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니는 여행 중 Nov 03. 2021

이래서 콜롬비아가 좋더라

가진 건 편도 티켓뿐, 240일간 이어지는 무계획 여자 혼자 남미 일주


길을 걷다 보면 느껴지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커다란 눈망울. 한 달 정도 있다 보니 이젠 훤히 보인다. ‘저 사람 셋 셀 동안 나한테 다가올걸? 하나… 둘… 역시!’

 
뭐하나 빼어난 구석이 없음에도 콜롬비아에선 언제나 슈퍼스타다. 같이 사진 한 장 남기고 싶다며 다가오는 사람들. 어디서 왔고 어떻게 여행 중이냐며 질문 세례가 끊이지 않는다. 향후 십 년간 들을 ‘예뻐요!’ 소리를 지난 한 달간 몰아받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관심이 부담스럽다기보단 순수한 마음이 그저 그대로 느껴져 귀엽기만 하다.



여전히 카리브해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카르타헤나는 바닷가에 위치한 마을이라 해안가를 따라 식당과 카페들이 즐비해있다.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비록 몇 년도 몇 달도 아닌 고작 며칠간의 시간이지만 이 마을을 떠올릴 때면 언제든 함께 떠오를 소중한 인연을 만들기 위해 신중해야 한다.
긴 시간 앉아있어도 부담스럽지 않을 적당한 규모인지,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를 팔고 있는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떠한지…. 그렇게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창문 너머로 직원 언니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내게 환한 미소를 보내주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미소 지으며 가게 안으로 향하게 되었다.


Bienvenido! (어서오세요!)


역시 커피의 나라 콜롬비아스러운 메뉴판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에겐 다소 낯선 전문 용어들의 향연이었다. 다행히도 모든 메뉴 옆엔 작은 그림과 설명이 곁들여 있었고 주사기 비슷한 모양이 그려져 있던 ‘에어로프레스’를 주문해 보았다. 그리고 귀여운 과일 머핀 하나도 함께.
 
미소를 건네던 직원은 여전히 싱글벙글한 표정이다. 내게 주문을 받으러 오며 물었다. 아주 뻔하게도 첫 번째 질문은 역시나 ‘어디서 왔니’.
한국인이라 말해주자 한국인 손님은 처음이라며 또다시 그 예쁜 미소를 짓는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친절한 콜롬비아 사람들. 길을 걷다 보면 인사치레가 아닌,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듯 사랑이 가득 담긴 'Como esta! ♡ (How're you)' 안부 인사를 쉴 새 없이 들을 수 있다.

콜롬비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샛노란 튤립이 딱일 테다. 강렬한 햇살, 따듯한 마음씨를 지닌 현지인들 그리고 국가대표 축구 유니폼 색. 축구 강국의 자부심일까 지나다니는 남자의 절반은 언제나 유니폼을 입고 있음이 여전히 놀랍다.



커피를 주문하고 앉을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작은 계단이 눈에 띄었다. 조그마한 계단들이 미리 말해주듯 이층의 규모는 매우 작았다. 테이블 두어 개와 벽에 장식된 그림 몇 점이 전부였다.

경비 절약을 위해 항상 다인실을 쓰느라 혼자만의 고요한 순간을 긴 시간 그리워해왔는데 텅 빈 공간은 드디어 그런 순간을 마주한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후 몇 명의 손님이 더 들어왔지만 이층으로 올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덕분에 삼십여 분 내리 고요함을 즐길 수 있었다. 정말이지 편안했다. 달콤한 머핀에 취한 채 흘러나오던 잔잔한 노래에 박자 맞춰 고개를 가볍게 흔들감성에 잔뜩 젖은 일기 여러 편을 남겼다.


이제 이 마을을 추억할 때면 언제나 함께 떠오를 특별한 공간 하나가 생겼음에 신이 났다. 일층으로 내려가 직원에게 내일 보자고 인사를 건네며 밖으로 나섰다.

여전히 해는 정수리 위에 떠있었고 마을의 명소인 구시가 골목들을 향해 발걸음을 이어갔다.



카르타헤나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처럼 수많은 골목길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마을이다. 그렇지만 지도는 필요 없다. 골목골목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걷고 헤매는 게 이곳의 묘미이다. 겉보기에는 음침해 지나가기가 께름직해도 막상 용기 내어 발을 들여보면 그 용기에 응하듯 아기자기한 파스텔톤의 집들과 잘 관리된 정원들이 반겨주곤 했다.



콜롬비아에서 가장 사랑하는 도시인 과타페와 똑 닮은 오색빛깔 찬란한 모습에 이만보를 걸어도 입가의 미소는 사라질 새가 없었다. 점차 마을 안에서 걸어보지 않은 골목들이 줄어감에 따라 레벨 업을 하는 기분이었다.


구시가지의 끝은 바다로 이어진다. 바닷가에는 과거 캐리비안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린 성벽이 길게 늘어져있다. 노을이 질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성벽에 올라 바다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어폰을 꺼냈다.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에 상쾌함이 느껴졌다. 노을이 모두 지고 별들이 하나둘 떠오를 때까지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다. 매분마다 노랑에서 빨강, 분홍과 보라색으로 휘황찬란하게 변화하던 하늘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그 빛깔들은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집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곳곳에서 경쾌한 음악소리가 들리고 술잔을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지만 나의 발걸음은 젤라또 가게로 향했다. 내게 상기된 기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술 한 잔이 아닌 아이스크림이다.
한 손에 콘 아이스크림을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밤이 내려앉아 낮과는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는 골목 어귀를 걸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제일 좋아하는 도시가 오늘 밤 바뀔지도 모르겠다고.

바로 이곳 카르타헤나로.






내일은 어디서 눈을 뜰까요

가진 건 편도 티켓뿐, 240일간 이어지는 무계획 여자 혼자 남미 일주

By. 제니 (@hyeziinii)

매거진의 이전글 지구 반대편에서 마주하는 '진짜'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