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봄에 하세요

by 산만한 프리랜서

욕이 나오게 더운 여름이 끝나가던 때 클로이가 미국으로 떠났다. 서늘한 바람에 조금씩 시린 감이 돌기 시작할쯤 샤일로도 떠났다. 옥이는 첫눈 오던 날 떠났다.


짧아진 계절탓에 완연한 봄기운을 만끽할라치니 어느새 땀이 맺히는 날씨가 왔다. 당당히 여름이라 부를 수 있는 달의 첫 날 탕면이도 평생을 함께할 가족을 만나러 떠났다. 벌써 네 개의 계절이 다시 돌아 처음 개들을 돌보기 시작한 월(月)까지 성큼 왔다. 그 때보다 이별에 능숙해졌다. 비행기를 태우기 전날은 실컷 뛰어놀아야 곯아 떨어져 편하게 간다는 것도 알고, 괜히 간식을 너무 많이 쌌다가는 개들끼리 싸움이 난다는 것도 알고, 무엇보다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개들은 나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다만 개들과 헤어질 때 슬픔을 다루는 법에는 아직도 능숙하지가 못하다. 생각하지 않고 피하는 것 말고는 딱히 어찌할 방도가 없지 싶다.


12시에 탕면이를 데리러 온다고 했다. 탕면이는 1층에 뻗어 있고 나는 2층에서 11시 30분까지 누워 있었다. 11시 50분부터 딱 30분간만 슬퍼하기로 정했다. 11시 40분쯤 됐는데 거의 다 와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조바심이 났다. 대충 젖꼭지가 가려지는 옷을 걸쳐 입고 탕면이랑 밖에 나갔다. 하늘이 너무 파랗다. 바람은 시원하고 햇살은 따뜻하다. 이렇게 고운 봄날씨라면 탕면이가 가도 그럭저럭 해볼만한 것 같다.



탕면이가 자주 놀러가던 카페 사장님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이상하게 슬프지가 않았다. 허겁지겁 준비하고 나와서 마음만 급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날 괜히 일찍 일어나봤자 오만 생각에 괴롭기만 한다는 걸 알아서 아슬아슬하게 일어나서 뛰어서 시험장에 가곤 했다. 급하게 행동하면 다른 감정은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허겁지겁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시킨지 오분쯤 되었나? 탕면이를 데리러 벌써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집 앞으로 걸어갔다. 봉사자 분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탕면이랑 같이 출국하는 찐빵인지 호빵인지랑도 인사를 했다. 탕면은 호빵이를 만나서 신이 잔뜩 났다. 나란히 차에 타서는 창문으로 나를 내다보길래 손을 흔들었다. 커피가 남아서 카페에 되돌아가야 했다. 차가 가는 길로 따라가며 인사하고 싶은데 우리집 앞 골목은 일방통행이였고 카페는 반대쪽에 있었다. 대충 손을 흔들고 카페로 돌아갔다. 공항에 따라간다고 할 걸 그랬나? 네 마리의 개를 출국 시키는 동안 한 번도 공항에 가지 않았다. 가면 너무 슬플까봐라고 매번 말했다. 사실 그냥 귀찮아서 안 가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옥이를 생각하다 울었다. 옥이가 떠난지 한참 되었는데도 눈물이 계속 났다. 옥이가 떠난 날 빼고는 되도록이면 옥이 생각을 안 했다. 그래서인가 문득 문득 옥이가 떠올라서 주체할 수 없이 슬펐다. 제 때 슬퍼해야지만 인간에게는 망각이라는 축복이 내려온다. 없는 척 외면해버린 감정들은 언제 툭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탕면을 위해 슬퍼할 공간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옥이를 생각하며 싹싹 호박속을 긁어내듯 울었다. 이제 옥이를 조금씩 잊을 수 있겠지? 잊는다고 잃는 것은 아니지만.


커피를 다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집안은 평화로웠다. 탕면이 밥그릇이랑 물그릇을 치웠다. 탕면이가 다 뜯어먹은 슬리퍼를 버릴까 고민하다가 그냥 신었다. 엄청 슬플 줄 알았는데 눈물이 별로 안났다. 딱히 허무하지도 않았다. 그냥 평화로웠다. 따뜻한 봄날씨 덕분인가. 이제 슬픔에도 익숙해지나?


쇼파에 누워 천장을 보며 멍을 때렸다. 사람들한테 계속 연락이 왔다. 탕면이가 잘 갔냐고 물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핸드폰을 안 볼 때는 탕면이가 2층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사람들한테 카톡이나 전화가 오면 탕면이가 인천공항에 있단게 기억이 나서 슬펐다. 한 명한테는 소리도 질렀다. 나는 생각 안 하려고 하는데 왜 자꾸 물어보냐고!! 그 친구는 걱정되서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니 내가 성격파탄자 같아서 할 말이 없었다. 남들의 걱정 같은건 진절머리가 났다. 어차피 내가 무슨 기분인 지는 아무도 몰라. 우리집이 물로 꽉 찰때까지 울다가 익사해도 그 사람들은 엄마랑 저녁먹고 운동도 하고 친구랑 골프도 치고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울지 않기로 한 것이다.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그런데 전화해서 울고 있냐고 물어보다니. 아주 괘씸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하루종일 문을 활짝 열어도 벌레 같은 건 없었다. 따뜻해지고부터는 집 안에 오만 벌레가 들어온다. 문을 열어두는건 탕면이가 테라스에서 새구경하는 걸 좋아해서였다. 이제는 문을 닫고 다녀야겠군. 오른쪽으로 가면 열린 창문이 있는데 바보처럼 안 열리는 창문으로 계속 벌레들이 몸을 갖다박았다. 답답해 죽겠네. 한 마리씩 구조해줄까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며칠 뒤면 창틀 사이에서 시체가 된 채 발견되겠지. 그러면 물티슈로 슥슥 닦아서 버려야지. 산다는게 다 그런거지. 약간만 애정을 쏟으면 누군가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너무 바쁘고 귀찮지.


탕면이가 잘 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불알도 없는게 의젓하고 씩씩하게 검역도 하고 캔넬도 들어가고 그랬다고 한다. 엄마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 하는 말을 들을 때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게 조금 민망했다. 나는 사실 그렇게 좋은 엄마는 아니였다. 귀찮으면 산책을 뛰어 넘어 탕면이가 오줌을 참게 했다. 어제는 새벽에 탕면이가 화장실 가고 싶다고 몇 번을 끙끙 거렸는데도 무시하고 테라스에 싸라고 했다. 탕면이 출국 딱 하루 전 날 사료가 떨어졌는데 그냥 아침을 굶겨버렸다. 이제 탕면이는 미국에 가서 진짜 가족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남자랑 논다고 늦게 들어오는 그런 엄마 말고.


아까까지 한 마리였던 벌레가 네 마리가 되어서 창문에 쿵쿵 머리를 찍고 있다. 나도 벌레처럼 벽에다가 머리를 쿵쿵 찍었다. 머리에 뿔같은 혹이 생겼다. 개도 구했는데 벌레를 안 구해주는건 아무래도 일관성이 없는듯 하다. 얇은 휴지를 뜯어서 살살 벌레를 잡아 가둔다. 팔을 최대한 멀리 내밀고 밖으로 날려보낸다. 너무 가까이에서 놔주면 멍청해서 도로 들어온다.



창문 밖에 닿은 하늘이 너무 파랗다. 오늘부터는 외출을 해도 집에 굳이 일찍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집은 빨리 들어가기 싫다. 집에 늦게 늦게 들어갈거라면 이왕이면 하늘도 파랗고 날씨도 따뜻한게 좋겠다. 이별은 봄에 하는 편이 낫다. 봄은 눈물이 나도 금방 그칠 수 있는 계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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