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대하는 일본 엄마의 자세
예전 첫째 아이가 만 3살 때, 같은 반에 컨버터블 슈퍼카에 선글라스를 끼고 아이 둘을 태워 학교에 오는 어떤 일본 엄마가 있었다. 화려함과 부를 겉으로 표현하는 것은 보통 일본인들이 꺼려하는 것이지만, 이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한껏 드러내는 멋쟁이였다. 하루는 학교 휴일이어서 몇몇이 수족관에 놀러 가기로 했다. 6명이 아이들이 모였는데, 그중 그 엄마를 포함한 4명이 핸드백이나 숄더형 기저귀 가방이 아닌 백팩을 메고 왔다. 패셔너블한 디자이너 백팩이 아니라, 나이론 소재로 된 실용적인 백팩.
애엄마가 되는 동시에 여자는 '아줌마'의 영역에 진입한다. 세상에 절대적인 비포 엔 애프터가 있다면, 결혼도 이혼도 아닌 여성의 출산일 것이다.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축복이지만 동시에 그 엄마가 된 여성의 인생은 우선순위가 바뀌어버리는 조금은 안타까운 사건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한국, 영국, 미국의 엄마들은 출산 전의 자신과의 연결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출산 후 어느 정도 심신의 여유가 생기면 스스로를 돌보고는 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괜찮은' 기저귀 가방이었다. 영국에서 가끔 백팩을 메는 엄마가 있었지만 주로 멋내기용 디자이너 제품이었다. 신발은 운동화를 신을지언정 가방만은 포기하지 못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내 비록 아줌마가 되었지만 취향은 그대로다" 뭐 그런 의미를 내포하는 것 아닐까.
도쿄의 엄마들이 이 엄마들과 다른 점은, 멋을 낼 수 있는 여력이 되든 안되든, 엄마라는 직업을 대함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나'라는 여성의 취향과 욕망은 '엄마'라는 역할 앞에서는 뒷전이 된다. 일단은 최대한 헌신적으로 그 순간 아이를 돌보는 것에만 집중을 해야 한다. 비 오는 날에도 아이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우비를 뒤집어쓰고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는 대부분의 일본 엄마들에게는 멋보다는 실용성이 먼저 올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이 당연한 것으로 사회에서 자리 잡아, 그렇게 화려한 엄마마저 수족관 나들이를 갈 때는 전투 육아에 참전하는 느낌으로 백팩을 메고 온 것이다.
아마도 도쿄 엄마들의 삶이 다른 나라의 대도시들에 비해 좀 더 힘들다 느껴지는 이유는 육아에 관련되지 않은 것들에서도 기본적인 힘듦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필로 작성해야 하는 온갖 문서들 하며, 살인적인 공과금에 매사에 절약을 실천해야 하는 점이며, 잊히기도 전에 다시 찾아오는 각종 자연재해며... 도쿄의 엄마들은 심리적 물리적 여유가 기본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태에서 육아라는 어마어마한 임무마저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면, 멋이고 뭐고, 일단은 그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일본 애엄마의 백팩은, 같은 여자로서의 내 마음을 슬프게 한다.
가끔 풀 메이크업에 남색 정장을 입은 채 검정 또는 남색 백팩을 메고 유모차를 밀고 지나가는 애엄마를 볼 때면 진심으로 존경심이 든다. 나의 본분을 그렇게 철저하게 지킬 수 있는 그들의 헌신과 노력이 순수하고 이타적이기도 해 보인다.
그것은 선택인 것일까 은연중에 강요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