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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테를 찾아서

by madame jenny



고대 희랍인들에게 덕이란,

선량함이나 고귀함이 아니라

어떤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하잖아.


생각해 봐.


삶에 대한 사유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언제 어느 곳에서든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는 사람..

덕분에 언제나,

필사적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러니까 바로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사유에 관한 한 최상의 아레테를

지니고 있는 거 아니겠니?"

― 『희랍어시간』, 한강


새벽에 생전 처음으로 알람을 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듣지 못했다.

하물며 새벽에 늘 일어나는 시간인데도..

헛..

서울에 수업이 있어 기차예약이 있었는데

게다가 첫 수업인데..

..

아뿔싸.

기차 시간에 다 되어 일어나다니..

빛의 속도로 옷과 가방을 챙겨..나갔고 예약기차는 취소하고 입석으로 간신히..

다다음기차로 예약했다..

어젯밤의 한 구절이 내내 머리와 마음에서

떠나질 않아.. 생각다가 잠들었는데..


한강작가님의 <희랍어 시간>에 나오는

각자의 막혀있는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결핍의 등장인물들.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말을 잃은 여자....

생(生)에서 가장 기본적인 능력을

어가는

사람들..

치료의 방법조차 없는 그들에게

삶이란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빠르지 않게 느리게..


치명적인 결핍은 강한 동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즉 그들에게 삶을 사유하는 최상의 능력,

곧 ‘아레테(덕)’를 부여한다.


삶이란,

때로는 나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지만, 그 빈자리에 새로운 질문과 느낌표 같은

이유가 자란다.

언제든 죽음과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은 두렵지만,

그 덕분에 삶의 의미를 더 치열하게 묻고,

더 간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모든 건 보는 관점과 이유를 다각도로 보면

달리 보인다.

역설이 있다.


결핍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더 깊은 사유와 이해, 그리고 연대의 자리로 이끈다.

나 역시 내 삶의 결핍 앞에서,

주인공처럼 묻고 싶다.

“나는 지금, 나만의 아레테를 찾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이 내 안에 남아,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 나를 더 단단하게,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리라 믿는다.


요즘 새로운 일에 대한 브랜딩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주류와 비주류에 대해 많은 고민이다.

혹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혹 외면당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공간에 따스함과 관심을 통한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공감하는

큐레이션을 해주고 싶은

내 마음은 따스한 풍성함을 담아주고 싶은 동기에서 출발이다.


다수가 원하지 않아도

정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하는 나의 동기가

희랍어(소멸해 가는)처럼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언어는 아니지만

주인공들에게는 희망과 위로를 주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단절에서 벗어나

새로운 동기와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두 주인공에게 희랍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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