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설렘

일상이 단단해야 여행이 설렌다

by 산만한 프리랜서


꽤 오래 전부터 여행은 나에게 설레고 신나는 일이라기보다 썩 시시하고 미지근한 것이 되었다. 어릴 적 반복된 전학과 유학 생활을 지나오며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일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으로 지구에 태어나서 새로운 환경을 겪는 것은 숙명이다. 그랬기에 나는 어떤 새로운 경험에도 당황하지 않고 노련한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이름이 뭐야?"

"어디서 왔어?"


따위의 질문들. 또는 전학생을 향한 미묘한 신경전에 나는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매번 "이거 다 별 거 아니야" 라는 주문을 속으로 너무 내뱉은 탓일까? 중학교 1학년때부터 매년 이어진 전학생활의 마지막 전학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고 그 때 나는 덤덤하게 혼자 급식실에 가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 수준이 되었다.(친구 관계에 몹시 예민한 사춘기 시절, 급식실에 혼자 들어가 밥을 먹는 것은 위인전에 실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라는 산문에서 여행을 일상의 부재라고 표현한다. 뻔하고 익숙하게 굴러가는 일상의 부재, 그것이 곧 여행이라고. 반면 나는 여행지에서도 일상을 살아가는 현지인처럼 보이려고 매번 노력했다. 새로운 광경에도 놀라지 않고 새로운 배움에도 능숙한 척 하기.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설레는 여행조차도 시시해지기 마련이다.


좋은소식은 오히려 나이가 들고 세상에 익숙해지고 경험이 쌓일수록 나에게는 설렘이 늘어났다는거다. 여행이 다시 설렌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 돌아올 이상이 단단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파주의 집, 짜장이라는 가족, 매일 운동하러가는 요가원과 크로스핏 박스. 기반이 단단해지고 나니, 이 일상의 부재할 여행이 다시금 설렌다.


세 명의 친한 친구들과 일본의 한 작은 소도시 다카마쓰로 향하고 있다. 직항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비교적 정보가 많지 않았다. 매번 일본 여행은 어줍잖게 일본어를 조금 한 다는 이유로 모든 여행 계획이 내 몫이였다. 이번 여행은 친구들에게 모조리 맡겼다.


여행에 무슨 캐리어를 끌고 가, 대충 츄리닝 한 벌이면 되지 하던 나인데 친구에게 캐리어까지 빌렸다. 15kg가 수화물 limit인데 13kg를 찍었다. 매일 다르게 입을 옷을 머리를 데굴데굴 굴려가며 챙겼다. 출국 하루 전인 어제는 설레서 잠도 오지 않았다.


설레는 여행,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여행을 기대할 수 있다는건 나에게 단단한 일상이 존재한다는 것. 비행기 타는 것을 너무도 싫어하지만 책 한 권을 읽고 이 글을 쓰며 설레는 마음으로 하늘 위에서 버틴다. 곧 착륙한다고 한다. 야-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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