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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픈 비건 Nov 08. 2024

꿈이 너무 자주 바뀌어요

PART 1 선택과 집중만이 답일까?

끼리끼리라는 말이 있다. 결국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린다는 말이다. 산만한 관심사로 뭐 하나 오래 파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커리어를 옮겨온 나의 곁에는 이상하리만큼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 제일 친한 '절친'들만 봐도 그렇다. 절친 다섯 명중 세 명이 백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회사를 다녔었는데 지금은 모두 때려치고 다른 것을 준비하고 있다. 


주에 한 번씩 서로의 근황을 체크하는 모임이 있다. 우리끼리는 그 모임을 '방황자들'이라고 부른다. 하나같이 방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연봉 팔 천을 받으며 잘 나가는 스타트업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를 하다가 때려치고 몇 달 전부터 요가 강사가 되었다. 한 친구는 유망한 하드웨어 개발자였다가 때려치고 목공을 하겠다며 뚝딱뚝딱 의자와 테이블을 만들더니 최근에는 그만두고 또 다른 길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끼리 모이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꿈이 너무 자주 바뀐다고, 큰일이라고. 지금쯤이면 뭐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뭐가 될지 모르겠다고. 그런 얘기를 나누는 우리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살면서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던 꿈만 추려봐도 다섯 가지는 된다. 디자이너, 작가, 변호사, 과학자, 동물권 활동가....... 꿈이 자주 바뀐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가볍게 생각했다면 머리속에서 몇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고 포기했을 것이다. 정말 내 길이라고 생각해서 목표로 잡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액션 플랜을 짜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곤 했다.


문제는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을 때다. 새로운 관심사에 너무 깊게 몰입하면서 그 전에 것들은 모두 잊게 된다. 장기적인 계획도,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직업도, 이루고 싶었던 꿈도 시들해져 버린다. 대신 새로운 꿈이 생긴다. 새로운 계획, 새로운 천직, 새로운 목표. 뇌는 빠르게 돌아가고, 눈빛이 반짝반짝 해진다. 


이 때만큼은 놀라운 추진력이 발휘된다. 사업계획서도 쑥쑥 써 나가고, 필요한 자격증이 있다면 바로 시험을 접수한다. 관련 책을 수 십권씩 읽고, 앉아서 몇 시간 동안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 다시 한 번, 새로운 꿈에 몰입하게 된다.




대학교 시절, 부족한 학점을 채우기 위해 교양과목으로 프랑스어를 배웠다. 언어에 매료되어 프랑스에 꽂혔고, 그 다음에는 빠리라는 도시에 꽂혀 버렸다. 에펠탑, 바게뜨, 모나리자. 빠리에 대해 한 번쯤이라도 환상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하면 저 도시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여행으로는 부족했다. 저 곳에서 나의 삶을 가져보고 싶다.


이리 저리 머리를 굴리던 중, 학교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문의해 보니 파리에 있는 한 미술 대학교에서도 교환학생이 가능했다. 다만 비용이 비쌌다. 한 학기를 가는 비용으로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6백만원이였고, 거기에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의 월세와 생활비를 생각하면 최소 1,000만원은 필요한 셈이였다. 


무조건 장학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의 평균 학점은 3.0을 겨우 넘고 있었다. 이 성적으로는 장학금이 택도 없었다. 계속 바뀌는 관심사와 희망 전공 때문에 학업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다가오는 학기에도 영문학 수업부터 판화과 수업까지 아주 산만하게 수업을 신청한 때였다. 


내 생애 딱 한 번이다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4번 결석하면 F입니다, 하면 3번 결석하던 나였다. 처음으로 출석을 꼬박꼬박 채우고, 과제와 시험에도 충실하게 임했다. 중간 성적을 확인하고 조금 아쉬운 성적을 받은 과목은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내 왜 이 성적이 나왔는지,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까지 체크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학점 발표날. 4.5 만점에 평균 4.3. 내 생애 딱 한 번뿐일 성적이다. 그래봤자 평균 학점은 낮았기 때문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나 싶긴 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전 학기 성적 대비 얼마나 성적이 올랐는지를 기준으로 나오는 '성적 격려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오케이, 학비는 해결했다. 다음은 월세와 생활비였다. 생활비는 일단 가서 부딪혀 본다 치고, 월세가 문제였다. 파리의 월세를 찾아보니 아무리 싸도 한 달에 백 만원은 내야했다. 백 만원을 낼 재간이 없었고, 당장 6개월치 월세를 벌어낼 재간도 없었다. 월세가 한국과 비슷한 정도면 어떻게 모아둔 돈으로 내볼텐데... 고민 끝에 월세를 같이 낼 룸메이트를 찾기로 했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과 살기는 또 싫었다. 


멀쩡히 회사를 다니고 있는 절친에게 연락했다. 끼리끼리의 법칙대로 이 친구 역시 이런 저런 관심사를 쫓다가 지금은 인테리어 회사에 다닌지 6개월 남짓 된 시점이였다.


"프랑스 가자. 월세 반띵할 사람이 필요해. 6개월만 살다 오자."


"프랑스? 재밌겠는데? 한 번 알아볼게."


알아보겠다고 말한지 이틀만에 친구는 프랑스 워홀 비자 신청 절차를 밟고 있었다. 나도 학생 비자 절차를 밟았다. 그렇게 우리는 프랑스에 함께 가게 되었다. 


꿈에 그리던 파리에 도착해 열심히 집을 알아 보았고, 멋진 공원이 근처에 있는 동네에 적당한 가격의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일상이 되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파리에서의 생활을 꿈꿨지만, 막상 익숙해지고 나니 다시 권태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명색이 파리의 미대인데 수업은 기대 이하였고, 손짓 발짓을 더한 기초 수준의 프랑스어로 의사소통 하는 날들도 지쳐만 갔다. 에펠탑을 봐도 동네 전봇대보다 감흥이 없었고, 길을 걸을 때 마다 밟히는 개똥이 정말 지긋지긋했다.


파리에서 지내는동안 남들 다가는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 미술관을 한 번도 못갔다. 아니 안 갔다. 베르사유도 안 갔고 지베르니도 안 갔다. 조그만 집구석 침대 위에서 핸드폰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너무 무료했다. 무턱대고 파리에 온 스스로를 자책하고 어떤 날은 한식집에서 2만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으며 엉엉 울었다.


김치찌개를 먹고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오던 중 크로스핏 센터를 발견했다. 


"루브르 크로스핏" 


프랑스에 오기 전 크로스핏을 몇 달 다녔었는데 파리에서 이렇게 마주치다니. 궁금한 마음에 센터에 들어갔다가 결국 충동적으로 세 달권을 등록하고 나왔다. 


운동을 매일 매일 갔다. 없는 돈을 쥐어 짜내서 끊었다 보니 하루만 안 가도 돈이 너무 아까웠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도 갔다. 평생을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았는데, 그렇게 한 달간 매일 운동을 하니 근육이 제법 붙었다. 두 달 뒤에는 5분 초반대 페이스로 3km를 뛸 수 있었고, 세 달 뒤에는 턱걸이를 할 수 있었다. 운동의 세계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땀을 흘리면서 얻는 순도 100%의 쾌감. 몸에 근육이 붙으며 더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있을 때 느끼는 성취감. 그 뒤로는 헬스에도 관심이 생기고, 런닝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운동은 나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조각이 되었다. 물론 운동의 종류는 매번 바뀌고 있다. 크로스핏, 요가, 런닝, 헬스. 한 때는 크로스핏 코치를 꿈꿨고, 지금은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려고 알아보고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너 프랑스에서 뭐했어?"라고 묻는다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운동!"밖에는 없다. 예술의 꿈을 꾸고 날아간 프랑스에서 운동인이 되어 돌아오다. 처음 의도한 바와는 다소 다른 결말이지만, 매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되기 위한 길을 걸으면서 살아왔다.


어쩌면 꿈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꿈이 바뀔 때마다 그 꿈을 다시 쫓기까지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내려놓고, 다시 0에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라고 대단한 용기가 있어서 매번 바뀌는 꿈을 쫓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 재미와 흥미가 삶의 너무 큰 동기부여였기에 관심이 가지 않는 일은 도무지 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향으로 목표를 바꾸어도 "하면 또 잘 될거야." 생각해 버리는 것도 이런 변덕스러운 면을 가중시켰다.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꾼다. 불안한 마음도 그대로지만 확신이 드는 부분도 생긴다. 다양한 꿈을 향해 도전했던 사람에게 새로운 시작은 0에서 출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다섯 갈래의 길을 만들며 야금야금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길들끼리 만나는 지점이 온다. 


어렸을 적 놀이터에서 많이 했던 두꺼비 놀이를 떠올려보자. 처음에는 한쪽에서만 터널을 파기 시작하다가 어느 정도 가운데에 도달하면 반대쪽에서도 터널을 파기 시작한다. 조심조심 양쪽을 파다보면 가운데에서 딱! 두 손이 만나 길이 뚫린다. 한쪽 방향만을 향해서 흙 파다보면 길을 뚫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양쪽에서 파다 보면 길이 금새 이어진다. 


길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길은 결코 일방통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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