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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Apr 18. 2020

맞는 7, 틀린 7

사고의 유연함


나는 수학을 미국에서 처음 접했다. 여름 생일이어서 반에서 막내였는데도 불구하고, 대개의 동양 아이들이 그러하듯 항상 쉽게 잘해서 칭찬을 받았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3학년 2학기 때 한국의 공립학교로 전학을 간 후 있었던 첫 '산수' 시간에 선생님한테 크게 꾸중을 들었다. 계산법이 틀려서, 또는 정답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숫자 7을 '잘못' 적어서였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생 때 한국에서는 7은 꼭 왼편에 짧은 세로 짝대기가 하나 더 달렸어야 했다. 다르게 쓴 7은 있을 수가 없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꽤나 다양한 7을 볼 수 있었고 읽을 수만 있다면 다 7로 인식되었다. 이미 내가 쓴 7이 7이라고 읽히는 나라를 경험했던 나에게, 그 날의 일은 '이런 사소한 게 왜 문제가 되지?'라는 의문을 주었고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에피소드이다. 


모두 같은 7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은 학습 관련해서는 만 5살 전에 거의 노출이 없다. 학교에서는 맨날 아이들과 공원과 정원에서 뛰놀고, 나무와 곤충들을 탐구하고, 그런 놀이 위주의 활동만을 한다. 그래서 첫째가 만 4살이 조금 지났을 무렵 너무 아무것도 안 시키나? 하고 문득 조바심이 들어, 말도 잘 안 통하는 상태로 유명 학습지 지점을 찾았다. 일본은 한국과는 다르게 학습지 선생님이 집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직접 1주일에 2번 학습지 센터로 가서 아이가 학습지를 풀고 오는 동안 밖에서 20분가량 대기를 해야 한다. 그렇게 나름 나의 맹모적인 노력으로 아이의 첫 수학 학습이 일본식으로 겨우 시작되었다.


분명 算数(산수)코스로 등록을 했는데 첫 2달은 줄 긋기만 하였다. 아이가 정말 너무 지겨워할 때쯤 페이지 한 장당 숫자 하나가 크게 적혀 있는 내용으로 넘어가고 수 세기에 돌입한다. 처음에는 1에서 5, 그다음에는 5에서 10, 그 과정만 한 달. 이런 식의 아주 미치도록 반복적이고 지겨워서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는 주입식 방식으로 7-8개월이 지나고 나니 100까지 세고 쓰는 업적을 이루었다. 도대체 진도를 나가기는 하는 것인가? 싶었지만 거북이처럼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다. 


아이는 실수를 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아마 너무 심하게 반복되고 느리게 진도를 나가서였으리라. 하지만 4살 아이의 학습지를 일본 선생님이 채점하는 방식은 가끔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쓰인 9의 각도, 2의 모양 등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숫자인데 '여기서 왜 감점을 했지?' 싶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내 평생 7을 쓸 때마다 긴장감을 주게 했던 그 '맞는 7'의 유래가 일본이었다는 걸!


그렇게 지독하게도 반복적인 주입식 교육으로 수를 처음 접한 아이의 숫자 7은 항상 '맞는 7'의 모양이다. 그 후로 너무 느린 진도에 굳이 거기까지 자전거를 태워 가는 노력을 하고 싶지가 않아 그만두기는 했지만, 그만둔 지 거의 1년이 되어가도록 아이가 쓰는 7의 모양은 굳건하다. 이래서 배움에 있어서는 첫 모든 것이 앞으로의 습관과 인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한편, 도쿄에 살며 나는 비단 숫자의 모양뿐만이 아니라 많은 것들에 이곳 기준의 명백한 옳고 그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사소한 모든 것에 사회에서 정해 준 룰이 있는 것처럼. 예를 들어, 올바르게 바닥에 앉는 법, 올바르게 신발을 벗어 놓는 법, 등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아도 이들에게는 유아기부터 학습되어온 일본만의 보이지 않는 매뉴얼이 있다. 그리고 그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틀린 행위이고, 아무도 겉으로 뭐라고 하지 않아도 굉장히 튀는 행동일 것이다. 따라서 외국인의 입장에서 일본이 융통성이 없다고 느껴지는 데에는, 이렇게 어릴 때부터 사소한 모든 것에서부터 맞고 틀린 것을 주입식으로 배우기 때문에 사고방식이 경직될 수밖에 없어서일 것이다. 


나의 3학년 때 선생님은 나의 7이 '틀린' 것이라고 나무랐지만 성인이 되어 내가 살면서 7을 어떻게 쓴다고 해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도 커가면서 다른 여러 7의 모양을 보며 '세상에는 다양한 7의 모양이 있구나'하고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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