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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Dec 14. 2023

젠테가 선정한 전설의 패션 아이콘 5인

이제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영원하니까. 

Stories: Fashion and their Legacy

패션계에 기록된 마지막 순간들



모든 시작은 모든 마지막으로부터 비롯된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이 있기에


“내가 달 표면에서 발을 떼는 순간은 한 시대의 마지막 순간이었을 뿐 아니라, 달 착륙이 얼마나 거대한 도약이었는지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이 중요한 이유다. 그 마지막 이전에 있었던 모든 것들을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아폴로 17호의 선장, 유진 서넌(Eugene A. Cernan)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밟은 사람은 누구일까? 1969년, 아폴로 11호의 선장인 닐 암스트롱이다. 이건 이제 상식이나 다름없는 사실.

그렇다면, 달 표면을 밟은 마지막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1972년, 아폴로 17호의 선장인 유진 서넌이다. 그는 동료인 해리슨 슈미트(Harrison H. Schmitt)와 함께 달의 암석을 채집하고, 오렌지 색의 흙을 발견했으며, 앞날의 연구를 위한 실험 기기를 설치하고 무사히 귀환했다. 이는 장장 11년간 이어졌던 NASA의 유인 우주 비행 탐사 계획인 아폴로 프로젝트(Project Apollo)의 마지막 임무이기도 했다.



달 표면 위에 선 선장 유진 서넌 ©space.com
아폴로 17호에 탑승했던 해리슨 슈미트, 유진 서넌, 론 에반스 ©popsci.com



서넌은 달을 떠날 때 자신이 다신 여기 올 수 없으리란 건 알았지만, 이후 그 누군가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오리란 걸 확신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약 5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새로운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그저 달 근처를 맴도는 데에 그쳤을 뿐. 결국 그들은 그렇게 달 표면에 두 발을 디딘 마지막 인류로 남았다.



아폴로 17호의 사령선 ©airandspace.si.edu



때문에 서넌에게 마지막에 대한 의미는 처음보다 더 각별하다. 그는 마지막이 있기에 과거에 경의를 표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마지막이 있기에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그건 비단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시작만이 주목받는 시대에서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지막을 분명히 마주해야 하는 이유. 그건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와 맞닿아 있다. 그렇다. 세상에 끝나지 않는 것은 없다. 다만 다음이 있을 뿐.







전설의 패션 아이콘, 그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


우리가 찬란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이유는 곧 찬란한 과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용기 있는 도전, 그리고 꾸준한 노력을 통한 의미 있는 변화들이야말로 오늘날의 패션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이젠 세상을 떠난 전설의 패션 아이콘, 그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남긴 위대한 유산을 되짚어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티에리 뮈글러(Thierry Mugler)

1948 - 2022


“나는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죽을 준비도 되어 있다.” (WWD, 2021년 9월)



©artforum.com



1980년대 세계 패션계를 주름잡았던 디자이너 티에리 뮈글러. 그는 70년대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하우스, Thierry Mugler를 런칭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만이 가진 독특한 무드와 아방가르드한 의상은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고, 1992년엔 오트 꾸튀르에까지 진출하며 그 독보적인 미감을 마음껏 펼쳐냈다.



1992 SS

1997 SS, 1997 FW

1992 FW Haute Couture©dezeen.com, ©vogue.com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타들과의 협업 역시 뮈글러의 커리어에서 빠질 수 없는 자랑이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그레이스 존스, 데이빗 보위, 다이애나 로스까지 그의 의상을 선택했으니. 특히 1995년 가을 오트 꾸튀르 컬렉션은 브랜드 창립 20주년을 맞이해 기획된 대행사였다. 300가지가 넘는 룩과 수려한 세트 디자인, 최고의 슈퍼모델들이 합세한 건 물론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공연까지 더해져 패션계의 우드스톡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티에리 뮈글러의 슈트를 입은 데이빗 보위 ©@archivealive트위터
1992 SS 의상을 착용한 비욘세 ©bbc.com
1995 FW Haute Couture©lysisparis.com, ©vogue.com



그러나 무엇보다 큰 그의 업적은 정형화된 모델의 틀을 깬 최초의 인물이란 것이다. 그는 나이와 체형, 성별에 구애 없이 다양한 개성의 모델을 자신의 쇼에 섭외했다. 모든 유형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뮈글러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pinterest, ©vogue.com



또한 그는 어떤 아이디어든 반드시 실현시키는 놀라운 추진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옷은 미래의 풍경과 직결되어 있었고, 전통의 방식에 첨단 기술을 접목시키는 것으로써 앞으로 도래할 미래의 옷을 재현하려 했다. 살아있는 옷, 몸에 반응하는 옷, 몸에 도움이 되는 옷을 만드는 게 그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것이다.

자, 이쯤 되면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가 신선하다 감탄했던 패션계의 순간들은 대부분 뮈글러의 비범한 시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1991 SS, 몬트리올에서 열린 티에르 뮈글러 전시회에 등장한 사이보그 슈트©mixtemagazine.com, ©vogue.com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1969 - 2010


"저는 모든 것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게 보통 사람들이 추악하다고 인식하는 것들에서 그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SHOWstudio, 2003년 12월)



©fashionmodeldirectory.com




패션계의 악동, 알렉산더 맥퀸 역시 뮈글러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들에게 패션은 자신의 은밀한 상상력을 펼치기 위한 무기였으며, 덕분에 그들의 런웨이는 항상 환상과 낭만으로 가득했다.

악동이라는 별명답게 맥퀸의 컬렉션은 매번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전개로 충격을 안겨주는 쪽에 가까웠다. 앞서 SHOWstudio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그의 독특한 미의식이 미와 추의 경계를 허무는 데 일조한 것이다.



1998 FW, 1999 FW
2009 FW, 2010 SS©dazeddigital.com



어린 시절 그는 학교에 매일 패션 화보집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심한 따돌림도 받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컬렉션엔 언제나 불안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음산하면서도 기괴하고, 다소 거친 성격의 의상들이 주를 이뤘으니까. 칼 라거펠트 역시 그의 디자인엔 늘 죽음에 대한 동경이 서려 있었다는 말을 남겼는데 아마 그 위태로운 에너지가 맥퀸을 움직이는 일종의 동력이었을 수도 있다.



©i-d.vice.com




그의 행보에서 가장 가장 주목할 점은 드라마틱한 런웨이다. 무대를 물로 가득 채우거나(1997 SS), 위에서 비를 뿌려(1998 SS) 평소와 다른 이질적인 경험을 조장하고 때론 불(1998 FW)과 얼음, 눈(1999 FW, 2003 FW)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무대에 실제 회전목마를 설치하기도 하였으며(2001 FW), 댄스홀과 트랙을 만들어(2004 SS) 모델 하면 위킹이라는 공식을 파괴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1998 SS, 1998 FW, 1999 FW
2001 FW, 2004 SS©vogue.co.uk



나아가 평소 자신이 흠모했던 문화 예술들을 런웨이에 녹여낸 것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프랑스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2001 SS)과 바로크 문화(2007 SS), 중세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2010 FW) 등 그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무대를 구성해 자신의 사유를 보다 입체적으로 표현해 냈다. 이처럼 그는 단지 의상뿐만이 아닌 하나의 세계관을 패션에 담아냄으로써, 패션 자체에 대한 개념을 확장시켰다.



2001 SS, 프란시스 베이컨, 주사기를 꽂고 누워있는 인물 버전 2©vogue.co.uk, ©news.artnet.com
2007 SS
알렉산더 맥퀸의 마지막 컬렉션 2010 FW©vogue.com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1941 - 2022


“나는 단지 내 저항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패션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Beyond Magazine, 2018년 6월)



©voguebusiness.com



뼈속부터 혁명가의 피를 타고난 비비안 웨스트우드. 그녀에게 패션은 90년대, 각종 편견과 이데올로기로 가득한 전통 사회에 대한 순수한 반항이었다. 이 시기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펑크(Punk)는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로 영향력을 넓혀가며 영국의 젊은이들을 매혹시켰다. 물론 비비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 이류 취급을 받고, 때문에 주류들이 휘두르는 권위에 무조건 굴복해야만 했던 문화계의 고질적인 문제에 패션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dazeddigital.com



초창기에 비비안이 선보인 의상은 고상한 패션계를 충격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매춘부의 의상으로 인식되었던 가터벨트나 코르셋을 서슴없이 밖으로 드러내었고, 과감한 커팅으로 신체를 해방시켰으며, 성적이며 반항적인 문구들을 마치 전시하듯 사용했으니까. 반면에 이는 고루한 디자인에 지루함을 느끼던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1990 FW

1993 FW
1994 SS©style-republik.com



그녀에게 있어 패션은 그저 꾸미고 치장하는 게 전부가 아닌, 한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녀의 런웨이에선 시대와 인종, 젠더 문제에 대한 섬세한 고찰을 엿볼 수 있다. 비록 그 시작은 그저 반항을 위한 사소한 해프닝으로부터 였지만 이윽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거대한 물결로 거듭나게 되었다.



2012년 페럴림픽에서 시위에 참여한 비비안 ©dazeddigital.com



비비안의 올곧은 신념의 원천은 결국 자유다. 그녀는 보다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여러 사회 문제들과 맞섰으며, 절대 쉽게 타협하지 않았다. 나아가 환경 문제와 같은 대대적인 이슈들까지 거론하며 인간은 물론 이 지구의 안녕을 꿈꿨다.

오늘날의 패션 역시도 이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한 개인의 자유가 아닌, 이 세상의 자유를 위해 힘쓰고 있는 여러 브랜드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보라. 그들에겐 분명 그녀로부터 수혈받은 뜨거운 혁명가의 피가 흐르고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마지막 컬렉션 2023 FW ©wmagazine.com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1980 - 2021


“디자이너의 임무는 미래를 전망함과 동시에 지금의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다.” (Vogue France, 2021년 7월)



©dezeen.com



최근 10년간,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비주류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던 스트리트 웨어가 당당히 주류의 반열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버질 아블로가 있다. Off-White의 수장이자 전 Louis Vuitton의 디렉터로서 그는 그 어떤 디자이너보다 스트리트 웨어에 진심이었고, 이를 하이패션에 접목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Off-White 2017 SS ©WWD
버질 아블로의 첫 Louis Vuitton 콜렉션 ©wmagazine.com



사실 그의 전공은 패션이 아니었다. 토목과 건축을 공부했던 공학도였다. 또한 패션만큼이나 음악을 사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합쳐진 게 바로 그의 패션 세계다. 영혼의 파트너인 칸예 웨스트와의 만남도 이러한 다채로운 재능 덕분에 성사될 수 있었다. 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력이 그의 아이디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칸예 웨스트와 버질 아블로 ©billboard.com



버질의 첫 브랜드는 2012년, Pyrex Vision 이었다. 이 브랜드는 단돈 5만 원짜리 중고 폴로셔츠, 혹은 저지 등에 브랜드 로고만 프린팅 한 뒤 거의 열 배의 가격으로 다시 판매하는 독특한 생산 공정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의류를 제작하고 팔아 돈을 벌겠다는 뻔한 목적보단 하나의 브랜드를 런칭하고 그 가치를 판매해 보겠다는 신선한 시도를 감행했던 것이니까. 버질 스스로도 이는 패션 브랜드가 아닌 아트 프로젝트에 가깝다고 밝혔다.



Pyrex Vision 2013 SS, Pyrex Vision의 후디를 착용한 제이 지(Jay Z)©guyoverboard.com



오늘날 여러 형태로 진화한 패션 프로젝트와 협업들 역시 이러한 버질의 서사를 닮아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영감과 능력을 마치 오픈 소스처럼 제공했으며 장르 간의 경계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게다가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서라면 패션 외에 것도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자세로 임했다. 우리가 그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가난한 가나 이주민의 아들이 럭셔리 브랜드의 수장에 올랐다는 영웅담이 아닌, 바로 이 태도다.



이케아(IKEA)와 마이바흐(Mercedes-Maybach), 에비앙(Evian)과의 협업©shropshirestar.com, ©vogue.fr, ©housebeautiful.
버질 아블로의 마지막 Louis Vuitton 콜렉션 ©dazeddigital.com





제인 버킨(Jane Birkin)

1946 - 2023


“나는 나 자신을 패션 아이콘이라 생각한 적이 없어요. 다만 내가 원하는 옷을 입었을 뿐입니다.” (Believer Magazine, 2018년 8월)



©contramuro.com



프렌치 시크의 영원한 아이콘, 제인 버킨. 배우이자 가수인 그녀는 사실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인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던 이력 덕분에 프렌치 스타일의 전형으로 묘사되곤 한다. 가수와 배우가 그녀의 본래 직업이지만, 오히려 패션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보인 신기한 인물이다. 오죽하면 본인의 이름을 딴 백까지 출시되었을까. 그것도 럭셔리 브랜드의 끝판왕인 Hermès에서 말이다.



영화 블로우 업(1966)
영화 원더월(1968)
영화 돈 주앙(1973)
영화 Je T'aime Moi Non Plus(1976)©vogue.co.uk



클래식한 화이트 티셔츠와 패치워크 데님 진, 그리고 버킨(Birkin) 백 이전에 그녀의 두 손을 차지했던 바스켓 백은 제인의 시그니처 착장이다. 요즘 대세인 꾸안꾸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화장기 없는 얼굴과 최소한의 액세서리. 그리고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까지 무엇 하나 거슬리는 지점이 없다.



©harpersbazaar.com, ©elle.com, ©pinterest



2024년 SS 트렌드의 하나로 꼽힌 60년대 풍의 미니드레스. 그 정석을 발견할 수 있는 게 바로 제인 버킨의 스타일이다. 앞으로 맞이할 봄, 청량한 매력과 발랄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할 아이템. 그녀의 아웃핏에서 다가올 SS 시즌의 힌트를 얻어보자.



©pinterest, ©elsiegreen.com, ©elle.com



한 시대를 주름잡던 패션 아이콘들은 많고 많았지만, 제인 버킨만이 갖는 독보적 아우라가 있다.

그녀가 한창 활동하던 당시엔 패션 아이콘이란 개념 자체가 전무했다. 요즘처럼 패션 하우스와 계약을 맺고 앰버서더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인스타나 SNS처럼 그날의 착장을 신속하게 퍼트릴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요즘처럼 트렌드를 설정하고 이를 따르는 프로세스가 뚜렷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당히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저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었을 뿐인데. 과연 오늘날에도 이런 그녀의 행보를 추월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pinterest, ©bloglovin.com



“나는 나의 마지막 기록이 깨어지기를, 그러기 위한 도전을 기대한다.”

다시, 아폴로 17호의 이야기다. 그들은 달에 도착한 마지막 인류라는 자신들의 기록이 부디 깨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인다. 그렇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그들의 꿈은 그곳에 도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환희의 순간을 갈망하는 또 다른 이들과 함께 계속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지막은 새로운 도전의 유일한 조건이 된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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