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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jenny Jun 03. 2024

우리 가볍게 떠나볼래?

 나를 찾기 위한 첫걸음

나에게 여행은

 '책임이라는 공간에서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이다.

그리고 나를 찾아 돌아오는 방법이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한 계기는 대학시절 유럽배낭여행이었다.

나의 대학생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내가 모아서 나 혼자 가기~!

과외에 알바를 열심히 하며 꼬박꼬박 모은 2년 만기 적금으로 난생처음 타보는 비행기!


그 짜릿함과 약간의 설렘,

그보다 조금 더 있었던 두려움도 막상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왔다”라는 만족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나 혼자 다른 세상에 있다는 색다른 흥분감~!이었다.

정해져 있는 일정이 아닌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나의 눈과 발걸음의 방향만 정하면 되었던 자유의 시간!

취리히 호수에서 누구의 간섭도 없이 햇살을 친구 삼아 벤치에 누워있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익명성의 자유..

다음날은 비엔나 시청사광장에서 베를린 필의 연주와  카라얀의 지휘를  커다란 외벽 화면으로 보며

흠뻑 취할 수 있었던 행복감,

새로운 공간의 자유로운 공기를 다시 맛보기 위해

꼭 다시 오자고 스스로 약속을 했다.


이후 매일 나의 일상은 해야 할 일정과 역할이라는 짐을 생활이라는 가방에 넣고

익숙함이라는 옷을 입고 채워진다.


잘 살아야지.. 멋지게!

는 이후 나의 일상의 다짐이었고

최선이라는 단어가 늘 익숙하도록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려면 생각도 표정도 관계도 유연하고 세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노력했다.

인정받고 성과를 이룰 때마다 뿌듯했다.


남들은‘너의 그 열정이 어떻게 늘 지속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지치지 않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 뿌듯했고

내가 그리는 인생의 포트폴리오를 더욱 그럴싸하고 멋지게 수정하고 만족해 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선택은 성과에 맞춰지고

책임은 잘 다려진 옷 마냥 늘 각이 제대로 잡혀야 했다.

그리고 그 탄탄한 긴장의 끝, 어느 순간 번아웃이 왔다.

  

최선의 내력만으로는 강한 외력을 막을 수 없는 이후부터 말이다.   


내 마음의 내력이 무너지고 나니

관계의 유연함을 위한 세련됨도 표정도 늘 입고 있었던 단단한 갑옷도 나도 무너졌다.

가야 할 방향도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힘도 사라졌다.

나를 더욱 고립시켰다.

20대의 부족하지만 순수한 열정을 발판 삼아 결혼 이후  가정을 얻었다.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은 나를 성숙하게 했고 책임을 다하고 모두 행복할 수 있으려면

경제력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남들보다 더 많이 빨리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수학처럼 덧셈, 뺄셈만 있는 게 아니었다.

80프로의 성공가능성이 있다 할지라도 때론 20프로의 변수가 그걸 뒤집어버리기도 하더라.

갑자기 길을 잃어버렸다. 신체적인 건강도 정신적인 건강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내 몸이 내가 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

누구보다도 팔팔하게  뛰어다니던 내가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옴짝 달짝 못하게 묶어놔 버리고

눈도 생각도 멈춰버린 것 같았다....

갑자기 모든 것이 무겁고 무서웠던 그때 여행을 떠났다.

아무런 준비와 지식 없이 떠났던 나의 20대처럼 다시 혼자 여행은 기대하지 않고

눈과 발걸음의 방향을 오로지 내 마음의 소리만 따라서 갔다. 간절히....

누구와 함께 해야 했고  어울리고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빼앗기지 말아야 했고

끌고 가야 할 책임감 때문에 늘 긴장해야 했다.


그랬던 나를 잠시 내려놓고 멀찍이 보니 짠했다.

그리고 수고했다고 토닥여주었다.

자기 연민으로 너무 감상적이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궁극의 상황에 다다랐을 때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와 솔직한 애착형성이 안 돼 힘들게 견뎌왔던 나를 안아주고 싶었다.  

   

여행은 꼭 물리적인 길을 떠나는 것만이 아니었다.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 떠나는 것도 여행이었다.


역할이라는 짐을 조금 내려놓고 책임이라는 옷도 때론 숨을 쉴 수 있게 느슨하게 입어보니

더 성숙해 보였다.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나에 대한 첫 느낌이 전혀 다른 나에 대해 말할 때  희열을 느꼈다.  

   

어쩌면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의 가면을 쓰고 살아오지 않았을까?

이제는 답답한 가면을 벗고 나를 위해 환하게 웃는다.     


우리 가볍게 떠나볼래?


나는 이제 언제든 또 다른 나를 찾을 여행의 준비가 되어있다.  

무엇이 되기 위해 누구를 위해가 아닌

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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