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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Jan 18. 2024

성공적인 새해를 위한 추천 콘텐츠 4선

에디터가 작년부터 고민해서 선정한 영화와 음악, 시와 드라마

Stories: 2024 New Year's Specials 

성공적인 새해를 위한 추천 콘텐츠 4선



이 글의 목적은 새해를 맞이해 추천하고 싶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
참 쑥스럽다. 에디터 생활을 하면서 가장 쑥스러울 때가 바로 이처럼, 독자들에게 개인적인 취향을 드러내야 할 때다. 이건 그저 내가 이런 취향을 갖고 있다네...로 끝나는 게 아니다. 내가 그 작품에 빠지게 된 계기들도 고백해야 하고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들도 술술 털어놔야 하고 아무튼 여러모로 내 속내를 많이 드러내야 한다. 그렇기에 반대로 그런 나의 취향을 바라보는 독자의 속내도 궁금해진다. 그래서 꾸준히 묻는다. 내가 이걸 이만큼 좋아하는데 당신은 어떠세요? 이 평범한 질문이 내겐 왜 이리 낯 뜨거운지. 마치 소개팅 상대에게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며 무작정 들이대는 기분이랄까.

어차피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지라고 맘 편히 생각하고 싶지만 사실 내가 너무나 애정 하는 것들이기에, 만약 독자들이 스크롤을 휙휙 넘기면서 뭐야, 이 오덕은. 이래버리면 어쩌지... 하며 벌벌 떠는 게 또 나다.



그렇다고 한다.




쉽지 않았다. 꽤 오래 고민했다. 정확히는 주제가 정해졌던 지난 해, 12월 28일부터 줄곧 말이다. 그만큼 내게는 이 글을 읽는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다는 바람과 만족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당신의 욕망을 보다 당당히 드러내 달라. 항상 새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받고 싶다는 이 디지털 시대 수요자의 특권을 말이다. 나는 이 지독한 갑을 관계가 너무 행복한 사람이니까.
그러니 부디 우리 오래오래 함께 하자! 2024년에도,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 둘 테니.









새해 소망은 세계 정복

: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유 앤 아이(You and I)


추운 겨울의 어느 날, 오랜 벗 J를 만났을 때였다. 나 이 노래 가사에 완전 꽂혔어.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식당 주인에게 쪼르르 달려가더니 갑자기 신청곡을 주문했다. 아니, 여긴 그냥 평범한 이자카야라고. 신청곡이 가능하겠냐고. 난 아주 경미한 경멸을 담아 J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뭔가 신나 보였다. 성공한 것이다. 흐르던 음악이 잠시 끊기고 바로 그의 신청곡이 나왔다. 스티비 원더의 유 앤 아이.



You and I가 수록된 스티비 원더의 Talking Book 앨범. 저명한 음악 전문 매체 피치포크(Pitchfork)에서 10점 만점을 받았다. ©pitchfork.com




잘 들어봐. 평소 J의 취향에 절대적 믿음을 갖고 있던 탓에 일단 군말 없이 잠자코 들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후렴구에 단 한 구절이 주는 황홀한 울림을.
We Can Conquer the World.
우린 세계 정복도 할 수 있어요.

가사의 내용은 별 거 없다. 그냥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랑 고백이라고 하면 되겠다. 우리가 사랑에 빠진 건 신의 계시고 난 그대와 같은 사람을 찾아왔고 남은 생이 끝날 때까지 우린 함께할 것이며 내 마음속에 그대는 사랑으로 항상 머물 것이라는 이야기. 여기까지만 보면 뻔하다.
그러나 클라이맥스는 이 Conquer the World, 세계 정복에서 터진다. 그대만 있다면 동네 초등학생이나 품을 법한 막연하고 뜬금없는 꿈도 거뜬히 이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사랑이란 이름의 무한한 가능성.

자! 그럼 지금부터 모두 새해 소망을 수정하도록 한다. 하찮은 연애 따위가 아닌 이 세상을 정복할 만한, 그 막강한 사랑의 힘을 체험하게 되는 한 해가 되기를.



음악만큼 패션 감각도 훌륭한 스티비 원더 ©gq-magazine.co.uk









혹시 신년 계획이 금주인가요?

영화: 어나더 라운드(Another Round, 2022)


해가 갈수록 신년 계획엔 부정문이 늘어간다. 풋풋한 청년기엔 이것을 하자, 저것도 하자는 하자 위주였다면 지금은 이건 하지 말자, 저것도 하지 말자는 하지 말자 위주다. 그래서인지 새해만 되면 뭔가 침울해진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다 빼고 나니 남은 건 밋밋한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간 당신의 신년 계획 목록에 금주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면, 꼭 봤으면 하는 작품이 여기 있다. 덴마크의 박찬욱, 토마스 빈터베르그(Thomas Vinterberg) 감독의 어나더 라운드다.



©imdb.com




무료한 일상에 질려버린 네 명의 교사가 시들어진 열정을 깨우기 위해 매일 술을 홀짝인다는... 얼핏 보면 금주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처럼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들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몸소 테스트하는 중이다. 과연 진짜 그럴까?
실험 초반엔 좋았다. 일도 수업도 잘되고, 소원했던 부부 관계도 살아나고,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카리스마까지 발휘되어 동료 교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으니.
하지만 이게 가능할 리가 없다. 점점 부작용이 속출하기 시작한다. 절제력을 잃고 과다 섭취하는 건 물론, 알코올의 힘이 곧 자신감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 아래 술이 없으면 무엇도 시도하지 못할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되고 만다.



찐 아재 패션을 감상할 수 있는 작품, 어나더 라운드 ©film-cred.com, ©vulture.com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참 신선하다. 술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히 드러내면서 관객에게 그 어떤 강요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적당히 마셔라,라는 뻔한 교훈도 없다. 판단과 결정을 오롯이 우리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대신 이 작품은 타인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려면 자신의 실패의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의 말을 빌려온다. 삶 속에서 끊임없이 출현할 무수한 실패의 경험들에 사사건건 휘둘리기엔 남은 삶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생각해 보라. 우린 꿈꾸던 환상, 즉 추구하는 목표나 바라던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면 이를 실패라 부르고 끝이라 단정해버린다. 하지만 그건 진짜 현실이 아니다. 당신이 무작정 쫓았던 환상 속의 순간일 뿐. 그러니 지금 여기, 당신을 묵묵히 지탱해 주는 현실에 집중하라.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마시던, 안 마시던.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즐겁게 마시는 것도, 건강을 위해 끊는 것도, 모두 나름대로의 길고 긴 인생을 꾸려가기 위한 소소한 선택들 중 하나일 뿐인데.



그래도 술이 없으면, 이 정도의 흥은 나오지 않을 걸? ©tenor.com









절대 정주행이 불가능한 드라마

미드: 모던 패밀리(Modern Family)


고독에 몸부림치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항상 추천하는 드라마가 있다. 들어는 봤는가, 미드 모던 패밀리라고. 이는 전적으로 내 경험에서 비롯된 추천이다. 한창 일이 풀리지 않아 집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엉엉 울고 있을 때, 나를 웃게 했던 고마운 치료제나 다름없는 작품이다. 그때는 마치 세상이 무너진 사람처럼 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겨우 미드로 회복될 고난이었다니, 이불킥 감이다.



모던 패밀리의 로튼 토마토 관객 점수는 무려 98% ©rottentomatoes.com




사실 가족만큼 자극적인 주제도 없다. 모든 장르를 통틀어 보아도 그렇다. 흥미진진 스릴러도 가족이란 이름이 붙으면 좀 더 잔혹해지고, 으스스한 공포도 가족이란 이름이 붙으면 좀 더 기이해진다. 물론 사랑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가족이란 이름이 붙으면 좀 더 묵직하고 울림이 강해진다. 그만큼 가족이란 관계는 만인이 공감하지만 누구에게도 똑같지 않은, 그런 묘한 감정들로 얽혀 있다.

코미디도 마찬가지다. 모던 패밀리에 등장하는 가족의 형태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자기 딸 뻘의 아내와 재혼해 아이까지 얻은 아버지, 사고뭉치 남편과 고집불통 아내, 그러한 부모가 낳은 사고뭉치 고집불통 자식들, 동성 결혼 후 여자 아이를 입양한 게이 커플까지. 그냥 말로만 풀어놓으면 인스타그램 썰 계정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가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일상은 막장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바람 잘 날이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이 즐겁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도 아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힘으로 매일매일 터지는 해프닝들을 무사히 헤쳐나간다.
멋진 관계는 별 탈 없는 관계가 아니다. 어떤 탈이 나도 극복하겠다는 의지로 무장한 관계다. 바로 모던 패밀리의 가족들이 그렇다. 그렇게 작품에 집중하다 보면 고독과 외로움은 어느새 잊혀가고, 친밀했던 이들의 존재가 불쑥불쑥 떠오르면서,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the-sun.com, ©variety.com




그렇다면 대체 왜, 새해에 이 작품을 추천하느냐?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 일정 기간에 몰아보는 ‘정주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방영기간만 11년, 11개의 시즌과 총 250화로 이루어진 방대한 양이다. 하지만 중도 포기하기엔 매 화가 너무 주옥같다. 연초부터 꾸준히 시청한다면 올해 안에는 전부 섭렵할 수 있을 것.




방영 내내 화제가 되었던 글로리아(소피아 베르가라)의 레오파드 패션 모음. 오죽하면 쿠션까지 레오파드. ©fm4.orf.at, ©imdb.com, ©countryliving.com








삶은 그 자체로 반짝이는 것

: 철학자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


©h21.hani.co.kr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았다. 그동안 이어지던 모든 일상의 삶들이 셔터를 내린 것처럼 중단되었다.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환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꼭 13개월이 지났다. 이 글은 그사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의 기록이다. (아침의 피아노, 작가의 말)


이 책에 대한 글을 쓰기엔 아직 내가 너무 하찮다.
그래서 다른 걸 소개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접했을 때의 내 심정이 떠올라 과감히 데리고 왔다. 내용을 구성하는 건 234개의 짧은 소품들이다. 하루만 투자하면 완독 할 수 있는 분량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절대 완독이 불가능하다. 펼쳐볼 때마다 마치 새로운 책을 읽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단어도 문장도 내가 봤던 그 책이 아니었다. 그래서 몇 번을 다시 읽었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책이라니.

처음 이 책을 끝까지 읽었을 땐 매우 슬펐다. 병상에 홀로 앉아 물끄러미 창 밖을 보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그저 가여웠다. 그래서 슬퍼졌고 실제로 눈물도 흘렸다.
두 번째 읽었을 땐 좀 달랐다. 그때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지도 않았다. 그냥 이유 없이 친구에게 전화하듯 아무 데나 펼쳐서 무심하게 읽었다. 그래도 막판엔 역시 슬펐다. 하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고 대신 가슴이 먹먹했다.
그 이후에도 틈만 나면 이 책을 빼서 읽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마음이 시끄러울 때마다. 이 책에 무슨 신기한 효능이라도 있는 것인지 이상하게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완벽한 고요가 찾아왔다. 부산스럽던 창밖의 소음도, 걱정과 욕망과 불안 같은 시시콜콜한 감정들도, 모두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다. 아, 조금만 더 빨리 읽었더라면 좋았을걸.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nssmag.com




나의 이전 신년 계획들을 떠올려 보면 그렇게 야심에 차 있을 수가 없다. 당연하다. 그리고 매해 번호붙인 목록까지 만들어 치열하게 하나하나 체킹하며 실패의 절망과 달성의 환희를 넘나드는 스펙터클한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나의 2024년의 계획이자 어쩌면 평생의 계획이 될지도 모를, 아침의 피아노 속 한 문장으로 이 글을 마친다.



조용한 날들을 지키기.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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