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History of The Hoodie
Stories: History of The Hoodie
누가 처음 티셔츠에 모자를 달았을까
후드티 없이 봄, 가을, 겨울을 못나는 에디터 김 모 씨. 내복 위에 기모 후드티 입고 아우터에 모자까지 쓱 둘러써주면 웬만한 추위는 저리 가라다. 외출 전 즐비하게 걸린 옷이 무색하게 정작 제일 손이 자주 가는 상의는 몇 년 전 런던 여행에서 구입한 쥬시 꾸뛰르(Juicy Couture)의 후드티.
뒤에 로고가 블링블링한 크리스탈로 대문짝만하게 박혀있어 좀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이만큼 편한 옷이 없으니..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애착 후드티를 또 집어 들면서 궁금해졌다. 이 편한 옷이 어떤 계기로 만들어진 건지. 그렇게 찾다 보니 그간 알아차리지 못했던 후드티의 넓고도 깊은, 다층적인 역사가 보였다. 젠테를 방문하는 이라면 맘에 쏙 드는 후드티를 위한 끝없는 여정을 하고 있을 터. 그에 보탬이 되고자 ‘후드티의 역사’를 낱낱이 파헤쳐 보고자 한다.
후드티(Hoodie)의 '후드(Hood)'는 영어로 ‘덮개’라는 뜻. (미국에서 ‘Hood’는 동네라는 뜻의 neighborhood의 준말로 미국 흑인들이 거주하는 빈민가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는 곧 소개할 후드티가 가진 역사와 맞닿아 있어서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하다.)
그 기원은 유럽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수도승은 후드 형식의 망토나 판쵸를 즐겨 입었다고 전해지는데.. 당연하게도 아직 사진 기술이 없었을 때니,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가져왔다. 그래도 후드티 조상님(?)의 모습을 알기엔 충분하지 않은가.
12세기 후드 형식의 망토를 착용하고 있는 수도승들.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의 후드티가 정식으로 세상에 나온 건 1930년대 그 유명한 Champion사에 의해서다. (다만 최초를 두고 1920년대 처음 후디를 내놓았던 ‘러셀 어쓸레틱(Russel Althletics)’사와 이견이 있긴 하다는 걸 알아 두자.)
1919년 ‘닉어보커 니팅 컴퍼니(Knickerbocker Knitting Company)’라는 니트웨어 회사를 설립한 Champion은 1930년대 첫 번째 후드 스웨트 셔츠를 만들어 낸다. Champion은 일반적 티셔츠 소재보다 두꺼운 소재의 봉제 방법을 개발한 후, 스웨트 셔츠의 제작을 시작했다.
1930년대 Champion의 후드티 광고.
현재 후드티 형태의 시초는 스웨트 셔츠에 쉽게 썼다 벗을 수 있는 후드를 추가한 것으로, 훈련 전후 체온 저하를 겪을 운동선수들과 뉴욕 북부, 추운 냉동 창고에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옷에 달린 모자가 머리를 보호하고 체온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만큼, 이때의 후드티는 무엇보다 편안함과 실용성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이후 고등학교와 협력하여 축구 선수, 육상 선수들이 입을 후드티를 만든 Champion. 그 후드티를 선수들이 여자친구에게 주기 시작하면서 학교 안팎으로 후드티가 유행하게 되었고, 그렇게 운동복에서 일상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후드티라는 옷이 대중적으로 제대로 눈도장을 찍고 인기를 끌게 된 건 1976년에 처음 나온 영화 <록키(Rocky)> 덕이 컸다. 우연히 헤비급 챔피언과 맞붙을 기회를 갖게 된 가난한 아마추어 복서 록키가 시합을 준비하고 도전하면서 성장하는 내용으로, 영화 속 록키가 고된 훈련을 이어가는 순간에는 땀에 젖은 회색 후드티가 함께 한다.
영화 <록키(Rocky)> 포스터.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주인공 록키가 동이 틀 무렵 후드티를 입고 양팔을 치켜드는 순간. 덕분에 촬영지인 필라델피아 미술관 앞 계단은 ‘록키 계단’이라고 불리며 필라델피아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고.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기도 한 <록키>는 197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당시 무함마드 알리(Muhammad Ali)와 배우 스탤론의 만남을 한 장면에 연출하기도 했는데. 아래 영상 초반에 이들이 함께 선보이는 스파링 장면은 길이 길이 남을 인터넷 전설 그 자체.
사실 <록키>의 영감이 된 인물이 무함마드 알리였다고 한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라는 말로 유명한 복싱 역사상 최고의 챔피언을 넘어 20세기 최고의 스포츠 선수인 그도 후드티를 즐겨 입었다.
무함마드 알리
후드티는 애초에 탄생부터 운동선수와 뉴욕 노동자들의 옷이었다. 그러다 <록키>를 비롯해 운동선수들의 이미지가 가미되며 후드티에는 노력 끝에 일궈낸 승리, 투지의 스포츠맨와 같이 긍정적인 새로운 의미가 덧씌워진 것. 이쯤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후드티는 필연적으로 하위문화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걸.
아웃사이더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힙합이 주류 대중음악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1980년대. 당시 랩을 비롯해 그래피티, 비보잉은 모두 ‘힙합’이라는 이름 하에 불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때 래퍼들과 그래피티 아티스트 그리고 스케이터들이 즐겨 입던 후드티는 스트리트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주류 패션계에 자리 잡게 되었으니.
자신의 그래피티 작업 앞에 선 에릭 펠리스브렛.
미국 애리조나에 최초의 스케이트 파크가 건설되기 전, 초기 스케이터들은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적절한 장소를 찾기 위해 무단 침입을 해야 했다. 특히 빈 수영장, 주차장, 저수지 같은 곳에서 몰래 스케이트를 탔던 스케이터들이나 지하철, 담벼락, 남의 건물에 몰래 그림을 그렸던 그래피티 아티스들에겐 들키지 않는 것이 우선 조건이었을 터. 그러니 얼굴을 가릴 수 있는 후드티는 필수품이지 않았겠는가.
거친 랩과 반항적인 가사를 특징으로 젊은 세대의 환호를 받은 갱스터 랩이 낳은 랩 스타의 탄생. N.W.A, 스눕 독(Snoop Dogg), 투팍(Tupac) 같은 래퍼들이 LA의 방송을 지배하면서 갱스터 랩이 90년대 힙합의 상업적인 얼굴이 되고, 그와 동시에 그들이 즐겨 입던 후드티는 새로운 상징성을 갖게 된다. 보라, 힙합 팬들에겐 보기만 해도 귓가에 비트가 울려 퍼지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얼굴들이다.
래퍼 스눕 독
투팍, 노토리우스 BIG
그럼 어쩌다 래퍼들이 후드티를 즐겨 입게 됐을까. 이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한 공간 전문가, 유현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인간은 누구나 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다며 “초기 후드티를 입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기 어려운 도시 빈민들이었다. 지붕이 있는 공간을 가지지 못하니 모자를 쓰고 후드를 뒤집어쓴다”고 말한다.
N.W.A, 50센트
또 힙합에서 자주 나오는 제스쳐인 손을 좌우로 넓게 흔드는 춤도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액션이며,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는 가장 저렴한 방식이라고 하기도.
영화 <8 마일> 속 후드티를 착용한 에미넴.
이는 힙합의 랩 문화가 흑인들의 사회적 배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항을 깔고 간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납득이 되는 대목이다. 당시 갱스터 랩이 처음 대두되었을 때, 갱단을 중심으로 자신의 구역을 점하기 위한 범죄 및 폭력과 관련이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당시 후드티는 다양한 파로 나뉘던 갱단을 구별하는 도구로서 기능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만큼 후드티는 힙합, 흑인 문화와 함께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후드티를 하위문화에 뿌리를 둔 스트리트 브랜드에서 꼭 빼놓지 않고 출시하는 아이템 중 하나로 만나볼 수 있다.
LOUIS VUITTON 2024 SS, SUPREME 2023 SS
PALACE 2023 FW, STUSSY 2023 SS
후드티의 주요 특성은 얼굴을 가릴 수 있다는 것. 그런 탓에 CCTV가 빠르게 늘어났던 2000년대에는 후드티로 얼굴을 가리는 범죄자들이 극성이었다고. 그래서 영국의 한 백화점에서는 한때 후드티 입는 이의 출입을 금지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후드티에 대한 이미지가 어땠는지는 대충 가늠이 될 것이다. 또, 2015년에는 미국 오클라호마 주는 후드티가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며 입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도 하며 후드티를 둘러싼 논란에 불을 지폈다.
당시 영국 보수당 의원이었던 데이비드 캐머런의 뒷모습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후드 쓴 이의 모습은 압권 그 자체.
이처럼 후드티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당시 영국 보수당 의원이었던 전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이 직접 나선다. 그는 후드티를 청소년 문제에 빗대 ‘후디를 안아주자(HUG A HOODIE)’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후드티가 타인에 대한 공격보다는 자신을 지키는 ‘방어’의 역할을 함을 강조하며 후드티에 씌인 오명을 해소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후드티를 입는다는 건 단순한 옷을 입는 행위를 넘어서 자신이 어떤 계층으로 규정될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후드티 입은 이들을 낙인찍고 색안경 끼고 보는 시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2년, 후드티에 대한 편견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으니. 바로 후드티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총 맞아 사망한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 사망 사건’이다. 이는 흑인에 대한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불거진 2020년 ‘플로이드 사망 사건’처럼 미국 내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촉발했던 사건이기도 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당시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던 후드티 차림의 트레이본 마틴은 동네를 순찰하던 자율방법대원 조지 짐머만의 눈에 뜨게 된다. 그의 옷차림을 보고 수상하게 여긴 짐머만은 경찰에 신고하고 쫓아가다 몸싸움 끝에 마틴에게 총을 발사한다. 하지만 마틴이 목숨을 잃은 자리에 남아있던 비닐봉지에 놓인 건, 그 어떤 범죄의 흔적도 아닌, 스키틀스(Skittles) 한 봉지와 음료수 한 병이 전부였다. 이 모든 건 범죄 집단을 연상시키는 부정적 이미지가 후드티에 덧칠된 결과였다.
후에 가해자인 짐머만이 풀려나면서, 미국 전역에서 거센 항의가 일어나게 된다. 시위자들은 모두 후드 차림이었다.
그토록 고통받던 후드티를 지금으로 끌어올린 인물 중 하나는 페이스북의 CEO이자 세계적인 백만장자인 마크 저커버그다. 누가 입으냐에 따라 후드티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라 씁쓸하기도 하다. “인생에서 쓸데없는 선택을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철학으로 똑같은 후드티를 여러 벌 구비해두고 입는다던 저커버그처럼, 지금 우리에게 후드티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후드티를 옷장 속에 20여벌 넣어두고 즐겨 입는다고 밝힌 마크 저커버그. 그가 입었다는 중고 후드티는 이베이에서 4000달러 (약 45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1930년 처음 만들어진 뒤,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을 지나오면서 후드티 위에는 다양한 의미가 덧씌워졌었다. 이 과정에는 계속된 ‘전복’이라는 맥락이 있다. 처음에 운동선수와 노동자의 옷으로 시작한 배경부터 인종 차별 시위의 의상 그리고 성공한 벤처 기업인의 일상복으로서의 상징성까지.
그러니 새로운 사회 문화 현상에 흥미를 갖는 패션 디자이너들에겐 역사의 현장에 있던 후드티가 흥미로운 옷일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애초에 젊은이들의 저항 문화를 하이 패션에 가져와 상징적인 아이콘이 된 RAF SIMONS가 그랬다.
RAF SIMONS “Consumed” 2003 SS, 중고 거래 사이트 Grailed 에서 고가에 판매되고 있는 RAF SIMONS 후드티
콧대 높던 하이 패션 런웨이에 스트리트 웨어의 상징인 후드티가 설 수 있게 된 건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후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있다. 중세 유럽 수도사의 전유물이었던 후드를 연상시키는 Yves Saint Laurent 시절의 후디드 드레스(Hooded Dress).
Yves Saint Laurent 1992 FW, 팝스타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가 뮤직비디오 ‘Flowers’에서 착용한 같은 후디드 드레스.
이번에 SAINT LAURENT의 안토니 바카넬로(Anthony Vaccarello)가 좀 더 편하게 해석해서 선보였으니. 신비로운 존재감을 드러내는 옷으로서 이런 후디 스타일 어떠한가.
제나 오르테가(Jenna Ortega), LACMA에 참석한 로제(Rosé)
최근에 전형적인 LA인들의 자유로운 패션에서 영감받아 화제를 일으킨 BALENCIAGA의 쇼에서도 어김없이 후드를 쓴 이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으니.
BALENCIAGA 2024 PRE-FALL
디자이너 창의성의 정수인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에서 후드티를 선보이는 인물인 뎀나(Demna). 그가 만든 후드티 이미지만 보면 기존의 오뜨 꾸뛰르라는 패션계 성역과도 같은 영역에 대한 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컬렉션을 두고 ‘이것이 과연 오뜨 꾸뛰르인가’라는 질문으로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했는데.. 하여간 이 후드티를 세탁기에 맘 놓고 넣고 돌릴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지가 궁금해질 따름이다.
BALENCIAGA 2021 AW Haute Couture
평범한 디자인의 후디를 오피스룩에 결합하여 선보인 MIU MIU 컬렉션도 빼놓으면 섭섭할 것. 울 코트 안에 후드를 레이어드한 스타일링으로 보여준 프라다 여사의 세련된 감각.
MIU MIU 2023 FW
위와 같은 하우스 브랜드 외에도 많은 브랜드에서 후드 아이템을 런웨이에 출시하고 있으니, 자세히 보자. 그 흔한 후드도 누가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다채로움을 띄고 있으니. Hood By Air의 셰인 올리버(Shayne Oliver)가 전개하는 Anonymous Club부터 Y/PROJECT, UNDERCOVER까지.
Anonymous Club Collection 01
Y/PROJECT 2024 SS, GOOMHEO 2024 SS
Duran Lantink 2024 SS, UNDERCOVER 2024 SS
하이 브랜드에서 선보이는 고가의 후드티들은 더 이상 후드티가 과거와는 다른 상징을 가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간단해 보이는 후드티가 한 세기를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서사를 가진 옷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을 것.
이제 과거 어두운 시절을 뒤로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중인 후드티.
음악 페스티벌도 같이 갈 정도로 절친으로 알려진 디자이너 하이더 아커만(Haider Ackermann)과 배우 티모시 샬라메. 평소 아프가니스탄 내의 여성 인권 문제를 눈여겨보고 있던 이들은 여성들을 지지하기 위한 자선 굿즈로 만들어 판매했다. 후드티로 만들어낸 선한 영향력이란 이런 것!
디자이너 하이더 아커만과 티모시 샬라메
귀여운 강아지 후드티를 입은 요즘 GUCCI의 얼굴, 배우 폴 메스칼(Paul Mescal), 편안한 후드티 패션의 정석, 엠마 코린(Emma Corrin)
하고 싶은 거 다하는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 후드티 없이 못 살아, 칸예 웨스트(Kanye West)
시크한 Chrome Hearts 후디의 벨라 하디드(Bella Hadid), 후드티 러버, 뎀나(Demna)와 BFRND
처음 노동자와 운동선수의 유니폼으로 세상에 나와 불평등의 상징 그리고 누구나 즐기는 패션 템이 되기까지. 이 모든 다사다난한 역사를 뒤로하고, 지금의 후드티가 있다. 이쯤 되니, 당신의 옷장에 있는 후드티가 좀 다르게 보이지 않는가. 스트리트 웨어의 유행에 상당한 지분이 있는 BALENCIAGA의 뎀나도 그랬던 모양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을 빌리며 물러나겠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