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은 그만 두어야겠다고 느끼게 된 계기는 내 개인 에이전시를 차린 후 약 1년이 지났을 때였다.
20대 중반까지는 나와 창업은 맞지 않고, 절대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사업을? 그냥 좋은 회사 들어가서 월급 받고 살면 감사하고 편한 삶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사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시험을 준비하고 번듯한 회사를 들어갈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나이가 찰 수록 회사라는 집단은 나를 나태하게 만드는 원흉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
아직 '성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매우 멀지만, 20대에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소중하고 30대 이후의 또 다른 도전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20대 후반에 창업 경험이 아닌 그냥 일반 회사에 다녔더라면 절대 깨닫지 못했을 부분도 정말 많고, 현재 그 이상으로 크고자 하는 꿈도 꾸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나는 현재 매출에 절대 만족하지 않고 있고, 성공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게 된 내 모습이 과거의 월급 만으로 만족했던 내 모습보다는 훨씬 좋고 만족스럽다.
오직 내 자신 내 능력만이 내 미래를 책임져 줄 뿐이다,
진지하게 내 자신에게 물어봐야한다 : 당장 회사의 테두리 없이 사회에 내동댕이 쳐 졌을때, 오롯이 내 능력 하나로 돈을 벌 수 있을지.
아니라면 당장 내가 회사라는 테두리 없이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가 되어야 하며, 누구를 위해 일해주는 직원이 아닌, 내 사업, 내 서비스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특히 여행을 좋아하고 여기저기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60대 이후 은퇴후 부자가 아닌 30대에 여유를 가지며 누리고 살고 싶은 부류에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레버리지" 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태에 빠져 회사에 재취업을 하고 싶었던 내 자신을 다잡았다.
결국 회사라는 존재는 나를 게으르게 만들고 월급의 노예로 만들어, 창의적이고 사업적인 내 능력을 잠재울 수 있다.
월급은 마치 달콤한 마약과 같아서, 쉽게 끊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처음 사업을 하고자 했을 때 (사실 당시에는 프리랜서에 가까웠음) 바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배가 고파지고 손가락을 빨게 되니까 나의 의지가 불타오르고 먹고 살아야 하니 아무리 잡일이라도 무장적 감사하며 하게 되더라.
현재 나는 직원을 쓰고 있다. 수많은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고용하면서 느낀것인데, 장담컨대 최소한 데드라인을 잘 지키고, 꼼수를 쓰지 않고 사기 칠 생각이 없는 보통 이상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프리랜서로서는 정말 꼭 어느정도 위치에는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랜서 한정, 클라이언트의 기대치는 그다지 생각보다 높지않다.)
한 가지 아이템으로 어느정도의 수익을 올려본 경험이 있으면 다른 사업을 구상하거나 시도할때도 마음가짐이 남다른 것 같다.
확실히 "성취의 경험"이 인간에게는 중요하다.
나는 지금까지 왜 기업에서 학벌을 중요하게 보고, 사회에서 좋은 대학을 가라고 하는지 크게 이해하지 못했다.
공부의 목적은 높은 점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과, 내가 열심히 죽어라 노력해 본 경험을 가지는 것이다.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수능 공부를 위해 밤새 노력하고 열심히 쥐어짜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경험으로 인해 사회에서, 업무를 할때도 견디는 능력과 인내심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버티는 힘이 다른 것이다.(물론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조건 학벌과 능력의 상관관계를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이북 사업을 했던 마케팅 사업을 했던, 구매대행 사업을 했던 중요치 않다. 그냥 내가 그 하나의 서비스로 얼마가 됬건, 돈을 번 경험이 있다면, 다른 사업에 있어서도 큰 시너지 효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보다 여리고 남에게 기대는걸 좋아하고 게으르며, 쉬운길을 찾고 싶어하는 게으름뱅이 소 같은 성격이다. 핑계도 많고 스트레스도 쉽게 받는 유리멘탈이다. 솔직히 나는 나보다 더 유리멘탈인 사람을 거의 본적이 없다.
이러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20대 내내 부단히 노력했으나 정말 쉽지 않았다.
특히 가까운 친구가 생기거나 회사에 취직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회사나 친구(혹은 남자친구)에게 기대는 성향이 강했고 그로 인해 온전한 내 생활과 나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또한 내가 기대는 그것에게 집착을 하게 되고 지나친 기대를 하게 되어, 만약 잃게 되면 멘탈 관리가 쉽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사업은 한 인간의로서의 독립을 의미한다. 난 나만의 서비스 및 사업 구축을 통해 누군가에게 쉽게 기대지 않고 내 자신의 삶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또한 나보다 더 스펙 좋은 남자, 신랑감 찾기에 대한 생각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성공에 대한 욕구가 더 커지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이성에게 쉽게 기대거나 문제를 쉽게 돌파하려고만 하거나 흐린눈으로 쉬운 길을 선택하는(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자신이 없어 이성에게 기대서 하는 결혼) 그런 선택은 위험성이 큰 것 같다. 하지만 내 자신이 경제적/심리적/자존감 적으로 확실히 정립 되지 않는다면, 결혼 전 단단하게 쌓지 않았던 내 자신의 온전하지 않는 삶은, 30,40대에 다시 나를 어떤식으로든 괴롭힐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정답은 없다.)
열등감과 시기 질투는 정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나는 열등감과 시기 질투를 관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어렸을 때 나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유학생들이. 그런데 마음속 한구석에는 계속 이렇게 부러워 하느니 그시간에 영어를 배워서 내가 이런 사람이 되는게 낫겠다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못하는 것보단 하는게 나으니까.
이 열등감을 고치기 위해서는 그냥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 혹은 그런 환경을 피하거나 아니면 정면으로 돌파하여 나도 완벽히는 아니지만 근처라도 가면 된다. 그래서 나는 주저 없이 해외로 나갔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은 멋도 없었고, 절대 상상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나는 외국계 회사에서 영어로 발표하고 미팅하고 멋지게 일하는 커리어 우먼들이 너무 부러웠다.(특히 핀테크,금융 관련 회사에 환상이 있었다) 그래서 전공도 아니었지만 노력해서 결국 외국에서 외국계 핀테크 회사에 입사를 했고 나름의 직장생활을 겪었다.
그리고 난 이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사업을 하고 그 능력을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하지만 부자인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그 부를 나누는 루트를 가는 것 보다는 내가 능력을 가져서 이 열망을 완벽히 해소하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에 기대어, 누군가를 통해 그 열등감을 해소하려 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행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대상에서 더 집착하게 되고 이는 곧 관계에 있어 갑을 관계를 형성하는 동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30대의 나는 어떤 열등감이 생길까? 그 열등감을 극복하는 과정이 기대되기도 하다. 하나씩 극복할때마다 내 능력치가 상승하는 기분이다.
내면의 열등감을 이겨내는 방법은 두가지 인 것 같다.
최대한 그 욕망을 무시하고 그냥 인정하며 살던가 (만약 그 욕망을 무시하는 동시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질투하게 되고 열등감을 표출하게 된다.. 제일 창피하고 이불킥할 행동이므로 안하려고 노력해야한다)
아니면 당당하게 맞붙어야 한다. 이왕 사지 멀쩡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열등감에 당당하게 맞붙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매우 강한 존재이다.
사람들에게는 그 누구나 이상형이라는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성'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동성을 바라볼때도, 내가 되고자 하는 '인간으로서의 이상형' 말이다.
원래 사람은 끼리끼리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기 마련이라고들 한다. 물론 100%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부분에서 차이가 나도 어떠한 부분에서 극단적으로 잘맞기 때문에 어울릴 뿐이지, 일반적으로 끼리끼리라는 습성은 어느정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나도 어릴적에는 이상형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나보다 돈을 잘 벌고, 학벌도 좋고, 똑똑했으면 했다. 인간으로서의 이상형은 나보다 똑똑한 친구, 항상 미래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이자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요새 이러한 개념이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부터 오는 열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돈을 잘 번다면, 굳이 이상형이 돈 잘 버는 남자일 필요성이 조금은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내가 그 위치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주변 환경도 그렇게 변할테니까. 하지만 내가 그렇지 않다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아마 '재력을 갖춘 사람들'은 유니콘처럼 찾기 어렵기에 더 이상화를 시키게 될 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연히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이 사람을 놓치면 다신 이런 부류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갑을 관계가 생길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다방면으로 똑똑하고, 이해심 많고/친절하고/글도 잘쓰고, 커리어적으로도 독립한 사람이 좋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 자신을 내 이상형에 맞추게 된다면, 내 자신에 대한 사랑도 더 커질 것이고 더이상 뜬구름 잡는 시간 낭비 행위(그런 유니콘을 찾으려는 노력) 로부터도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누군가를 만나게 되더라도 그 사람을 내 기준에 맞추려고 괴롭히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내가 이미 내 이상향인 사람인데 굳이 내 주변사람들에게 기대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하진 않을것이다.
물론 수년이 걸릴 것이고 평생 내 자신을 내 이상향에 맞추기는 쉽지 않겠지만 노력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성장하고 나은 삶이 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