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 알겠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다른 걸까 궁금했던 당신을 위해.
이거 캐시미어예요.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멈칫한 우리를 홀리는, 점원의 마법 같은 한 마디. 오! 캐시미어예요? 감탄사와 함께 맞장구를 치긴 했지만 막상 돌아서면 여전히 궁금한 게 한가득이다. 캐시미어 너란 아이! 대체 누구이길래.
나폴레옹의 아내인 조세핀은 어쩌면 남편보다 캐시미어를 더 사랑했을 수도 있다. 무슨 소리냐고? 당시 유럽 일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캐시미어. 최고 권력자인 나폴레옹 역시 그 인기를 체감했었던지 조세핀에게 틈만 나면 캐시미어 숄을 선물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녀가 가진 숄만 300개가 넘는다는 기록까지 있는 걸 보면 그녀 역시도 캐시미어의 매력에 단단히 빠졌던 게 분명하다.
어쩔 수 없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캐시미어의 가장 큰 장점은 가벼운 무게와 탁월한 보온성, 그리고 부드러운 촉감이다. 게다가 우아한 질감과 은은한 광택까지 흐르는 게 언뜻 봐도 참 탐나 보인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엔 다 이유가 있다는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섬유가 어디 쉽게 얻어지겠는가. 캐시미어가 비싼 이유는 결국 희귀해서다. 염소가 1년에 한 번 털갈이를 할 무렵 고품질의 털만을 골라내 제작하는데, 부드럽고 섬세한 모질 탓에 가위나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오직 빗질만으로 채취해야 하니 참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특히 감촉이 우수한 털만 수집해 품질을 높인다. 염소의 목 아래와 배 부분의 털을 주로 노린다고. 생각해 보라. 염소가 코끼리만 한 것도 아니고 그 양이 얼마나 되겠는가. 때문에 한 마리의 염소당 50에서 150그램 정도를 얻어내는 게 고작이다.
세상은 넓고 염소는 많지만, 캐시미어는 예외다. 전 세계 12개국에서만 살고 있는 캐시미어 염소 종이 따로 있다. 그야말로 종특 중에 종특이다. 캐시미어 원사의 직경은 사람 머리카락의 16분의 1 정도밖에 안되지만, 보온성은 양모보다 8배가 높다. 대부분이 몽골과 중국에서 생산되는데 일반적인 목동이 소유하는 염소가 백 마리 안팎이라 하니 당연히 희소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싼 거다.
섬유 자체가 희귀한 만큼 그걸 가공하는 공정 역시 까다롭다. 털을 일일이 세척하고 또 한 번의 선별 작업을 거쳐 표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털은 탈락된다. 깐깐한 기준을 통과해 선택받은 털들만이 건조 과정을 거친 뒤 직조 작업에 들어가게 되는 것. 캐시미어가 비싼 이유 중 크게 한몫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부드러운 특성 때문에 기계 가공은 어렵고, 오직 전통 손베틀을 사용하는 수작업으로만 가능하다. 완전한 자동화 기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산 캐시미어는 비용 절감을 위해 여러 공정이 자동화되어있다. 물론 편하기야 하겠지만 제품 품질이 크게 저하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때문에 진정한 캐시미어 제품을 만나보고 싶다면 네팔이나 몽골에서 생산한 캐시미어를 고를 것을 권장한다. 특히 네팔산은 캐시미어 가공법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올 만큼 장인의 뛰어난 기술이라고 하니 의심할 필요가 없다.
올해 11월 초, 패션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했던 소동이 있었다. 바로 캐시미어 없는 캐시미어 머플러 사건. 국내 주요 쇼핑몰에서 판매했던 머플러가 실제로는 캐시미어가 전혀 없는 가짜 제품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이 머플러를 구매한 A씨. 하지만 착용감에 있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관련 기관에 정밀 검사를 맡겼다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캐시미어 30%가 함유되었다는 상품 정보와는 달리 폴리에스터와 레이온의 혼방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던 것! 오직 감촉만으로 진가품을 판단할 수 있었던 걸 보면 그만큼 캐시미어가 갖는 감촉의 힘이 남다름을 알 수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캐시미어를 구매했다고 기뻐했을 고객들. 그 들뜬 마음에 큰 스크래치를 낸 이번 사건은 저렴한 캐시미어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걸 증명한 셈이다.
나아가 하나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캐시미어의 함유량. 최소 30% 이상은 되어야 특유의 포근한 감촉을 느낄 수 있으며, 그 양이 올라갈수록 기능성이 강화된다. 그러니 캐시미어 100%는 정말 믿고 구매해도 괜찮은 아이템. 물론 소재 관리를 해낼 부지런함과 당신의 지갑이 허락해야 한다는 강력한 조건이 붙긴 하지만.
품질이 낮은 캐시미어는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즉시 보풀이 일어난다. 고품질 캐시미어는 손으로 눌렀을 때 주름도 지지 않으며, 신축성과 탄성도 좋아서 부드럽게 늘려도 복구가 빠르다. 고품질은 거의 100% 함유나 울 혼방에서만 적용되며, 합성 섬유와의 혼합될 경우엔 대부분 품질이 낮은 캐시미어가 사용되니 선택에 있어 신중히 고려해야 할 부분. 이외에도 ‘베이비 캐시미어’, 즉 어린 염소로부터만 수집한 캐시미어도 있는데 일반 캐시미어보다 더 부드러운 감촉을 지녔다고 하니 캐시미어 중 최고급이다.
사실 캐시미어가 가장 많이 받는 오해가 바로 내구성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관리만 잘하면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캐시미어. 섬유의 품질이 워낙 좋아 염색된 색상이 바래질 일도 없으며, 일부러 무리하게 당기지만 않는다면 형태의 변형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귀한 캐시미어를 어떻게 관리하면 내 자식, 내 손자들에게까지 물려줄 수 있을까?
우선 세탁기에 돌리는 건 절대 금물이다. 만약 울 세척 기능이 있다면 시도해 볼 순 있지만, 그래도 가장 이상적인 건 20도씨의 미지근한 물에 담근 뒤 울 전용 세제나 아기용 샴푸를 넣고 저어주는 것. 그리고 비누 거품이 사라질 때까지 여러 번 이 과정을 반복한 뒤 물기를 제거한다. 비틀어서 짜내면 모양이 변형될 수 있으니 최대한 자극 없이 물을 빼주는 게 포인트.
이후 수건에 캐시미어를 올리고 돌돌 말아 지그시 눌러 남은 물기를 제거한다. 물론 이 상태로 오래 두는 것도 안된다. 그리고 그늘에 눕혀 서서히 말린다. 직사광선은 피해야 하며 건조기는 더더욱 피한다. 자, 이 모든 과정을 수행할 자신이 없다면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는 게 캐시미어를 무사히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캐시미어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섬유는 바로 울. 이 두 섬유 간에 팽팽한 대결은 매년 겨울마다 우리를 심사숙고하게 만드는 중대한 문제다.
우선 울이란 양의 털로 만든 섬유다. 외국에서는 알파카나 염소 등 동물의 털로 만든 건 전부 울이라 칭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대체로 양모만을 사용한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고 하니 참고할 것.
양모 울과 캐시미어의 공통적인 특징은 보온성이다. 때문에 겨울 코트의 대부분은 이 두 섬유의 차지. 하지만 촉감 면에서 울은 캐시미어만큼의 만족감을 선사하지 못한다. 또한 정전기가 잘나고 물도 조심해야 하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소재다. 그에 반해 캐시미어는 물에도 강한 장점이 있어 들쑥날쑥한 한국 날씨에 딱 알맞다.
이밖에도 앙고라 염소의 털로 만든 모헤어는 광택감이 뛰어나 우아한 느낌을 주는 데에 안성맞춤이지만, 습기에 약해 구김이 잘 생긴다. 또한 알파카와 라마는 양모 울보다 가볍기에 유용하지만 압력에 약하니 털이 뭉치거나 구겨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이 소재들 모두 양모 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섬유들이지만 어쨌든 캐시미어를 이기긴 어렵다. 때문에 섬유계의 챔피언은 결국 캐시미어의 차지.
2008년 제2의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라 불리며 많은 마니아를 양산했던 미드 <캐시미어 마피아(Cashmere Mafia)>. 작품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여성은 진짜 마피아가 아닌 모두 엄청난 노력을 통해 권력을 쟁취한 거물들로, 거의 마피아에 빗댈 정도의 화려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캐시미어’ 마피아인가? 고급스럽고 우아한 상류층의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키워드였기 때문이다. 캐시미어를 걸친 마피아라니. 기품 있는 포즈와 강단 있는 눈빛이 인상적인 우리의 리더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만큼 캐시미어의 이미지는 부와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토록 드라마틱한 캐시미어의 생애. 우리에겐 이 모든 과정을 가장 아름다운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최상위급의 캐시미어 제품들을 선보이는 브랜드 Loro Piana가 펭귄, 위대한 모험(2005)으로 오스카상을 받은 실력 있는 감독 뤼크 자케(Luc Jacquet)에게 캐시미어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캐시미어-비밀의 기원(Cashmere - The Origin of a Secret)이다. 작품의 배경은 몽골의 아라산. 큰 일교차와 겨울마다 눈보라가 치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대대로 캐시미어 생산기술을 전수받은 한 목동의 이야기다.
그들에게 자연은 고객에게 가장 귀한 소재를 공급하겠다는 신념의 터전이다. 때문에 이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선 자연은 반드시 보존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캐시미어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오로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비윤리적 사육 방식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결국 주변 생태계까지 위협받기 시작했다.
Loro Piana는 이 문제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들은 섬유질의 섬세함을 향상함과 동시에 염소 한 마리가 보유한 솜털을 늘리는 품종개량법을 개발했고, 생산지를 보호하기 위해 염소의 개체 수를 줄이는 대신 방목 수준을 개선해 생태계의 균형을 되살리는데 힘썼다. 이에 더해 국가적 정책까지 제시함과 동시에 해당 지역 연구소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이 찬란한 캐시미어를 오래오래 즐기기 위해 먼 미래, 나아가 이 지구까지 존중하는 현명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캐시미어라는 이름의 어원은 인도의 캬슈미르(Kashmir) 지방으로부터다. 캐시미어 염소의 뿌리가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 캬슈미르의 영어식 표현인 캐시미어가 섬유의 명칭으로 굳어진 것이다.
자, 그럼 캐시미어(Cashmere)가 비쌀 수 밖에 없는 마지막 이유. 이름에도 캐시(Cash)가 들어가기 때문이라 한다면… 믿어줄래?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