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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Dec 11. 2023

연말이 되면 빨간색을 찾게되는 이유

레드에 숨은 이야기부터 레드 스타일링 가이드까지. 

Stories: Fashion and Color Red 

연말이 되면 레드에 손이 간다



삭막한 도시가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쯤 비로소 우린 깨닫는다. 치열했던 올 한 해도 무사히 저물어가고 있다는 걸. 연말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색, 빨강에 관한 이야기.



독일 쾰른 대성당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 ⓒwwd.com






크리스마스의 상징은 왜 빨강일까?


크리스마스 하면 빨강, 빨강 하면 크리스마스다. 그러나 왜 빨강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전해져 내려오는 몇 가지 이야기들이 있을 뿐.

가장 유력한 주장은 예수의 생애와 관련이 깊다. 피의 색인 빨강이 그가 십자가 위에서 흘렸던 고귀한 보혈을 상징한다는 것. 크리스마스 자체가 종교 기념일이고, 그 기원 역시 예수의 탄신일에서 비롯된 것이니 아무래도 이 의견이 가장 큰 지지를 받는 듯하다. 또한 빨강과 세트로 묶인 초록 역시 사시사철 늘 푸른 상록수, 즉 영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삶을 표현한 것이라 전해진다.



피테르 브뤼헐, 킬바라로의 행진(1564) ⓒarthive.com



그렇다면 뒤이어 떠오르는 궁금증, 산타클로스의 옷은 왜 빨간색일까?



미국 타임지에서 최고의 산타 역으로 꼽힌 조나단 미스(Jonathan Meath). 위키피디아의 직업란에 산타클로스가 추가되어 있다. ⓒen.wikipedia.org




일단 산타는 실존 인물에 기반하는데, 4세기 터키의 작은 항구도시 미라의 대주교였던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 270~343)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평소 가난한 아이들에게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이야기가 가공되어 전설의 산타가 탄생한 것.

하지만 실제 성 니콜라스의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한 산타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붉은색과 흰색으로 된 주교 복장을 착용하긴 했지만 풍성한 흰 수염도 없고, 오히려 슬림한 체형이니까.



이집트 성 캐서린 수도원(Saint Catherine's Monastery)에 있는 성 니콜라스의 초상 ⓒen.wikipedia.org




이후 여러 나라에서 성 니콜라스의 축일인 12월 6일, 그의 선행을 기리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고 이 풍습은 영어권 문화에 전파되며 크리스마스와 결합된다. 우리에겐 산타의 주 활동 시즌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로 인식되어 있지만, 아직도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선 12월 6일에만 선물을 주는 집도 많다고.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1843)> 속 삽화, 성 니콜라스의 이야기를 다룬 책 Sint Nikolaas en zijn Knecht(1850)의 삽화 ⓒen.wikip



이처럼 길고 긴 산타의 히스토리. 때문에 그 외형 역시 오랜 세월을 거치며 여러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문인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 속에선 푸른 로브를 입은 점잖은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니까.

이처럼 과거엔 산타의 모습을 작가의 구미에 맞게 다양하게 표현했지만, 결국 이 모든 산타들을 제치고 가장 최근의 산타스러운 캐릭터를 창조해낸 건 미국의 만화가 토마스 나스트다. 그는 붉은색 주교 복장에서 영감을 받아 빨간 옷을 입힌 푸근한 이미지의 할아버지, 산타클로스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토마스 나스트(Thomas Nast)가 그린 19세기 중반의 산타클로스 ⓒrandom-times.com
미국의 잡지 Puck(1903)에 수록된 삽화 ⓒen.wikipedia.org



사실 많은 사람들이 산타를 코카 콜라(Coca-Cola) 사의 마케팅의 산물이라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1930년대 코카 콜라의 크리스마스 광고가 산타의 첫 공중파 데뷔인 셈. 물론 산타의 대중화에 한몫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산타를 주인공으로 한 코카콜라의 광고 ⓒbbc.com




그렇다면 궁금증 하나 더 추가! 산타의 충직한 동료, 루돌프의 코는 왜 빨갈까?

여기엔 확실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 루돌프의 실제 모델은 유럽 북부에 서식하는 순록. 미국과 네덜란드의 공동 연구팀은 루돌프의 코가 빨간 이유를 찾기 위해 이 순록의 대사 시스템까지 분석하는, 불타는 연구혼을 보여주었는데… (세상에) 과연 그 결과는? 바로 순록 코의 빽빽하게 들어찬 모세혈관 때문이다. 코 면적의 1mm 제곱 당 20개로... 그 수가 사람보다 25%나 많다고. 사람도 추우면 코 끝이 빨개지는데, 영하의 기온 속에서 하루 종일 썰매를 끄는 순록은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덕분에 체온 유지도 되고, 염증도 제어할 수 있는 것이라 하니 참으로 기특하다. 루돌프 음주운전 썰은 오늘로써 종결!



순록을 촬영한 적외선 이미지. 저 빨간 코 끝을 보라. ⓒsmithsonianmag.com







연말은 뜨거운 레드빛 로맨스와 함께


몸도 마음도 싱숭생숭해지는 한 해의 끝자락. 하지만 그 들뜬 기분 덕에 사랑이 시작되기에도 딱 좋은 시즌이다. 솔로던, 연인이던 상관없다. 여기 당신의 뜨거운 심장에 불을 지필 달달한 영화들과 함께 연말의 레드빛 로맨스를 꿈꿔보자.



당신이 잠든 사이에 (While You Were Sleeping)
세렌디피티 (Serendipity)ⓒautostraddle.com, ⓒtalkfilmsociety.com



클래식한 러브러브 무드가 가득한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 크리스마스에 벌어진 작은 사고를 계기로 사랑을 찾게 되는 스토리다. 또한 운명적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 세렌디피티 역시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다 생긴 우연한 해프닝이 사랑의 결실로 이어지는 내용.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screencrush.com, ⓒautostraddle.com




오랜 친구도 연인이 될 수 있을까? 이 아슬아슬한 질문에 대한 정답은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찾을 수 있다. 러닝타임 내내 이어지던 알쏭달쏭한 둘의 마음이 비로소 확실해지는 크리스마스 파티씬은 많은 관객들을 심쿵하게 한 명장면이다.

오고 가는 이메일 속 싹트는 흥미진진한 로맨스를 그린 작품, 유브 갓 메일 역시 크리스마스 시즌 뉴욕 거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니 요즘 시즌에 감상하기엔 제격!



유브 갓 메일 (You’ve Got Mail) ⓒthespool.net







빨강의 미친 존재감


그러나 빨강의 장황한 역사에 비하면 크리스마스도, 로맨스도 새 발의 피다. 이 특별한 색엔 사랑과 열정, 욕망과 분노, 때로는 신성함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엄청난 힘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 많은 문화권에서의 빨강은 사회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색으로까지 쓰인다.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 ⓒmotosha.com


특히 아시아에서의 빨강은 대적할 색이 없으니. 중국 철학에서의 빨강은 번영과 행운을 불러온다 여겨졌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제1 권력자인 왕의 어의는 항상 강인한 붉은빛을 띠었다. 모든 게 어지러웠던 혼돈의 시국 속에서도 빨강이 모든 악귀를 물리친다 믿었던, 과거 백성들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든든한 색이었던 것이다.



세종대왕, 중국의 설날 춘절의 붉은 등불 장식. 가정의 번영을 기원하는 상징이다.ⓒantiquealive.com, ⓒchinahighlights.com


빨강의 미친 존재감은 대중의 열정적인 사랑을 받는 캐릭터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자신의 콤플렉스였던 빨강머리를 본연의 개성으로 승화시킨 빨강머리 앤과 확고한 신념으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전대물의 레드 역할만 봐도 그렇다. 이제 우리들에게 빨강은 식지 않는 에너지와 맞서는 용기, 때론 온화한 마음으로 팀원을 이끄는 리더의 색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빨강머리 앤 ⓒpinterest


파워레인저 ⓒwifflegif.com









Fashion In Colors : Red


세상에서 가장 레드를 사랑하는 사람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집 ⓒelledecoration.co.uk


레드가 싫증 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루함을 느끼는 것과 같죠.


패션 여제라는 칭호로 불리는 다이애나 브릴랜드. 그녀가 패션에 끼친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패션 에디터라는 직업의 창시자이자, 하퍼스 바자를 거쳐 보그의 편집장까지 역임, 이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 연구소의 특별 컨설턴트, 1964년에는 국제 베스트 드레서 명예의 전당에까지 이름을 올렸으니 인생 자체가 패션이다.

그런 다이애나의 최애 컬러는 바로 레드. 위의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녀의 레드 사랑은 그 누구보다 진심이다. 벽지부터 소파, 커튼과 장식, 심지어 가구들까지 거의 모든 게 선명한 빨간빛을 띠고 있다. 그녀는 레드를 훌륭한 정화제라 소개하는데, 밝고, 깨끗하며, 모든 색깔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강조한다.



ⓒpowerfulgoddess.com



레드를 향한 그녀의 간절한 사랑은 단지 외면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그녀는 오늘날 사회학에서 많이 쓰이는 유스퀘이크(Youthquake)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이다. 의미는 청년들의 반란, 즉 청년(Youth)과 지진(Earthquake)의 합성어라 보면 된다. 이는 기성 시대와 권력에 저항한 1960년대 젊은이들의 문화를 지칭하기 위한 표현으로써, 문화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이 주류 문화를 이끌게 되는 힘을 뜻한다. 어떤가. 젊음과 열정의 색인 레드와 딱 어울리는 탁월한 사유가 아닌가?



토니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연출가 캐슬린 마셜(Kathleen Marshall)이 연출한 연극 다이애나 브릴랜드 ⓒdallasnews.com





한파에 맞서는 레드의 강렬함


이번 겨울 시즌 패션 지분의 절반 이상은 레드에게 있다. 올 레드 룩은 물론 레드를 포인트로 한 착장들을 거의 모든 런웨이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THE ROW 2023 FW, Hermès 2023 FW ⓒvogue.com



우선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대는 강렬한 올 레드 코디. 성공의 관건은 채도와 액세서리다. 비슷한 채도로 색감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일순위 조건. 이에 더해 은은한 광택의 실버나 블랙이나 브라운처럼 톤 다운 컬러 액세서리를 매칭해 주면 세련되고 안정감 있는 레드 착장이 완성된다.



LOEWE 2023 FW, Dolce & Gabbana 2023 FW
MARNI 2023 FW, Stella McCartney 2023 FW
VALENTINO 2023 PRE-FALL, Schiaparelli 2024 SSⓒvogue.com




저는 올 레드가 처음이라서요... 아직은 레드가 마냥 어려운 컬러인 당신.  Hermès나 GUCCI에서 등장한 체리 레드 컬러라면 고민 해결이다. 2024년 SS 시즌의 키컬러 중 하나인 체리 레드는 브라운의 고상함이 느껴지면서도 레드 본연의 에너지틱함을 유지하고 있는 색이기에, 입문 레드로는 최적의 선택. 게다가 마치 얼굴에 조명을 킨 것 같은 화사한 효과도 덤으로 가져갈 수 있으니 시도해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Hermès 2024 SS, GUCCI 2024 SS
Puppets and Puppets 2024 SS, Acne Studios 2024 SS
Del Core 2024 SS, SAINT LAURENT 2024 SSⓒvogue.com




데님과 골드, 핑크와 베이지, 그리고 블랙 앤 실버. 레드는 거의 모든 색들에게 환영받는 인기 컬러다. 데님과 골드와 만나면 그 파워풀함이 배가 되고, 핑크와 베이지를 만나면 로맨틱함이 배가 된다. 그리고 블랙 앤 화이트를 만나면? 섹시함의 극치로 간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막상 만나면 너무 재미난 착장으로 업그레이드시켜주는 매력. 레드의 친화력은 우리의 예상을 가볍게 비껴간다.



LOEWE 2024 SS, AG Fall 2023 FW
ISABEL MARANT 2023 Pre-Fall, Alessandra Rich 2023 FW
Philosophy 2023 Pre-Fall, FENDI 2017 FW
THE ROW 2024 SS, Tory Burch 2023 FW
ISABEL MARANT 2024 RESORT, Tibi 2018 FWⓒvogue.com






불변의 드레스코드, 레드


그렇다면 이제 레드의 매력에 빠진 셀럽들의 아웃핏을 살펴볼 차례. 특별히 연말 시즌을 겨냥해 엄선했으니, 앞으로 다가올 각종 모임룩에 적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vogue.com, ⓒharpersbazaar.com, ⓒheelscartel.com



이번에야말로 파티의 주인공으로 강림하고 싶은 당신. 레드와 함께라면 어느 자리에서라도 뒤지지 않는 아우라로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 켄달 제너와 벨라의 치명적인 레드 드레스는 물론 지지와 기네스 펠트로의 레드 슈트 셋업은 올 레드 룩의 산뜻한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착장.



ⓒvogue.com, ⓒharpersbazaar.com, ⓒchanel.com, ⓒpinterest




레드 아우터만이 갖는 독보적인 위치. 심심한 무채색의 겨울 시즌 룩에 인상적인 변주를 주기엔 이만한 게 없다. 사실 한 번 입으면 거리의 모든 사람이 나만 쳐다볼 것 같은 위험부담은 있지만, 이너를 최대한 심플하고 캐주얼하게 가져간다면 무난히 소화 가능하다.




ⓒvogue.com, ⓒharpersbazaar.com, ⓒeonline.com, ⓒthecut.com



스타킹이나 머플러, 백, 슈즈와 같은 서브 아이템으로도 충분히 레드의 힘을 보여줄 수 있다. 자신이 하나의 거대한 방이 되었다 가정하고 신체 어딘가에 붉은 장미를 놓아 포인트를 주는 상황이라 상상해 보자. 창가 옆 볕이 잘 드는 자리나, 테이블의 정중앙, 어쩌면 시선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일부러 강조하기 위해 장미의 레드빛을 이용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이 부각하고 싶은 부위에 레드 아이템을 얹어 이전과는 다른 독특한 무드를 연출하면 되는 것.



Milly 2010 FW
ⓒvogue.com, ⓒharpersbazaar.com, ⓒpurseblog.com, ⓒdailymail.co.uk



연말 분위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레드 타탄체크 룩도 빠질 순 없다. 레드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연출할 수 있는 소중한 패턴이니까.  특히 스커트와 팬츠 등 하의에 이 체크를 가미한다면 유니크하면서도 경쾌한 분위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vanityfair.com, ⓒvogue.com, ⓒharpersbazaar.com, ⓒpinterest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빨강의 힘을 절실히 체감한다. 지치지 않는 심장, 온몸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 그리고 세상의 모든 만물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 태양의 순환까지. 그렇게 빨강은 삶 그 자체가 된다. 그리고 약속한다. 우리가 의심하지 않는 한, 포기하지 않는 한, 스스로를 굳게 믿는 한 이 경이로운 순간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라고.



사이 톰블리(Cy Twombly), 무제 ⓒdailymail.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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