겠습니다 이러냐?.'


오호라.. 상당히 일리가 있는 가설이였다.


이렇게 표정이 다양한데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서로의 개만 쳐다본다. 다른 견주가 '안녕~ 너는 몇 살이니?' 하고 개한테 말을 걸면 사람이 (상상된) 개목소리를 흉내내면서 ‘저는 세 쨜이예요.' 하고 주인이 대답하는 복화술 시스템. 거기다가 대고 서른입니다만. 하고 말하는 견주는 아무도 없다. 그렇게 대답하면 다시 개를 보며 대꾸한다. '세 살이구나~~ 다 컸네~?'. 그러면 다시 견주가 '네~ 다 컸쪄요. 어른이예요.'


아무래도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개를 중심으로 모든 사고회로를 설계하는 듯하다.


친구가 세운 가설은 한국에 돌아와 임시보호를 시작하면서 사실인 것으로 입증되었다. 척박한 서울에서 내가 개를 산책하는 코스는 매일 동일하다. 집 앞 한강공원을 따라 내려가 조그만 철조망이 쳐져 있는 게이트볼장에서 공 던지며 뛰어놀기. 그 일대에서는 잠시라도 개의 목줄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저녁시간이 되면 견주들이 하나 둘 모인다.


맨 처음에는 솜이(3세, 비숑)와 그 곳을 방문했다. 거기에서 매일 보던 사람들은 이미 상당히 서로 친해보였다. 솜이는 다른 개랑 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몇 번 그 곳에 가다가 말았다.


클로이는 어딘가 불쌍한 표정과 나라잃은 자세를 잘 취한다


그 뒤로 '클로이'라는 하얀 진돗개를 처음으로 임시보호하게 되었다. 클로이를 데리고 간만에 개모임에 가보니 다들 새로운 손님을 반기며 '안녕~ 너는 누구니? 너는 이름이 뭐니?' 하며 질문이 쏟아냈고, 나는 또 뒤에 서서 '저는 끌로이에요. 9개월 되쪄요. 저는 개농장에서 구출되쩌요 ㅠㅠ' 하며 우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아무래도 나를 처음 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 사실 솜이 견주예요 말하기도 민망해서 다시 새로운 우정을 쌓아갔고, 클로이는 두 달 뒤 해외로 입양을 갔다.


샤일로는 장난기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


클로이가 떠난 슬픔이 가실 시간도 없이 당장 갈 데 없는 '샤일로'라는 진돗개를 또 데려오게 되었다. 그렇게 샤일로를 데리고 다시 개모임에 출동. 그런데 이 사람들.. 바로 그저께까지 나를 봐놓고, 나를 또 처음 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모두가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개를 소개해준다.


오히려 개들은 나를 기억하고 꼬리를 치며 달려오고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임시보호를 하는 중이라고 하니 그 중 한 명이 그저께의 나를 지금의 나에게 소개해주려고 한다.


'아~ 여기에 또 자주 오시는 분 중에 클로이라는 진돗개를 임시보호하는 분이 있었는데~.'


그거 접니다. 라고 말하기가 무안해 또 '아~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고, 샤일로는 개모임에서 가장 사교성이 좋은 개린이로 거듭나다 해외로 입양을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시간을 두고 마음을 추스린 뒤, 다시는 임시보호 따위 안 할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3달된 진트리버 새끼가 내 품에 있었다.


옥이는 이제 표정이 생기는 중


그래, 간만에 개모임 사람들이나 보러가자. 다들 잘 있으려나, 하고 또 한강을 찾은 나. 오랜만에 찾은 개모임에 익숙한 얼굴들을 보니 너무 반가워 한참을 놀고 헤어지려 하는데, '아~ 옥이엄마는 친화력이 엄청 좋네요. 처음 봤는데 엄청 오래 알던 사이 같아요.' 라고 한 분이 말을 건내시는게 아닌가.. 아, 이사람들 나를 또 처음 봤다고 생각하는건가? 설마..?


다행히, 이번에는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 나왔고 그제서야 그 사람들은 머릿속에 커넥션을 만들고서는 내가 샤일로~옥이 엄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여전히 내가 솜이~클로이의 엄마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하다.


하긴, 나 역시도 그 사람들의 개를 꼼꼼히 기억하고 있지,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하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개들의 표정, 몸짓, 눈동자.. 검은자가 얼만큼 있고 흰자가 얼만큼 보였는지, 꼬리는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지 하는 것들. 100마리의 개에게는 100개의 다른 얼굴이 있고 그 100개의 얼굴은 매일 다른 표정을 한다.


개얼굴인식장애가 있던 친구는 어느덧 어엿한 '개사람'으로 성장하여, 이제는 개들 꼬리를 해석하며 줄을 짧게 잡아라 길게 잡아라 훈계하기 시작했다. 개라는 건 딱히 관심이 없다던 남자친구는 매일 같은 데에서 산책하면 얼마나 재미없겠냐며 차를 끌고 새로운 동네에 가더니, 불편한 정장구두 차림으로 옥이와 함께 미친듯이 뛰어다니고는, '아! 이 맛에 산책하지' 하는 소리를 한다.


새로운 정을 쌓고, 이별을 하는 일이 힘들어도 계속해서 이런 일을 하게 되는 이유는 이 한 마리의 생명체와 갖게 되는 관계에서 찾아오는 행복이 너무 크기 때문인듯하다. 개든, 고양이든, 소든, 돼지든, 관계를 맺고 가까워질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그 얼굴을 읽을 수 있게 된다. 표정과 얼굴을 가진게 비단 개뿐일만은 없다.


오늘도 나는 옥이의 얼굴을 조금 더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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