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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땡땡 Dec 20. 2022

캐나다에 사는 1010 이야기 1. 프롤로그

마취가 일찍 풀렸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인생은 산 너머 똥밭. 

어짜피 똥밭을 지나도 결국 또 다른 산이 나오기에 지금의 상황을 즐기....(즐기기는 힘들겠지만요) 

어떻게 산을 넘고, 어떻게 똥밭을 굴러다녔는지 기록해 봅니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면, 혹은 누군가 지친 하루를 보냈다면 위로와 응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이 글을 시작해봅니다. 솔직한 글을 위해 존대가 아닌 일기 형식으로 써볼까 해요. 제 깊은 빡침은 존댓말로 표현하기 힘들더라고요. 그럼 시작합니다. 



캐나다에 산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캐나다에서 한국인을 만나서 친해지다보면 꼭 서로 묻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해서 캐나다에 오셨어요?" 


내 답변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아 그러게 말입니다, 눈에 뵈는게 없어서 그런지 눈 떠보니 캐나다네요?"

"결혼해서 오게 되었어요."

"남편이 여기서 공부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등등..



첫째와 둘째도 곧 이런 질문을 하겠지?

"우린 왜 캐나다에 살아?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 한국에 있잖아" 

"엄마는 아빠랑 어떻게 만났어?" 


사실 엄마는 캐나다에 살 생각이 없었어. 어쩌면 아빠를 만나지 않았다면 더욱 살 일이 없었겠지. 

캐나다에 살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지만, 어떻게 엄마가 아빠를 만났는지 알려줄게. 

사실 이게 드라마였으면 진짜 이리꼬고 저리꼬아서 결국 어떻게 만났냐고 날 쏘아붙이겠지만, 

엄마는 바로 얘기해줄게. 


캐나다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 학생이 한국에 잠깐 들어온다는거야. 

엄만 그때 한국에서 직장인이었는데, 마침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 

당연히 할머니는 딸 혼자 유학보내는게 걱정이 되니까 사람만 좋다면 결혼해서 보내고 싶다..란 생각을 하셨고, 마침 동네에 살고 있는 총각이 한국에 들어온다고 하니까 할머니가 엄마 연락처를 넘겨주셨대. 

그게 11월 이었지. 


뭐야..연락한다면서 뭔 연락도 없어....흠.. 

됐다. 이번 크리스마스 차라리 라섹 수술 받아서 며칠 누워서 지내야지.. 란 마음에 크리스마스 며칠 전 라섹 수술을 받았어. 참고로 라섹 수술은 진짜 아픈데 그렇게 아팠으면 엄만 수술을 안받았을거야. 라식을 받았겠지. 


라섹 수술을 받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지금은 마취기운이 있어서 괜찮겠지만 마취 기운이 사라지면 며칠 고생하실거예요. 시력은 안좋아졌다가 다시 천천히 좋아질 겁니다.> 


오후 1시였던가? 수술을 받고 집에 왔는데 생각보다 괜찮은거야. 마취를 세게 했나? 뭔가 눈은 너무 답답한데 왜 안아프지? 이러고 있는데... 그때 전화가 왔어. 


원래 모르는 번호는 잘 받지 않는데,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일단 받았지.


"안녕하세요. 저 박뭐시기 인데요. 늦게 연락 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늘 혹시 시간 있으세요?"


자,,,보자보자. 오늘 시간이라... 

그때 몇 초간의 찰나...는 지금도 잊지 못해. 

앞도 잘 안보이는데 만나러 갈 것인가? 지금 보지 않으면 이 사람과 앞으로 볼 일은 없겠지. 


인생은 참 재밌어. 

만약 수술 시간을 오전에 잡혀서 마취가 일찍 풀렸으면...

엄마는 너희를 만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가 되었을까? 

나는 한국에서 살았을까? 

나는 한국에서 했던 일을 계속 하고 있었을까? 


가뜩이나 수술받아서 힘든데 

게다가 화장도 못한 쌩얼에, 눈은 부어있고, 머리도 헝클어져있고, 게나가 눈도 펑펑 오는 이 날에,....


근데 일단 보기로 했어. 왜냐하면 마취가 그렇게 무서운거란다. 

어짜피 앞으로 며칠 동안 집에서 누워있을텐데, 

쌩얼은 뭐 내가 내 얼굴을 보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내 얼굴이 싫으면 그 사람이 싫은거지.. 

눈에 뵈는게 없으니 그냥 만나기로 했단다. 


그래서 눈 뜨고 정신차려보니 엄만 캐나다에서 살고 있네? 

하지만 엄만 알고 있었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그 사람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난 이 사람과 결혼할 것 같단 강한 생각.. 

진짜 믿지 않았거든. 한눈에 반한다.. 이런 말. 

물론 엄마한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어. 

엄마는 앞이 잘 안보였거든. 


그때 아빠가 그러는거야.

"왜 별똥별이 떨어질때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지는지 아세요?" 

잠깐, 이 대화가 나온건 2010년, 그러니까 이런 감성이 었던 시절이었어. 


이 질문을 듣자마자 난 이 사람과 결혼하기로 다짐했지. 

왜냐하면 그 시절 엄마가 엄마에게 늘 물었던 질문이었거든. 


별똥별이 떨어진다면 그 찰나에 내가 소원을 빌 수 있는 간절한 무언가가 있을까? 
나의 간절함은 무엇일까? 


그 당시 아빠의 얼굴은 잘 기억이 안나. 뿌옇게만 기억이 나지. 

하지만 추운 겨울, 눈이 펑펑 오던 그 밤. 

구두 때문에 눈길을 조심히 걷던 그 날, 

어쩌면 결혼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으로 가득한 그 밤. 



결론은 오히려 너네들이 잘 알잖니.

엄마는 아빠와 결혼했고, 두 딸을 낳았으니까. 



시간을 지나서 생각해보니 엄마는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었지. 

 마취는 (여러모로) 무서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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