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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Jul 11. 2020

유통 분만의 이유

참고 견딤의 미덕


예전에 일본인 엄마들이 육아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이젠 익숙해졌지만 처음 이 곳에 살게 되었을 때, 나는 남편과 도우미가 도와줘도 이렇게 힘든데 작은 체구로 저렇게 씩씩하게 혼자 모든 걸 다 하면서도 불평 없이 사는 그녀들이 너무도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한국보다 조금 높은 것도 의아했다. 이렇게 그녀들이 혼신을 다하며 육아에 올인하는 마음가짐과, 그것을 갖게 한 이 신기한 사회를 이해하려면 출산 과정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이 곳의 임신 출산 환경은 우리나라 80년대와 비슷한 것 같다. 대개가 현대식 병원에서 분만하지만 무통주사를 맞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 세대와 단 하나 차이점이 있다면, 80년대의 한국은 무통주사가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서 그랬다고 보면 되지만, 21세기의 일본은 산모가 자진해서 무통주사를 맞지 않기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아예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요즘 "자연분만"이라고 말해도 대부분이 무통주사를 맞는 전제를 깔고 얘기할 정도로 무통주사는 출산과정에 보편화된 기본 설정이다. 건강적, 의료적 사유가 있어서 못 맞는 것이거나, 상황적인 (분만 속도가 너무 빨랐다던가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웬만해서는 다들 맞는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내가 특별히 원하지 않을 경우에만 미리 의사에게 얘기를 해둬야 한다. 런던의 경우에서도 그랬다. 둘째를 런던에서 임신했던 나는 30주가 좀 넘었을 때 한국에 들어갔는데, 그때까지 다녔던 병원에서도 무통분만을 원하지 않거나 다른 특별한 방식의 분만을 원할 경우에만 따로 얘기를 해두면 되는 식이었다. 그렇기에 기술이 상향 평준화된 21세기의 임신 출산은, 어디 지구촌 오지에 가서 출산하는 것이 아닌 이상,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역시나 일본은 또 달랐다.




내 몸의 안녕을 위해 일부러 한국에서 두 번이나 비교적 편하게 출산했던 나에게 도쿄에서 만난 친구들의 출산 스토리들은 신기함을 넘어서 같은 인간으로서 이해가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녀들이 자연분만을 하는 이유는 유럽이나 미국 등 서양문화권에서 가끔 만나는 자연주의적 분만을 하는 여성들(무통주사를 맞지 않고 집에서 분만을 한다던가, 수중분만을 한다던가 하는...)과 비슷한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무통주사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 통증을 느껴야 진짜 분만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비싼 비용, 의사의 비권유 등의 사회적 세뇌와 압박에 의하여 그렇게 고민할 것도 없이 '유통 분만'을 저절로 하게 되는 것이다.


가끔 비싼 가격에 무통분만을 제공할 수 있는 병원이 있다고 하지만, 그 마저도 운이 나쁘면 마취과 의사가 아닌 산부인과 주치의가 직접 하거나, 병원 자체가 경험이 미숙해서 꺼려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제대로 된 공급 자체가 적은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수요가 많으면 그만큼 공급이 많아지고, 공급의 경쟁이 일어나면 그만큼 환자/소비자에게 주어지는 옵셥이 많을 것인데, 공급의 양과 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도 없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친해진 몇몇 일본인 친구들에게, 왜 무통분만을 선택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 6명 중 4명은 무통분만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한 명은 자신이 일본인으로서, 분만의 고통을 겪어야 진정한 엄마가 되는 것이라고 느끼는 게 마음에 조금 있기 때문에 괜한 죄책감과 꺼림칙함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머지 한 명은, '인류 역사상 다들 그냥 했는데 나도 못할 건 없다' 하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녀들과 얘기를 해보면 뉘앙스가 무통분만을 하면 뭔가 불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였기에 떳떳하지 못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무통분만은 굉장히 잘못된 명칭이다. 자궁문이 열리어 무통주사를 맞을 때까지 죽을 것 같은 진통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그 과정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무통보다는 감통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 같다. 치아 발치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취를 하면서, 죽을 것 같은 출산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감소시켜주는 그 주사 하나 때문에 과연 그렇게 도덕적인 딜레마를 겪어야 하는 것일까?


바로 옆 나라이지만 출산 문화가 이렇게 다른 것은 아마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보다는 여자들이 스스로를 생각하는 마인드의 차이에 있을 것이다. 또한 아프지 않고자 하는 동물적인 본능을 죄책감 없이 인정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할 것이다.


반대로, 이토록 견딤과 참음이 미덕인 사회에 살면서 (한국보다는 육체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이 힘들지만) 일반적인 일본 엄마들보다는 조금은 나 자신의 육체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나를 보며, 속으로 모성애가 떨어진다거나 스포일드 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 없는 일본 엄마:

https://brunch.co.kr/@jenshimmer/9




유독 어메이징한 한국의 출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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