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이해를 하려고 해 보자면
아이들을 데리고 도쿄에 처음 온 지 얼마 안 돼서 남편이랑 같이 구약소에 가서 주민등록을 해야 했다. 그때는 한자도 잘 못 읽고 일본어는 더더욱이 못했었기에, 모든 게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일본의 구약소는 한국으로 치면 구청 같은 곳인데, 그 당시 한국의 정말 편리한 전산시스템을 경험해보고 온 나로서는 한국의 옛시대 어른들이 우러러보는 선진대국 '일본'의 공무 환경을 보고 엄청난 쇼크를 먹었다. 영국에 가서는 미국보다 느린 영국의 민원 업무를 보고 놀랐었는데, 일본은 그거마저 뛰어넘는 올드 스타일 -- 거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의 구식이었다. 그때 우리가 직원이 준 양식을 잘 작성하지 못하고 어려워하자, 구청에서 영어 통역사를 붙여줬다. 그녀는 한 5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외국에 조금 살다와서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했다. 아마도 아이들 다 키워놓고 낮에 비는 시간에 생산적이기 위하여 구청 알바를 하는 주부였으리라.
그녀의 도움으로 서류를 적어 제출해 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일본의 연호 연도를 세는 방식이었다. 그 해가 2018년이어서 그냥 2018년이라고 쓴 게 문제가 되어 그녀가 고쳐주었다. 헤이세이 30년. 헤이세이 천황이 즉위한 지 30년 되는 해라는 뜻이다. 일본은 왕이 있는 나라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공문서의 연도까지 이렇게 세다니! 그것도 1918년도 아닌 2018년에!
무식했던 내가 놀라며, "Oh, you count the years based on the king's reign!"(아, 당신들은 왕의 통치 연도에 따라서 해를 세는군요!)라고 순진무구하게 얘기를 했더니, 통역사는 완전 정색을 하며 "The emperor." (황제)라고 또렷이 정정해주었다. 사실, 엄연히 말하면 일본은 더 이상 제국이 아니니 '황제'보다는 '왕'이라는 명칭이 맞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녀는 순간 쎄... 하게 내가 그녀의 emperor을 king이라 지칭한 것이 엄청난 말실수를 한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왕이 없는 나라에서 자란 나에겐 '황제'건 '왕'이건 뭐 그게 그거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전 세계가 서력기원을 쓰는 것이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 무신론자든 불교신자든 기독교인이든 종교를 막론하고 웬만한 발전된 국가들에서는 연도를 서력기원으로 통일해 쓴다. 서력기원을 전혀 종교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 지금의 우리가 아이러니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본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니 자기네 방식대로 자기네 연호를 쓰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된다.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부모님도 고풍스럽게 생긴 교회에서 목사의 주례에 결혼을 하셨고, 그 같은 교회에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아세례도 받았다. 친척들과 식사하러 모이면 어른들 중 누군가가 대표로 기도를 먼저 드린 다음에 밥을 먹는 게 당연한 순서였고, 모든 장례식과 집안 행사는 기독교식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성경의 모든 내용을 믿는다기보다는 그냥 어릴 때부터 가족 분위기가 그랬고 "그런가 보다..." 하며 자랐던 것 같다. 호기심 많던 내가 가끔 의문을 품으면 "원래 그런 거야", "조물주가 그렇게 만드신 거야" 뭐 그런 위주의 속 시원치 못한 대답이 돌아오고는 했다.
그러다가 유학을 가서 9학년 필수과목으로 듣게 된 영어 문학 시간에 오디세이아, 일리아드와 더불어 성경을 독해해야 했다. 그리스 신화와 성경은 서양 모든 문화의 기반이 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깊이 있게 읽어 논문 같은 에세이를 여러 번 써야 했다. 종교적인 관점이 아닌, 문학의 관점으로 읽게 된 성경은 모순도 많고 그리 논리적이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의문투성이었는데 생물학 시간에 배운 진화론에 기독교라는 나의 정신적인 가치관은 더욱더 흔들렸다. 점차 시간이 흘러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디에 종교를 써야 하는 란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무교"라 쓰게 되었다. 아이들 조금 큰다면 창조론이 아닌 진화론을 가르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도, "무신론자"라 스스로를 칭하기엔 어디선가 오는 찜찜함이 있다. "신은 없다!"라고 외치기엔 뭔가 신성모독을 한 것만 같은 그런 찝찝함이 맘속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가족 어른의 죽음에 의문이 많은 5살 첫째의 질문에 과학적으로 내가 믿는 대답보다는 "천국에 가셨어."라고 대답하는 나의 모습에서 모순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해야 내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친척의 장례식에서 모두가 부르는 찬송가에 위안이 되고, 집안 어른의 기도에 마음이 안정된다. 이런 나는 완전한 무교 집안에서 자란 무교인 사람과 같은 의미의 '무교'가 절대로 될 수 없다.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가 어느 정도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식 의식에 익숙한 나에게는 나의 믿음 여부와는 상관없이 기독교 문화가 친정집 같은 편안함을 준다. 아마도 평균적인 일본인들에게 천황과 관련된 모든 것과 일본인이라는 의미는 이런 느낌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별생각 없이 항상 배경에 존재하는 그런 것들로 인하여 습관 하나하나가 형성되고 하나의 인격체가 완성되며, 나아가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요즘은 일본식의 라이프스타일 중 내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어느 불교 신자가 이슬람 사원에 가서 느낄법한 어색함 내지는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려고 한다. 일본을 하나의 큰 종교단체라 생각하면, 굳이 이들을 이성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래야 지만 이 곳에 사는 동안의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