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산책은 처음이지

탕면이의 첫 바깥구경

by 산만한 프리랜서


어쩌다 시작한 임보가 어느덧 네 번째. 정을 떼고 붙이는 일이 익숙해지면 덜 기쁘고 덜 슬플 줄 알았는데, 새로운 개를 만나는 일은 여전히 엄청난 행복과 사랑을 주고 헤어지는 일은 엄청난 슬픔과 아픔을 준다. 그저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익숙해질뿐.


한 달 전에 미국으로 떠난 옥이를 꼭 닮은 탕면이가 우리집에 왔다(참고로 옥이는 미국에서 무사히 적응하여 새로운 가족과 행복한 삶을 시작했다! 사랑해 옥이!). 탕면이는 8개월 정도로 추정되는 개린이. 오랫동안 아팠어서 줄곧 병원에서 작은 케이지 속 신세를 지냈다.


이번 미션은 생전 처음 밖을 나와보는 탕면에게 세상이 이렇게 좋은 곳이라는 걸 알려주는 일! 따뜻한 집에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밥을 주는 일. 참으로 간단할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였다. 탕면이는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섭기만 한 지 첫 날 차에서 내려서는 바닥에 납작 붙은채로 계속 오줌똥을 지렸다. 어르고 달래도 움직이지 않아 똥범벅이된 탕면을 끌어안고 집까지 도착. 화장실 구석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 탕면이를 보니 앞길이 깜깜했다.


IMG_1157.JPG 온 지 얼마 안 됐을 떄의 탕면이. 베개를 베어 줘도, 머리에 고구마를 올려도 가만히만 있는다.


어쩜, 모든 개는 성격이 다르고 매번 예상치 못한 태스크가 생기는구나. 개한테 온 손을 다 뜯겨도 보고 다른 개만 보면 으르렁대는 개의 사회성도 키워보고 이제 어떤 개가 어떤 난리를 쳐도 꽤나 자신 있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소심한 겁보는 또 처음이네.


그렇게 첫 날은 탕면과 함께 변기 밑에서 둘이 똥범벅이 된 채로 잠에 들었다. 적절한 공간에 어울리는 적절한 냄새였다.


다음날 탕면이에게 집 구석구석을 보여줬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아담한 2층 집인데 해가 잘 드는 테라스가 있다. 다음 임보를 하게되는 개가 얼마나 테라스를 좋아할까 기대했는데 개뿔. 탕면이는 화장실을 집으로 정한듯 했다. 십초 정도 나왔다가 다시 쏙. 큰 소리가 나면 바로 오줌을 줄줄. 거기다가 계단을 오르기는 커녕 제대로 서지도 않고 바닥에 붙어 기어다니니 2층은 꿈도 못 꾸고 산책은 당연히 못한다.


사료를 씹는 것도 개껌을 뜯는 것도 탕면이에게는 어색해보였다. 네 다리로 서 있는 것 조차 어색해하는 탕면이가 유일하게 눈이 반짝반짝 해지는 것은 장난감이였다. 다른 개들과 다르게 간식이나 음식에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탕면이가 인형이나 공 같은 것은 망설임 없이 달려 들어가 물고 뜯고 놀았다. 탕면이의 추정 나이는 대략 8-9개월, 사람으로 치면 한참 청춘이 불 타는 20대 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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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탕면에게 빨리 산책의 맛을 알려주고 싶은데 얼마나 지나면 가능하려나? 한 달이면 되려나? 그래 급할 것 없어 천천히 하면 될거야.


그래 탕면!

한 걸음씩 해보자.


일단은 매일 집 건물 1층까지 내려가는 연습을 최소 한 번씩은 하려고 했다. 그것조차 쉽지는 않았다. 탕면이는 나오자마자 현관 앞에 계속 실례를 하고 온몸을 벌벌 떨었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지금 너무 힘든 일을 강요하는걸까? 이렇게 무섭고 싫다는데. 또 한 편으로는 그래도 밀고 나가야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탕면이는 트라우마가 있어서 밖을 무서워하는게 아니라 단순히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해서 무서워하는 거였다. 바깥이 재밌고 즐겁다는 걸 깨달으면, 딱 한 번만 성공하면 모든게 바뀔 것만 같았다.


FD3ADF78-4178-4832-A21F-BE8D72F9980A.JPG 탕면이 머리 위의 무지개


탕면이를 1층까지 억지로 나오게하는건 몇 번 성공했지만 매번 덜덜 떨면서 허겁지겁 다시 집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죄책감, 안타까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가? 하는 자기의심 등등 모든 감정이 섞여져 나오곤 했다. 사실 개를 키우면서 나에게 힘든 일은 경제적이거나 물리적인 노동의 어려움 보다는 (물론 그것도 있지만) 정신적인 어떤 감정소모의 부분이였다. 어쩌다 조금 길게 외출을 하고 들어왔는데 갑자기 다시 나가야 할 일이 생길때, '왜? 왜 또 나가는데?' 라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뒤로 한 채 쾅 문을 닫아야 할 때, 약을 먹여야 하는데 내 마음도 모르고 격렬하게 거부하며 이빨을 드러낼 때, 이런 감정적 소모가 사실 개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다고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도..


개처럼 생각하며 살자라고 자주 다짐했다. 지금만 생각하자. 혼자 집에 두고 돌아와서 나를 뛸듯이 반기는 개를 보면 일단은 마음이 안도가 되는 이유는 이제 이 개는 자기가 혼자 있던 시간을 계속 되뇌이며 힘들어하고 상처받는 짓은 하지 않는 다는 걸 알아서였다. 충분히 놀아주고, 집 앞 공원에 나가 같이 마음껏 뛰놀고, 시원하게 물 한 잔을 촵촵 하고나면 개들은 금새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잠에 든다.


가끔은 그 표정을 보려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내 삶의 30% 정도는 그 표정과 꼬리 때문에 돌아간다. 탕면이의 행복한 얼굴을 볼 때 마다 안도했고, 떠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같이 떨었다. 개를 행복하게 하는 일, 자신만만했는데, 만약 내가 이 개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그러다 예방접종 날이 와서 어쩔 수 없이 탕면이는 밖을 나가야했다. 12kg의 진돗개 한 마리를 엎어메고 병원까지 가는거야 기꺼이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들고 병원에 가는게 탕면이에게는 훨씬 공포스러운 일일 것 같았다. 차를 태우는 건 꿈도 못꾸고, 아무리 생각해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같이 걸어가는게 나을 것 같았다.


병원을 가는 건 미룰 수 없는 일. 강경하게 뒤를 떠밀며 어찌저찌 1층까지 내려왔다. 탕면이는 바들바들 떨면서 주저 앉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탕면이는 천천히 일어나더니 바로 앞에 있던 전봇대에서 냄새를 맡았다. 아주 오래, 아주 꼼꼼하게, 한참을.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다른 친구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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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면이에게 꽃 보여주기

그제서야 탕면이는 고개를 들더니 바깥을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앞집 건물앞에 나와있는 쓰레기봉투도 보고, 조금씩 싹이 올라오고 있는 개나리 가지도 보고, 그러더니 고개를 천천히 들어 위를 봤다. 나는 개가 혼자서 하늘을 보는 걸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하늘이 예쁜 날에는 개들을 안아서 배를 뒤집고는 저거 좀 봐봐~ 하고 하늘을 억지로 보여주곤 했다. 개들은 무슨 소리가 나는게 아니면 굳이 고개를 들어서 풍경을 감상하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탕면이가 자리에 멈춰서 고개를 쭈욱 빼고 한참을 하늘을 바라봤다.


탕면이는 자주 멈춰서서 뜸을 들였지만 그렇게 계속 걸었다. 500미터 거리에 병원에 가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병원을 나와 돌아가는 길, 사실 진이 다 빠져 차라리 안고 가고 싶은 마음이였다. 그러다가 집앞 하천을 따라 나 있는 산책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전봇대, 쓰레기통, 듬성듬성 초록빛이 묻은 갈색 가지들밖에 못 봤는데, 그래도 저 밑에는 잔디도 있고 강가도 있는데..


탕면아, 우리 저기까지만 가볼까?


100미터 거리였는데 이번에는 30분이 걸렸다. 하천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을 탕면이는 아주 조심조심 밟았다. 산책길에 도착해서 탕면이는 한참을 또 서서 공중을 바라봤다.


이렇게 탁 트인 건 처음이지?


옆으로 길게 난 덤불들을 따라 탕면이는 이제 멈추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꼬리가 올라갔다! 아, 이것은 정말 좋은 징조. 혹시 뛸려나? 탕면이가 뛴다는게 무슨 느낌인 지 알까? 나는 끈을 길게 잡고 조금 빨리 걸으면서 탕면이를 불렀다. 탕면아! 뛰어보자, 뛰어보자! 잠시 강 쪽을 멍하니 바라보던 탕면이가 고개를 휙 돌려 내쪽을 보더니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더 빠르게 더 빠르게. 그리고 뛰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이였지만 처음으로 탕면이의 네 다리가 모두 바닥이 아닌 공중에 떠 있었던 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탕면아 진짜 너무너무너무!!!!!!!!! 기특하구나.


한 달은 되야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산책. 그제서야 이렇게 하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면서 안도감으 찾아왔다. 그래, 세상에 산책 싫어하는 개가 어딨어? 밥보다도 장난감을 좋아하던 탕면이는 분명 산책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탕면이는 완전히 뻗어서는 두 발을 쭉 피고는 그대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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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탕면! 산책은 처음이지? 앞으로 더 넓은 세상을 마음껏 즐겨보자. 너가 지금 이 자세로 매일매일 잘 수 있도록, 그 정도는 내가 어떻게든 지켜줄게. 나는 그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고 탕면이는 매일 몇 번씩 나가는 산책마다 눈알이 뒤집혀지게 신나한다.


오늘 아침에는 탕면이랑 산책을 갔다가 목련잎을 몇 개 주워왔다. 온도도 향기도 공기의 모든 부분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탕면은 바로 뒤에서 네 다리를 쭉 뻗고 옆으로 엎어져 자고 있다. 아직 중성화를 하지 않아서 가랑이 사이로 땅콩같은 불알이 튀어나오고 유난히 긴 꼬리는 누가 사서 붙여놓은 것 같다. 발바닥이 아직도 연한 분홍색이다. 이제 발바닥의 분홍색이 빠질 나이가 됐는데, 벚꽃잎을 너무 많이 밟아 저렇게 계속 분홍색인가? 벚꽃가운 분홍 발바닥 가운데에는 검은 점이 있다. 가만히 그 점을 바라본다. 평온한 주말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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