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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Jan 05. 2018

정신이 맑을 때 하는 여행

[캐나다 일상이야기] 3박 4일간의 시카고여행

가을학기 도중에 학교파업이 일어났던 탓에 원래 3주 예상이었던 겨울 방학이 1주로 줄었고,    

겨울 방학전에 모두 끝났어야 하는 파이널 시험, 가을학기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팀 프로젝트, 파이널 레포트 제출,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팀 프로젝트 프리젠테이션.  

이 모든 것들이 방학이 끝나는 즉시 해야하는 스케쥴로 변경됐다.     

파업 탓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미드텀 시험, 모든 밀린 과제들을 제출하느라 정신없었고,  

1년짜리 대학원 프로그램이라 7과목이 모두 전공과목이고 어떤 과목 하나 과제나 시험이나 과제를 줄여주려고 하지 않았고 사실 그래야 하는 것도 맞다.    

매주 50페이지가 넘는 과제를 내야하는 한학기간 진행되는 큰 프로젝트가 있는데 남은 6과목도 매주 시험에 과제가 있어 정말 갑자기 정신이 없었다.    

특히 방학이 시작하기 3주 전부터 폭풍같은 과제들로 정신이 없어 계획부터 짜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스케쥴이 꼬일 줄 모르고 미리 예약해놨던 시카고여행을 취소하면 수수료를 내야하기 때문에 고민하다 그 전에 미리 끝낼 수 있도록 최대한 계획을 짰다.    

미리 최대한 끝내놓고, 어차피 여행은 3박4일이니까 노트북을 들고가서 중간중간 과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개인과제, 시험공부를 했고 팀 프로젝트들은 미리 파트를 나눠 내가 해야할 파트를 미리 시작했고 가장 빨리 제출해야 하는 과제부터 차분히 해 나아갔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새벽까지 과제만 하다보니 답답하고 파업이 원망스러웠지만 점점 리서치 스킬이 늘어가는 것같아 괜시리 뿌듯하기도 했다.   

처음에 내줬던 과제를 지금보면 정말 너무 쉬운 몇시간짜리 과제에 불과한데, 그땐 그것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계속 헤맸는데 말이다.    

그렇게 매일 과제를 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을 하며 해결하고 지냈다.  

하루라도 귀찮아서 내일 하지뭐 이런 미룸을 할 수가 없는 현실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혼자 깔깔 웃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시카고여행에서 돌아와서 이틀간 마무리하고 프리젠테이션 전날까지 팀원들과만나서 하루종일 하면 되겠다는 어느정도틀이 잡혔고,  

시카고 여행과 크리스마스 저녁이라도친구들과 놀기 위해 (?) 최대한 집중해서 어려운 과제부터 차근차근 해 나아가고 있는데……..  

법, HR수업 때 갑자기 파이널 프리젠테이션 다음날까지파이널 과제를 또 추가로 내준 것…    

파업 때문에 밀린 과제들, 시험들을 다 해내고있는 우리한테 그것보다 가장 중요한 한학기간 비즈니스 팀프로젝트를 해서 만든 책을(논문) 제출하고, 모든 교수들 앞에서 최종 프리젠테이션까지 하고 질의응답시간을 갖는 중요한 날 다음날까지 또 내야하는 과제가 두개가 늘어난 거다…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해 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너무 울화가 치밀어서.. 손을 들고 교수한테 상황을 설명하며 제출시기를 며칠만 늦춰달라고 요청했지만 안된다고 했다..  


어쨌든 그렇게 친구들과 한탄을 하며 상황을 받아들인채 열심히 과제를 했다.   

이번 학기에서 가장 중요한 비지니스 팀 프로젝트는 팀원들과 함께 하면서 속이 상한 적도 있었고 너무잘 하는 팀리더와 팀원들에 비해 뒤쳐지는 것 같아 내 자신이 속이 상한 적도 있었고 답이 나오지 않는 과제들을 질문 해 가면서 해내느라 힘들었던 적도 있었고 버겁고 벅차고 힘든 적이 너무 많았지만 벌써 파이널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다.   

게다가 캐나다는 홀리데이때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문화가 있어서 우리집 주인 가족들이 모두 집에 와있는 덕분에(?) 주방이나 화장실이나 모든 게 불편했던 터라 혼자 쉬고싶기도 했다.     

그렇게 여행 날이 다가왔다.     


# 정신이 맑을 때 하는 여행  

여행 관련 글을 많이 써왔는데 대부분 썼던 글은 한국에 있을 때 갔던 여행에 관한 글이었다.   

캐나다에 있을 때 했던 여행에 대한 글을 쓴 적은 별로 없었다. 아마 너무 바쁘게 지냈던 덕분이 아닐 까 싶다.     


여행을 떠나면서 이렇게 정신없이 지내다가계획도 몇시간만에 짜고 짐도 급히 싸서 떠난 여행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일단 이민가방 말고는 너무 작은 가방밖에 없어서 크리스마스에 친구들이랑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여행가방을 빌려오면서 내 여행은 시작됐다.     

짐을 싸고 급히 여행 계획을 짠 뒤 과제를 했다. 과제를 하다가 잠시 3시간 자고 일어나서 우버를 불러 공항으로 떠났다.   


그렇게 내 여행은 시작됐다.   


익스피디아를 통해 에어캐나다를 이용했는데 항공기 결함이 있다고 다시 내려서 3시간을 기다렸다가 다시 탑승을 했다. 팀홀튼에서 10불치 사먹을 수 있는 보상을 해줘서 커피랑 도너츠를 사먹었다.     

이외에는 실수없이 모든게 잘 진행됐고 시카고에 도착해지하철을 타고 호스텔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시차적응이 필요없어서 좋았고, 이번엔 유심카드를 사지 않았고 (아무생각없이 여행에 집중하고 싶었고 어차피 와이파이를 쓰면 되고 구글맵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물론 팀원들 연락을 받기가 두려웠던 것도 없지않아 있었다. 하하.)   

호스텔에 도착한날 야경을 보고 여러군데 돌아볼 생각이었지만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피로가 몰려왔다.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피곤함 때문에 근처 편의점에서 사온 와인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호스텔 선택은 정말 잘 한 것 같다. 다운타운이라대부분의 관광지를 걸어서 다닐 수 있었고 시설도 너무 좋았다.  

첫날 짐을 풀고 지금 돌아다녀봤자 졸음만 몰려올 것 같아서 오늘 푹 쉬고 다음날 오전부터 일정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와인을 마시고 과제를 시작했다. 얼른 팀에게 보내줘야 하는 과제를 하고 와인을 마시며 음악을 듣고 쉬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한 다음날부터 조식을 먹고 꼭 보고 싶은 곳과 동선이 비슷한 곳부터 차분히 여행을 했다.   


가장 가고싶었던 윌리스타워, 먹어보고 싶었던 시카고 피자, 꼭 봐야하는 여러 관광지들, 그리고 가장 기대했던 재즈바. 그렇게 나를 위한 여행을 했다.   

호스텔에 잠시 돌아와 와이파이를 키면 팀리더의 연락이 와있었고 중간중간 뭘 보내달라고 하면 호스텔에 앉아 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항상 여행에 집중했다.


친구들 줄 귀여운 것들도 사고 :)

    

이렇게 바쁘게 지내다가 여행을 왔는데도, 팀원들과 남은 파이널 과제와 시험에 대한 부담이 있는데도, 여행을 하는 내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너무 행복하다. 정신이 건강하다."     

정신이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직장에 다닐 때는 항상 일에 찌들어 있었고 무엇보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때 떠난 여행은여행이어도 즐겁지 않았다. 다시 돌아가서 똑같은 답답한 생활을 할 생각을 할 때면, 아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도 내 정신은 피폐해져 있었다.     

삶이 힘들 때는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가서 오랜 시간동안 휴식이건 관광이건 여행을 해도 즐겁지 않고 외로웠다. 외로울 필요도외로울 이유도 없는데도 그냥 외로움이몰아쳤었다.     

지금 일을 하는게 아니라 학생인 신분이라 여행이 즐거운 것도 있겠지만 내 삶이 지금 만족스럽고 그냥 행복한마음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힘들 때도 있고 너무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당연히 있지만 정신은 건강해졌다는 걸 몸소 느꼈다.     


정신이 맑을 때 여행을 하면특히 좋은 점은 일단 표정이 밝아지고 마음이 평화롭다.   

여행을 하면서 적극적이게 되고, 어떤 일이 생기든 그냥 받아들이게 되고 즐겁다.     

내 삶이 너무 힘들었을 때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때 여행을 가서 비행기편을 바로 알아봤던 기억이 난다.   


내 마음이 힘드니까 아무리 즐겁거나 편하려고 떠난 여행이어도 모든게 싫어서 한국으로 가는 항공권을 알아봤던 그때.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내가 정신이 건강해지고 맑아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나를 위한 삶을 살며 내 마음이 꽉 채워지고 내게 집중할 수 있으며 흔히들 말하는 자존감이 높아진 이유가 아닐까 싶다.     

혼자 하는 여행이 즐거웠고 맛있는 음식과 맥주한잔을 하며 여유를 부리는 것도, 혼자 셀카를 찍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부탁해 멋진 배경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모든 게 좋았다.   

여행을 하며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그들과 재즈바를 가기도 했다.     

여행이란 내 마음에 달린 것 같다.   

장소보다 중요한 건 내 마음 그리고 정신이 건강할 때 하는 여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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