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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Oct 12. 2023

오로지 손끝과 발끝으로 버텨라

Culture: Climbing

Culture: Climbing

오로지 손끝과 발끝으로 버텨라




“인간끼리 경쟁할 필요 없다. 우리는 이 산과 경쟁해야 한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에베레스트>에 나오는 대사다. 클라이머들에게 에베레스트가 있는 히말라야 산맥은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향이다. 모든 것을 걸고서야 비로소 닿을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 그리고 그곳을 오르는 담대한 클라이머들.



ⓒsmithsonianmag.com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 



그들의 모습처럼 이상향을 정복하려는 욕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한다. 산을 오르며 비로소 도달한 정상에서 성취감을 맛본 경험이 있다면, 이들의 이야기가 전혀 남일 같지는 않을 것.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클라이밍 즉, 암벽 등반과 함께한 옷들에 대해 지금부터 알아보자.




문제를 풀기 위한 옷


태초에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산과 바위를 올랐던 인류. 18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산 정상을 오르는 일은 스포츠의 이름으로 다시금 정의되었다.



ⓒclimbfit.com


실내 클라이밍 암벽장을 방문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벽을 탄 기억이 있다.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암벽에는 각기 색깔이 다른 돌들이 박혀있는데, 각 색깔별로 다른 난이도를 가진 홀드를 잡고 발을 디뎌 올라 마지막 홀드를 두 손으로 잡으면 끝나는 게임이고, 이걸 푸는 걸 ‘문제’라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 풀든, 그건 각자의 자유다.

이는 패션도 마찬가지다. 수년간 주류 트렌드와 영향을 주고받은 클라이밍 패션에 정답은 없다. (물론 실제로 클라이밍을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들이 패션에서 고려하는 건 ‘편안함’과 ‘기능성’이 주일 것이다.) 암벽을 오르는 이들은 계속 있었지만, 옷이 더 편안해지고 기능성에 초점을 뒀던 60년대에서야 비로소 클라이밍이 본격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7,80년대는 그야말로 클라이밍 패션의 전성기였다!


ⓒpinterest.co.kr

80년대 클라이머들의 레깅스룩. 

ⓒascentnb.com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휘황찬란한 색깔의 레깅스가 밋밋하고 헐렁한 의상의 자리를 대체했다. 당시를 휩쓴 자유와 히피 정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raglanrock.com, ⓒukclimbing.com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종목으로서 인정받은 클라이밍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하나의 취미 생활로 떠올랐다. 당장 인스타그램만 보더라도 실내 암벽을 등반하는 이들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클라이밍을 하는 건 그걸 하기 위해 무엇을 입는지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The North Face®, Patagonia 같은 아웃도어 브랜드의 탄생도 클라이밍에 그 지분이 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클라이머로 등반 친구였던 더글러스 톰킨스(Douglas Tompkin)와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 1968년 이 둘은 친구들과 함께 미니 밴을 타고 6개월에 걸쳐 샌프란시스코에서 칠레 파타고니아를 등반하며 신루트 개척에 성공한다. 이 여행은 결과적으로 더글라스와 이본에게 클라이밍에 대한 애정을 키워줬고, 그 철학을 제품에 고스란히 녹인 브랜드를 각자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된다.



ⓒpinterest.com

더글라스 톰킨스(Douglas Tompkin)와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가 여행을 한 미니 밴. 

ⓒpatagonia.com



이들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였던 칠레 파타고니아의 지역명에서 따온 아웃도어 브랜드 Patagonia, 그리고 요세미티 국립공원 하프돔 북벽(North Face)에서 이름을 따온 The North Face®.



ⓒadventures.com

칠레 파타고니아 지역. 

ⓒoddlot.it

요세미티 하프돔 북벽(North Face)의 이름을 딴 The North Face®. 

ⓒpinterest.co.kr



며칠을 거쳐 깊은 산속의 암벽을 찾아가는 클라이머들에게 고기능성 아웃도어 웨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장비를 보면 경험치가 보인다


사실 처음의 클라이밍은 암벽 등반보다 정상을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등산에 가까웠다. 그러다 알프스산맥의 눈 덮인 산에 하나씩 깃발이 세워지고 클라이머들이 새로운 봉우리로 눈을 돌리면서 그간 아무도 오르지 못했던 바위들로만 이루어진 난도 높은 암봉들을 오르게 된 것이다.



ⓒcosleyhouston.com

클라이밍이 처음 시작된 유럽의 알프스산맥 



어렵다는 건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쉽고 안전한 곳에서 연습하기 위해 한 바위를 정해서 연습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흔히 ‘연습 바위’라고 불리는 보울더(Boulder)를 이용해 어려운 구간을 연습하기 시작한 것이 볼더링(Bouldering)의 시초가 되었으니.

볼더링은 암벽 등반의 한 장르로 5m 내외의 떨어져도 안전한 바위나 인공 암벽에서 하는 등반 행위를 뜻한다. 암벽 등반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볼더링과 클라이밍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우리가 흔히 도심 속 클라이밍 장에서 하는 건 정확히는 볼더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kendallcliffs.com

이건 정확히 말하자면 암벽등반 중에서도 볼더링(Bouldering)이다. 

ⓒmpora.com

그리고 이것도 볼더링이다. 



클라이밍은 어렵고 쉬운 구간이 번갈아 나오는 반면 볼더링은 처음부터 어려운 구간을 연습하는 데 중점을 둔다. 따라서 볼더링은 클라이밍보다 높지 않은 공간임에도 역동적인 동작이 많이 나타나며, 추락으로부터의 위험이 적은 만큼 점프 같은 과감한 동작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보통 실내 암벽장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초보자라면 처음엔 암벽화 한 켤레, 쵸크와 쵸크백 그리고 손에 굳은살 배기는 게 싫다면 테이프만 있으면 된다.



ⓒmpora.com

암벽화는 가장 기본적인 장비다, 초크 가방 (암벽을 오를 때 손에 땀이 나면 바위나 홀드를 잡기 어렵기 때문에 마찰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초크를 담는 용도로 사용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어느 정도 클라이밍을 배우다 보면 점점 장비 욕심이 생길 것이다. 이쯤이면 어느 정도 암벽을 자유로이 올라갈 수 있을만한 스킬도 생겼을 테니 추가로 장비를 구입하기 좋은 타이밍이다. 초보자를 벗어나 5m 이상 넘어가는 높은 암벽이나 실외 암벽을 오를 경우, 등반 시 추락을 막기 위해 필요한 로프와 하네스 그리고 확보기, 퀵드로우, 카라비너 같은 장비를 착용하면 된다. 이때부턴 진정한 클라이밍의 영역.



ⓒclimbinghouse.com



8~11mm 범위 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로프, 하강 시 로프의 마찰을 줄여 안전한 속도로 내려갈 수 있게 해주는 확보기, 양쪽 다리를 집어넣어 허리에 착용해, 클라이머와 로프를 연결하는, 안전벨트 같은 역할을 하는 하네스, 퀵드로우는 암벽에 붙어있는 볼트에 걸어 휴식을 가능하게 해줌과 동시에 추락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함께 연결하는 카라비너는 추가 잠금장치다.




ⓒclimbing.about.com

하네스를 착용한 클라이머 


ⓒeaishops.link, ⓒ99boulders.com

야외 클라이밍에서 헬멧 착용은 필수, 위 아래로 카라비너가 연결된 퀵드로우 세트. 줄여서 퀵드로



‘장비 빨’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듯, 야외에서 암벽 등반을 할 때는 완성도 높은 장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장비가 준비됐다면,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 안전제일.





아웃도어를 입은 하이패션


하이 브랜드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클라이밍 문화를 재해석해 내놓기도 한다. 보통 디자이너들이 스포츠에서 따온 것들을 컬렉션에 배치할 때는 원래 맥락과는 거의 혹은 전혀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기존의 아웃도어가 지닌 기능성에 자신만의 미학을 덧 입혀 구현해 낸 디자이너의 감각에 오롯이 집중해 보자. 1590불, 한화로는 200만 원이 족히 넘는 가격의 Louis Vuitton의 초크 가방이 그 대표적인 예.



ⓒnfpegado.com

Louis Vuitton이 선보인 클라이밍 초크 가방. 그러나 실제로 클라이밍에 쓰는 사람이 있었을지는.. (원래는 암벽을 오를 때 손에 땀이 나면 바위나 홀드를 잡기 어렵기 때문에 마찰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초크를 담는 용도로 사용된다.) 



야무지게 멘 초크 가방이 돋보이는 Dsquared2 2022 FW.

ⓒvogue.com

Dsquared2 2022 FW 



또 다른 클라이머에게 필수적인 장비인 ‘카라비너’. 손에 잡을 것이 없을 때 암벽에 박아 로프와 로프 사이를 연결해 사용한다. ‘생명을 잇는 장비’라고 불릴 정도로, 그 어떤 장비보다 흔하게 쓰이는 까닭에 아웃도어 룩을 콘셉트로 한 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anneofcarversville.com



주렁주렁 가방에 메단 카라비너가 돋보이는 Lacoste 2022 SS 컬렉션, 그 어떤 암벽 위에서도 장비 걱정은 없을 듯한 넉넉함을 보여 준다.



ⓒwwd.com

Lacoste 2022 SS 

ⓒhypebeast.com

White Mountaineering 2018 FW 


카라비너와 버클이 만들어 내는 미래적이고 세련된 감각을 만날 수 있는 HELIOT EMIL 2022 SS.


ⓒhypebeast.com

HELIOT EMIL 2022 SS 



침낭을 들고 등장한 CRAIG GREEN 2017 F/W.

ⓒhypebeast.com

CRAIG GREEN 2017 F/W 



컬러풀한 베스트, 경량 소재의 바람막이 재킷, 그래픽 프린트를 강조해 도시 속의 클라이머가 입을 법한 아웃도어 룩을 구현해낸 PRADA 2017 SS 컬렉션.


ⓒprada.com

PRADA Spring/Summer 2017 

ⓒprada.com

PRADA 2017 SS



Sandy Liang은 프릴과 레이스로 포인트를 준 자켓으로 ‘사랑스러운 고프 코어란 이런 것’임을 보여 줬다.


ⓒsandyliang.com

Sandy Liang 2022 SS 



그리고 그전에 JUNYA WATANABE 2023 SS가 있었으니! 시그니처 디자인인 스트랩과 아방가르드함의 만남 그 자체.


ⓒarchived.co

JUNYA WATANABE 2023 SS 

ⓒfashionsnap.com

UNDERCOVER 2016 SS 



런던만의 일상성을 담는 디자이너 Martine Rose의 2018 SS 컬렉션, 그 배경은 실내 클라이밍 암벽이었다.

Martine Rose 2018 SS

ⓒvogue.com
ⓒhypebeast.com

WOOD WOOD 2014 F/W 



꽃이 만개한 정원을 배경으로 펼쳐진 Dior 2023 SS 컬렉션은 기존의 우아함에 하이킹 백팩, 기능성 벨트, 자켓으로 대표되는 아웃도어 스타일을 더했다.


ⓒdior.com

Dior 2023 SS 



이제 끝판왕이다. 아웃도어 룩을 무려 꾸뛰르로 승화해낸 Maison Martin Margiela.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자체의 미학에 더 눈길이 간다.


ⓒfashiongonerogue.com

Maison Martin Margiela Couture 2011 FW 



그리고 클라이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Ralph Lauren의 하이테크 라인.

ⓒvogue.com, POLO Hi-Tec



1993년 미국의 클라이머 에드 비에스터스(Ed Viesturs)는 에베레스트를 단독 등반했을 당시 POLO SPORT가 새겨진 파랑 검정 빨강의 스트라이프 티를 입었다. 당시 그는 "나는 에베레스트에서 최고의 드레서였다"라고 말하기도.




클라이머의 삶, 들여다보기


이쯤 되니 클라이머의 삶이 궁금해진다. 당장 동네 뒷산도 벅찬 이들에게는 암벽에 온전히 자신의 몸을 맡기는 이들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 그래서 그들을 더 잘 이해해 보고자 클라이밍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모아봤다. 취향껏! 지루한 일상에 짜릿함이 필요할 때 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보호 장비도 없이 보기만 해도 아찔한 경사의 절벽을 오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한 인간이 가지는 그 어떤 무모함과 동시에 비장함의 끝을 보여주는 다큐 <프리 솔로>, 캐니언 랜드로 여행을 떠난 한 인물이 바위 틈에 팔이 끼인 채로 127시간 동안 생존해 내며 운명을 결단하는 모습을 그려낸 아카데미상을 수상 대니 보일의 영화 <127 시간>.



프리 솔로, 127시간

THE DAWN WALL, MERU, CLIFF HANGER



새벽빛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던 월, 즉 여명의 벽’은 손톱조차 들어가지 않는 매끈한 벽으로 악명이 높아 그 누구도 등반을 하지 못한 암벽이다. 이곳을 오르기 위한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던 월>, 히말라야에서 가장 위험하고 난이도가 높은 봉우리인 메루의 샥스핀을 오르는 세 친구들의 불가능해 보이는 여정을 다룬 <메루> 그리고 까마득한 높이의 산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 대결을 펼치는 <클리프 행어>까지.




암벽처럼 단단한 정신


ⓒclimbing.com

현역 세계 최강의 클라이머로 꼽히는 체코의 아담 온드라(Adam Ondra) 



위에서 언급한 다큐멘터리 <프리 솔로>, 그 제목의 뜻은 로프 같은 장비 없이 ‘맨몸’만으로 등반하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 아찔한 경사의 암벽 위에서 손끝과 발끝만으로 버텨내야 하는 것. 그뿐만이 아니다. 계속해서 올라가야 한다. 잠시라도 방심하는 순간, 다시는 암벽을 오르지 못하게 될 테니. 클라이머에게 훈련이란 육체를 넘어서서, 정신적으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들의 정신이 오르는 그 암벽의 단단함 못지않다고 밖에.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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