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불알과 행복의 상관관계

대충 살자. 불알 내놓고 자는 강아지처럼

by 산만한 프리랜서

태어나자마자 고된 병을 치루고 8개월 가까이 병원 케이지 밖도 못 나가 본 탕면이를 임시보호한지 벌써 2달이 되어간다. 세상 모든 걸 무서워하는 탕면을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과연 이 개에게 안정감과 행복이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지만 그 고민은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고민처럼 아무짝에도 쓸모 없던 걱정이 되었다.


내가 탕면이 느끼는 안정감을 확실하게 믿기 시작한건 탕면이가 쫙벌로 잠을 자기 시작하면서다. 탕면은 온 몸을 뒤집은 채로 네 다리를 앞 뒤로 쫙 벌리고 자는데, 아직 중성화를 하지 않은 불알은 매번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점점 대형견의 몸집을 찾아가는 탕면의 불알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가끔 손님이 올 때면 나까지 보고 있기가 민망할 지경이 되었다.



은근 슬쩍 가서 탕면의 불알을 장난감으로 가려보지만 탕면은 재빠르게 다리를 쭉 피고는 다시 불알을 공기 중에 편안하게 내놓는다. 곧 다가올 중성화의 시련 뒤에는 사라질 땅콩 두 짝. 그래,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시원한 공기를 즐기려무나 탕면..


맡고 있던 프로젝트는 막바지로 달하면서 점점 완성을 갖추어 갔고 제품 출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네이밍부터 카피라이팅 브랜딩까지 잘 해나가다가 꼭 제품 샘플이 나오고 촬영을 하는 마지막 단계만 돌입하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마 다른 모든 디자인 영역들은 내가 직접 관여하고 작업하고 수정을 할 수 있지만, 사진은 다른 사람과 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불안감인듯 싶다.


아무리 꼼꼼하게 준비하고 이때까지 잘해왔음을 되뇌여봐도 촬영 전 날이 되면 잠이 한 숨도 오질 않는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하나, 혹시, 혹시.. 지금까지 내가 일을 잘 마무리해왔던게 순전한 운이였다면 어쩌지? 사실 나에게는 네이밍도, 카피라이팅도, 디자인도, 아무것도 잘 할 능력이 없는데 그냥 운이 좋아 여기까지 온 거였다면? 그리고 바로 이번 프로젝트에서 그 실력이 뽀록 난다면..?


만약 촬영을 했는데, 너무 별로면 어떻게 하지? (>재촬영을 하면 된다) 생각한 느낌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 (>그럴 리 없다) 클라이언트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그 외에 등등, 등등... 스스로의 실력을 신뢰하기에 프리랜서로 살아남아온 지난 6개월의 경험은 너무 짧기만 하다. 몇 번을 더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수하면 이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을까. 그렇게 또 본 레퍼런스를 다시 보고, 다시 보고 하다 보니 벌써 새벽 3시. 피곤은 몰아치는데 잠은 오지 않는 고요한 밤. 내일이 온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가만히 뒤를 돌아보니 우리 탕면이는 또 불알을 한껏 내놓고 쫙벌로 잠에 들어 있었다. 이번에는 얼굴까지 바닥에 뒤집어 파묻은 채로 세상 누구보다도 평온하고 행복하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탕면의 삶은 행복의 결정체구나. 놀고, 먹고 자고. 그리고 다시 놀고, 먹고 자고. 탕면에게는 시간과 날짜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놀고, 먹고, 자고, 또 놀고, 먹고, 자고.. 탕면에게는 만족 혹은 불만족 둘 중 하나인 순간만 존재할 뿐. 그래서 저렇게 불알 두 쪽을 내놓은 채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걸까?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걱정은 하면 할수록 쌓여만 가고 대부분의 걱정은 현재의 내가 어떻게 손 써 볼 수 없는 미래의 일이거나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이다. 나는 내가 실수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나열한다. 내가 일으켰던 실수들, 그리고 일으킬 수도 있을 실수들.. 나의 약점, 내가 가장 못하는 것들, 나의 바닥, 나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들..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나열된다.



탕면은 무슨 꿈을 꾸는지 한참동안 발을 앞 뒤로 휘젓다가는 이내 또 쌔근쌔근 잠을 잔다. 또 조금 있다가는 낑낑 대며 짖어댄다. 대체 무슨 꿈을 꾸길래? 탕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건 그저 꿈일뿐인데. 그러니까 그건 진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진짜는 아닌거지, 마치 내가 지금 하고 걱정들처럼.


복잡한 머리를 쥐어잡고 나도 탕면 옆에 철푸덕 자빠졌다. 아침은 왔고 언제나처럼 막상 실행을 해야 할 단계에 오니 걱정은 더 이상 되지 않았다. 촬영은 성공적이였고,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의심하고 괴로워하며 보낸 어제가 후회스러웠다. 촬영장에 따라간 탕면은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또 불알에 일광욕을 하며 잠을 자고 있었다. 탕면의 불알은 너무 커서 땅콩이 아니라 체리만했다. 색깔도 분홍색이였다.



탕면의 체리빛 불알이 햇빛에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자기의 가장 유약한 부분을 활짝 내놓고 숙면을 취하는 저 편안함. 행복은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나도 언젠가는 내 약점도 영원히 숨기고 싶은 비밀들도 무방비 상태로 꺼내놓고는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될까? 그런 날이 온다면 탕면, 그 깨우침의 영광은 너의 체리빛 불알에 바칠게...


https://www.youtube.com/watch?v=Hz_Whfa2_zM&t=33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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