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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Jun 20. 2020

비를 맞으며 크는 도시의 아이들

시골 절대 아님

도시적인 사람이라 하면 보통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빌딩이 모여있는 곳에 살고, 시크하며, 깔끔 떨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바쁘게 걷는 그런 사람?

그렇다면 도시의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야 할까?




세계에 있는 대도시들 중에 도쿄와 런던이 대표적인 몇 군데 중 하나라는 점에 이견이 있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도시 중의 도시인 이 두 군데에서 육아를 하며 내가 관찰한 것은 기존에 '도시적'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과 매우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런던과 도쿄의 공통점은 초록이 많다는 것이다. 몇십 년 또는 몇 백 년 된 나무들이 즐비하고, 길모퉁이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숨겨진 작은 동네 공원들이며, 범국민적인 취미인 가드닝까지. 이곳들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이지만, 자연스레 흙과 곤충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빗속에서 뛰어놀며 자란다. 한국 사람 눈에는 마치 시골 아이들 같아 보일 때가 많다.



런던에서 교육기관을 처음 다니게 되었던 첫째는, 꽤 어린 나이인 두 돌에 사립 널서리 스쿨에 입학했다. 아이의 준비물은 다음과 같았다:


여벌 옷 한 벌

영양가 있는 도시락

물병

기저귀 (어린아이들)

웰링턴 부츠 (장화)


장화를 꼭 학교에 구비해놔야 하는 이유는 매일같이 근처 공원까지 걸어가서 놀기 때문이었다. 런던의 날씨는 1년 내내 언제 소나기가 쏟아질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같았다. 또한 겨울의 축축한 런던 공원은 비가 개인 뒤 땅이 질퍽할 때가 많아서 "muddy puddle"이라고 불리는 진흙탕에서 뛰어놀고는 하였다. 런던의 신사적이고 깔끔한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느낌이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내에서 바로 가든으로 이어진 집들이 많아, 어른들은 깔끔하게 빼입고 ‘도시적인’ 모습으로 점잖게 티타임을 즐길 때, 옆에 뒷문을 활짝 열어놓고, 아이들은 신나게 하루 종일 잔디밭에 들락날락 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런던이 아니라 마치 영국 시골에 사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도쿄에 살기 전, 도쿄의 이미지는 런던보다도 더 도시적인 느낌이었다. 높은 타워 건물 숲에, 미래지향적이고 사이보그가 있을 것 같은 그런 이미지.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관광지로 유명한 곳들이나 비즈니스적인 이미지일 뿐이고, 실제의 도쿄는 흙과 나무가 많고, 깨끗하지만 무척 낡고 오래되었다. 그냥 길가에 있는 가로수의 굵기만 보더라도 세월이 느껴진다. 몇백 년은 족히 됐을 나무들과, 수도 없이 많은 크고 작은 공원들. 자연은 도쿄인의 삶에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도쿄로 이사 온 뒤로 우리 아이들이 쭉 다니고 있는 학교(유치원)의 준비물도 다음과 같다:


여벌 옷 두 벌

간식 (과일 또는 크래커류)

영양가 있는 도시락

물병

기저귀(어린 아이들)

장화

전신 레인 수트


런던에서 준비해오라던 장화에 더불어, 심지어 전신 레인 수트까지 더해졌다. 이 전신 레인 수트란 어부들이 입는 것과 같은 위아래 세트 우비이다. 그렇게 까지 준비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학교에서 보낸 아이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나기처럼 잠깐식 조금 내리는 런던 비에 반해, 일본의 비는 한국 장마철의 비와 비슷해서 muddy puddle(진흙탕)의 스케일이 달랐다.

유치원에서의 야외 활동 모습. 매일 몇시간씩 밖에서 보낸다.


이 두 곳은 전혀 다른 나라, 전혀 다른 문화를 갖고 있음에도 유아기 아이들의 교육목표는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도쿄의 아이들이 런던의 아이들보다 더욱더 자연친화적인 생활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은 또 다른 토픽인데, 도쿄의 치안이 런던보다 더 뛰어나서 아이들이 더 경계 없이 뛰어노는 것 같다)


어른들의 직업과 생활 때문에 도시에 살 지라도,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 환경은 자연이라는 공통적인 가치관이 이 두 도시들의 아이들이 비를 맞고 흙탕물에서 뛰어놀게 하는 것이다. 삭막한 도심에 살기 때문에 일부러 더욱더 자주 자연환경을 접하게 하는 것- 자연은 주말이나 특별한 날에만 찾아가는 것이 아닌, 언제라도 다가갈 수 있는 일상의 일부이다.


물론 이는 엄마나 주 보육자의 번거로움과 비례한다. 집에는 사이즈별 장화들과 (아이들의 발은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우비와 레인커버 등 여러 레인 기어들이 쌓여가고, 여름엔 상처와 벌레 물린 자국 투성이 된다. 밖에 나갈 때 챙길 것도 너무나 많아진다. 예전에 서울에 살 때는 이런 식으로 생활하거나 아이를 키우는 사람을 어쩌다 한번 보면 마치 "자연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식 주의자가 비건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전 사회 구성원이 이렇게 자라났고, 또 그렇게 자란 성인들이 이끌어 가는 도시에 살다 보니, 가끔 우산 없이 비를 좀 맞아도, 뭐 이쯤이야, 하는 쿨함도 생겼다. 점차 이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자연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 집 신발장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두 아이의 장화들









몸이 지칠 때면 생각나는 서울에서의 (비교적) 편한 육아:

https://brunch.co.kr/@jenshimmer/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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