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장벽
90년대 초, 미국에 살았던 몇 년간 외식에 대한 나의 기억은 거의 맥**드의 '해피밀'이다. 얼마나 자주 갔었는지 동생과 나는 나중에 '해피밀'에 딸려오는 장난감만 각자 한 박스씩이나 되었다. 그 당시 한국에는 패스트푸드가 도입된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여서 나름 유행이었고, 전 세계적으로도 오가닉이나 건강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더 거리낌 없이 갔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동생이 다시 커서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어느 식당에서 엄마가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너희가 다 커서, 내가 이렇게 고르기만 하면 너네가 알아서 주문해주는 게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몰라. 너희 어렸을 때는 잘 차려입은 백인들 사이에서 액센트 없는 영어로 능수능란하게 그들의 음식을 주문을 할 수 없다는 게 마음이 불편했지. 그래서 웨이터랑 상대할 일도 없이 큼지막한 사진을 보고 A세트 B세트 이런 식으로 주문만 하면 되는 패스트푸드점을 진짜 많이 갔었는데...”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단지 그 당시 유행이라 맥**드를 많이 갔었다고 여겼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엄마 아빠에겐 서양인들 위주의 그 나라와 사람들이 불편하고 어려워서 패스트푸드점을 많이 찾았던 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와 동생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그런 불편이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엄마 아빠도 평생 영어를 공부했지만, 도움 없이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기란 상당히 많은 문화적 지식과 언어적 자신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들의 입장과 그때 그 심정을, 나는 도쿄에 와서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도쿄에 살며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엄청 다양한 맛집들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맛집일수록, 특히 숨은 맛집일수록,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곤란함이 있다. 이들 맛집 직원들은 서양인 동양인을 막론하고 영어로 소통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때가 많다. 꿋꿋이 일관된 친절함으로 일본어로만 얘기한다. 메뉴에 쓰이는 음식에 관한 한자는 또 왜 이리 어려운지, 외우고 외워도 항상 모르는 것들 투성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점이 많은 일본에 살며 오마카세(おまかせ:메뉴 없이 요리사가 알아서 내주는)만 가능한 스시집에서만 외식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영국에 살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 다니며 관광객으로서 당연히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경험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주로 관광객들이 다니는 동네는 영어가 아주 조금이라도 통하고, 또 매일의 일상이 아닌 여행이기에 언어 장벽조차 낭만으로 느껴지고는 하였다. 반면에 내가 거주를 하는 곳에서의 언어 장벽은 너무나 큰 불편함, 자신감 하락, 짜증 등으로 느껴지고는 한다.
도쿄 생활 초반에, 남편과 이따금씩 데이트하러 맛집을 찾아갔다가 메뉴를 보고 돌아 나온 기억이 많다. 심지어 언제 한 번은, 정통 이탈리안 맛집을 찾아갔는데 전체 메뉴가 일본어로 표기가 되어있었다. 本日(오늘)의 스페샤루, 하며 칠판 재질로 된 메뉴판에 분필로 갈겨쓰여 있는 일본어를 보고 아쉽게 돌아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나마 세상이 좋아져서 핸드폰 번역기 돌려가며 대충 주문할 수 있을 때는 양반이다. 웬일인지 일본의 맛집들은 핸드폰 번역기로 거의 번역이 불가능한 손글씨나 붓글씨로 메뉴를 줄 때가 많다. 일본만의 낭만이 이렇게 당혹스러울 줄이야.
이제는 일본어도 조금은 할 줄 알게 되었고, 약간의 뻔뻔함도 생겨서 오스스메(おすすめ: 추천메뉴)를 물어보기도 하고, 옆자리에서 시킨 것과 같은 메뉴를 달라고 하거나, 인터넷 리뷰의 사진을 보여주며 '구다사이'(ください:주세요)를 외친다. 하지만 아직도 사진이나, 영어 또는 한글 메뉴가 없는 메뉴를 보면 당황스럽고 확 겁이 난다.
지금 자식들에게 일본어 공부를 조금이라도 시킨다면, 먼 훗날 같이 일본의 식당에 가서 편하게 앉아, 알아서 시켜주면 먹기만 하면 되는 날이 올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