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세 번짼데
작년 여름부터 우연히 시작하게 된 임시보호는 입양이 확정되기 전까지 갈 곳 없는 유기견이나 구조견을 집에서 돌보는 일이다. 처음에는 딱 이 친구만 입양 가면 그만해야지 했던게 벌써 두 번째, 세 번째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학대받고 있거나 버려지는 개들이 정말 많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많다. 개농장도 문제고, 동물 학대도 문제고 동물 실험도 문제고 뭐 아무튼 다 문제지만, 어쨌든 가장 큰 문제는 유기견 문제라고 생각한다. 파양을 할 때 이런 저런 문제와 사정으로 믿을 만한 사람에게 보냈다(?)고 확신할진 모르겠지만, 이미 문제가 있어서 온 반려동물은 또 파양을 당할 확률이 엄청나게 높고 그렇게 거듭 파양을 당하다보면 처음 입양을 보낸 곳과의 연결끈이 너무 느슨해져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개를 버리거나 팔게된다.
반려인들에게는 개를 먹는 사람이 가장 끔찍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든 사람들은 개를 기르다 쉽게 포기한 불특정 다수의 반려인이다. 애초에 개를 먹는 것이 더 이상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취향 정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이다. 그런데도 개농장이 끊임없이 굴러가고 개를 통해 번식을 하고 고기를 얻어내 돈을 버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잉여가 되어버린, 처치 곤란한 개들이 많아서다. 안락사라니 정말 너무하잖아 싶다가도 현실을 알고나면 정말 그것밖에 답이 없구나 하는 마음이 들 지경이다.
사람 마음이 모두 내 마음 같지 않고 사회가 그렇게 이상적인 곳이 아니니, 어쩔 수 없이 오늘도 개는 버려진다. 한 마리, 두 마리도 아닌 몇 백마리가.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다만 나는 내 개를 잘 책임지고 키우는 걸로 충분하다 싶었던게 괜히 한 발짝 디뎠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클로이도, 샤일로도 미국으로 입양을 보내고 다시는 안해야지 다짐하는 내 손에 태어난지 갓 한 달 된 옥이가 안겨 있었다.
내가 봉사(?)하는 곳은 주로 개농장에서 개를 구조하는데, 그런 곳에서 구조된 개들은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시고루자브종이거나 큰 개일 때가 많아서 국내에서 입양이 쉽지 않다. 다행히 해외 단체와도 연줄이 있는 담당자분 덕택에 내가 임보하는 개들은 지금까지 좋은 가족을 찾아 모두 해외로 입양을 갔다. 옥이는 나한테 오기 전부터 입양 신청을 받아서 심사가 완료된 입양 가족이 있었고 이동봉사자를 기다리던 중이였다.
필연적으로 헤어질 터이니 정을 너무 붙이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는 개들과 헤어지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새 또 잊고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집에 옥이가 온 지 몇 주 안 되었을 때만 해도 '별로 정이 안 가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일단 어린 강아지를 임보하는 것은 처음이라 손이 많이 갔고 옥이 이빨이 너무 아팠다. 아씨 너 그냥 빨리가라, 나 진짜 죽겠다하는 생각을 처음 한 달간 했다. 어리다 보니 두고 어딜 갈 수도 없고 항상 안고 다니고 이동가방에 넣어 다니고, 그렇다고 애기라고 하기엔 몸무게가 벌써 5kg... 게다가 그 몸무게는 일주일에 1kg씩 늘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1cm씩 자라는 것 같기도 했다. 키도 쑥쑥 이빨도 쑥쑥. 또 밥은 어찌나 먹는지. 개를 키우면서 사료값이 무섭다는 생각은 처음으로 해봤다. 거기다가 오줌은 죽어도 안에 안 싼다고 새벽 3시만 되면 쉬를 싸러 나가자고 나를 깨운다.
정은 무슨. 가라 빨리 가라.
그러더니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이동봉사자가 나왔다는 거였다. 지금까지는 갑자기 스케줄 조정이 되어서 출국 이틀 전, 삼일 전에 통보 받아 슬퍼할 정신도 없이 준비를 해서 애들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한 달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좀 더 빨리 가도 되는데.. 한 달까지 안 주셔도 된다구요. 애 키우다 저 죽겠어요. 또 날씨는 어찌나 추워지는지. 꽝꽝 언 손으로 옥이 똥을 줍다 감각이 없어 손을 헛디뎠다. 손 끝을 따뜻하게 스쳐가는 옥이의 똥.. 거기다가 어려서 소화기능이 딸리는 지 하루종일 집에서 방구를 낀다. 그러고는 뻔뻔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옥이가 이미 내 하루의 지분을 엄청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 그걸 까먹어버렸다. 개라는 존재가 얼마나 사람을 울고 웃게 하는지, 내가 옥이한테 얼마나 많은 의지를 하고 있는지. 매일매일 쑥쑥 자라나는 무거운 몸무게만큼이나 옥이는 내 인생에 묵직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
옥이가 오고부터 동네 친구들이 모이는 공원에 항상 나가게 되었다. 그 전에까지는 내 스케줄에 맞춰 하루에 두 세번 정도 산책을 했는데, 옥이는 넘치는 에너지가 감당이 안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을 나가게 됐다. 그렇게 해도 더 놀자고 찡찡대는 이 개린이를 그나마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친구들과 개판을 벌여 놀게 해주는 거였다. 개들도 개들이랑 노는 걸 더 좋아한다. 백날 우리가 장난감을 던져주고 으르르 까꿍 해줘도, 개들끼리 노는게 훨씬 재밌다.
옥이는 동네에서 친구를 아주 많이 사겼다. 험악하게 노는 걸 좋아하는 옥이는 주로 큰 친구들이랑 잘 논다. 개들은 마음껏 뛰어놀고 그 뒤에는 견주들이 뒷짐을 지고 엄마미소로 지켜보고 있다. 나도 그 전까지는 얼굴만 알고 인사만 하던 견주들과 더 자주 보고, 더 자주 웃고,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옥이가 떠난다는 소식에 모두들 아쉬워했다. 이제 우리 해나랑 또 못놀겠네, 우리 라봉이 잊으면 안돼 하는 말들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옥이가 간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개와의 이별이 슬픈 이유는 무언가를 이해시켜줄 수 없어서다. 옥이야, 지금 내가 널 버리는게 아니라, 너는 잠깐 우리집에 있는 거였고, 너를 엄청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 네? 그러면 왜 저는 잠깐 여기 있어요? 그건 왜냐면, 너가 비행기를 타고 가야되는데... 제 가족은 왜 그렇게 멀리 있어요? 음.. 왜냐하면 한국은 어쩌고 저쩌고...
옥이에게 복잡한 한국사회의 유기견과 개농장 문제를 어떻게 이해시키리. 실수로 발을 밟아도 미안하다는 말이 닿질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게 개와의 관계다. 개들은 잠깐만 나갔다 올게라는 말도 이해를 못해 하루종일 현관에서 주인만을 기다린다. 사랑해라는 표현만 개들은 곧잘 알아차리는데 그래서 더 곤란하다. 어 분명 우리 엄마는 날 사랑한다고 했는데? 왜 안 오지? 왜 나를 차에 태우지? 엄마랑 왜 떨어져야 하지???
그래도 다행인게 있다면, 개들은 자신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두 번 임보를 했을 때는 생각보다 입양가족이 빨리 생겨 두 달만에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동봉사하는 분 차에 개를 딱 태우는데, 별로 눈물이 안 날 것 같다는 예상을 무참히 박살내며 펑펑 눈물을 쏟았다. 다른 것 때문보다도 내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할까봐 그게 그렇게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며칠을 울다 입양간 가족에게서 소식을 받은 건 아마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였다. 세상 행복은 다 가진 표정으로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뛰어 노는 샤일로의 영상은 나에게 아주 약간의 배신감만 남겼고 슬픔은 금새 지나갔다.
개들은 행복한 환경에 놓아지면 지난 아픔을 굳이 이해하려 되뇌이지 않는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여러가지 냄새를 맡고, 따뜻한 집에서 잠을 자고 친구와 가족이 사랑해 준다면 금방 행복한 표정을 하고 지난 일쯤은 금방 잊는다. 생각해보면 앞으로 십 년 넘게 이어질 그들의 행복한 일상에서 나는 1/50도 채 함께 보내지 않은 사람이다. 임시보호자의 역할은 그런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행복한 날들의 첫 단추를 끼워주고 자신감을 넣어주는. 너도 이렇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개야, 넌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개야.
갓 사랑을 받기 시작한 개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동작 하나 표정 하나가 다 바뀌고, 비로소 사랑받을 준비가 잔뜩 된 채로 가족을 만나러 간다. 나! 자신 있어! 그래 나 사랑받아 마땅한 개다! 하는 표정으로.
옥이는 세상 누구보다 당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사랑받을 권리를 확신하며 우리집을 떠났다. 잠깐 낑낑하더니만 금새 돌아서서는, 그래 너가 나 못 키운다 이거냐? 상관없어 임마. 나 밖에 나가면 다 나 예뻐서 기절해~ 딱 그런 표정을 하고는 가버렸다. 그래 옥이야 너만 행복하다면 난 다 좋다. 근데 왜 자꾸만 눈물이 날까나.
이별이라는 건 참 신기하게 할 때마다 슬프다. 이별은 요리나 수영같은 단어와는 다르다. 수영은 바다에서 하든 호수에서 하든 수영이 주는 경험은 비슷하다. 시원한 물, 가빠지는 호흡, 고요해지는 주변. 짜장면을 만들든 감자탕을 끓이든 요리가 주는 경험은 비슷하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 여러가지 양념, 맛있는 걸 한 상 차릴 때의 기분. 그 경험에서 비롯되는 오감에 우리는 익숙해지고 능숙해질 수 있다.
이별은 누구랑 하냐에 따라 그 모든 속성이 달라진다. 공간과의 이별, 친구와의 이별, 연인과의 이별, 개와의 이별. 개와의 이별이라 하더라도, 그게 샤일로였는지 클로이였는지 옥이였는지.. 또용이였는지 방울이였는지.. 각각의 이별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내가 다른 대상과 쌓아온 하나의 세계가 갑자기 멈춰선다. 정지한다. 무언가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은 그런 걸 의미한다. 나와 옥이가 함께 잤던 침대, 매일 걸었던 한강, 자주 가던 피자집, 장을 볼 때면 옥이를 잠시 묶어두었던 나무.. 그 모든 것들이 옥이가 없이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를 무너뜨린다.
옥이와 나의 세계는 오늘 이렇게 멈춘다. 그리고 다시 나는 혼자가 되어 나만의 침대, 나만의 한강, 나만의 집으로.
올 겨울들어 처음으로 쌓일만큼 눈이 왔다. 아침에 짧게나마 눈을 본 옥이는 잔뜩 신이 난 채로 공항가는 차에 탔다. 옥이가 가는 곳은 따뜻한 라스베가스, 눈은 보기 어렵다. 견생 첫 눈이자 마지막 눈을 그래도 오늘 제대로 보고가는구나.
옥이!
만약 그곳에도 눈이 온다면 나를 생각해주렴!
그치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런 것쯤은 그만두고 마음껏 눈밭을 뒹굴고 놀렴.
사랑하고 사랑하는 지분 2%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