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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Jan 23. 2024

당신의 아이콘은 누가 시킨 대로 입지 않았다

Stories: Genderless Fashion


Stories: Genderless Fashion

당신의 아이콘은 누가 시킨 대로 입지 않았다





다양성을 흡수하며 나아가는 패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젠더리스’라는 이름에 대하여.




당신의 아이콘은 누가 시킨 대로 입지 않았다


분명 독자 중 누군가는 ‘입고 다니는 스타일’과 ‘입고 싶은 스타일’ 사이의 괴리가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에디터도 그렇다. 가끔은 온갖 화려한 컬러의 옷이나 귀여운 인형이 달린 옷을 입고 싶지만 사회적 체면상(!) 포기할 때가 있다. 그래서 다시 익숙하고 무난한 옷을 집기 일쑤다. 특히 남성이라면 더 그럴 것 같다. 여전히 남자가 치마를 입고 거리를 걸어가면 많은 이들의 시선이 꽂히는 걸 바로 느끼는 것이 현실이니까. 그럴 땐 당신이 롤 모델로 삼는 스타나 아이콘이 있다면 그들의 스타일을 떠올려 보라. 지금까지 독보적인 스타일 아이콘들은 누구를 따라 하지 않았다. 입고 싶었던 대로 입었을 뿐.



ⓒdiscogs.com

최초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영원한 락스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70년대, 데이비드 보위는 모험을 한다. 당시 대중들의 인식 속에는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던 꽃무늬의 벨벳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것. 최초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남성 락커의 등장이었던 셈이었다. 처음엔 아내의 드레스를 장난삼아 입어 보던 것이 자신의 중성적인 외모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개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는.. 물론 처참했다. 그 비주얼 자체가 대중을 불쾌하게 하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앨범은 판매 금지되었고, 당시 레코드사는 보위는 해고하기까지 한다. 누군가는 그는 공개적으로 여장을 즐기는 변태로 치부했다. 그와 동시에 혁신의 기운이 꿈틀대며 감지되었고, 보위는 그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의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고 있다.



ⓒdazeddigital.com

영화 <벨벳 골드마인>에 등장하는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라이브, 화장, 의상을 비롯한 모습은 자연스럽게 데이비드 보위와 겹쳐진다. 


ⓒgq.com



패션은 젠더(Gender)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물질적인 수단인 패션이 어떻게 정체성 중 하나인 개인이 인식하는 사회적 성별과 다를 수 있겠는가. 그간 전통적으로 공고히 자리 잡고 있던 남, 여라는 이분법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패션계에 나타난 변화가 ‘젠더리스’다.


유니섹스(Unisex)라는 단어가 한물 지난 단어로 여겨지고, 앤드로지너스(androgynous), 젠터 뉴트럴(Gender Neutral),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와 같은 새로운 용어의 등장은 이 변화가 피할 수 없는 흐름임을 암시한다.




바지를 입는 게 남자답지 않았다니


이번 콘텐츠의 주제인 젠더리스 패션은 옷에 있어서 더 이상 성별을 구별하지 않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옷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남자다운’ 스타일, ‘여자다운’ 스타일이라는 명명이 그 자체로 구식이라는 뜻.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기록을 살펴보면 남성으로만 구성된 고대 로마 군단의 제복에는 오늘날 우리가 치마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옷을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로마인들은 처음 바지를 접했을 때 그것이 남자답지 않다고 여기기까지 했다고 하니,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발상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중세 유럽, 르네상스 시절을 지나며 흔한 남성복이었던 치마는 19세기를 지나며 격변의 시기를 겪게 되는데, 산업화가 진행되고 남성들이 주로 나가서 일을 하면서 가부장적 성향이 강해지면서부터다. 그렇게 치마는 남성을 떠나 여성의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다.


ⓒattireclub.org





여성에게 바지를 허하라


치마가 여성의 것이었다면, 바지는 남성들의 것이었다. 그 생각에 균열에 나기 시작한 건 미국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이 일어나던 1850년, 신체를 압박하고 행동을 제약하는 여성들의 의상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인식과 시대적 요구가 스멀스멀 생기면서부터다.



ⓒbaklol.com

여성 최초로 바지를 입고 외출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인, 엘리자베스 스미스 밀러(Elizabeth Smith Miller). 





지금의 젠더리스를 만든 디자이너들


ⓒvanityfair.com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의 뮤즈였던 오드리 헵번.
1956년 영화 ‘사브리나(Sabrina)’에 오드리 헵번이 입고 등장했던 GIVENCHY의 발목이 드러나는 타이트한 바지는 ‘사브리나 팬츠’로 불리며 크게 인기를 끌게 된다. 



턱시도 정장을 여성에게 입힌 Yves Saint Laurent의 르 스모킹(Le Smoking). 60년대 여성이 바지를 입는 건 일반적인 일이 아니였다. 프랑스, 미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이 바지를 입는 게 금지되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입 생 로랑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해방운동에 주목하여, 자신감 있고 당당한 새로운 ‘여성상’을 옷을 통해 선보인 것.


ⓒharpersbazaar.com

1967년, Yves Saint Laurent의 르 스모킹 수트를 입은 모델. 

ⓒthecodemag.com, ⓒelopeinparis.com

Yves Saint Laurent의 Le Smoking 정신을 재해석한 SAINT LAURENT.



생전 디자이너 입 생 로랑의 연인이자 공동 창립자였던 피에르 베르제는 ”CHANEL이 여성들에게 자유를 안겨줬다면, Yves Saint Laurent은 여성들에게 힘을 줬다”고 말하기도.



ⓒchanel.com



여성복에 주력하는 CHANEL은 흥미롭게도 남성 패션 아이콘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성별의 경계가 모호한 앤드로지너스 룩을 선보인 코코 샤넬(Coco Chanel)은 떠났지만 여전히 그 정신은 건재하다.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주도하던 시기에 가수 퍼렐 윌리엄스나 지드래곤 같은 스타일 아이콘들이 입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vanityfair.com, ⓒhypebeast.com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제이콥 엘로디(Jacob Elordi)



크리스틴 스튜어트(Kristen Stewart)만큼 CHANEL을 중성적으로 잘 소화하는 인물이 있을까. 시원하게 짧게 자른 머리와 툭 걸친 자켓 그리고 강렬한 눈빛. 세간에 존재하는 ‘여성성’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운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보고 있자면 그 자체로 속이 시원할 때가 있다.



ⓒelle.com


최초로 ‘남성을 위한’ 스커트 컬렉션을 내놓기도 했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 과거에 순전히 남성을 위한 아이템이었던 치마를 런웨이에서 다시 돌려준 셈이었다. 신선한 디자인으로 패션계에 즐거운 충격을 안겨줬던 그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스커트를 즐겨 입은 모습으로 자주 나타나곤 했다.



ⓒvogue.co.uk

스커트를 입고 있는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 

ⓒgq-magazine.co.uk, ⓒpinterest.co.kr

Jean Paul Gaultier 1995 FW

ⓒjeanpaulgaultier.com

처음 출시된 1985년 무려 3000벌이 넘게 팔린 Jean Paul Gaultier의 남성용 치마.



젠더리스로 나아가는 현대 패션계에서 알렉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의 GUCCI는 분명 한 획을 그었다. 그가 몸 담기 전 GUCCI는 말 그대로 고상하고 고개가 뻣뻣한 하이 패션 그 자체였던 걸 상기하면 더 그렇다. 물론 톰 포드(Tom Ford)의 GUCCI가 섹시하긴 했지만 미켈레처럼 급진적으로 성별의 개념을 무너뜨린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vogue.com

뮤지션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가 과감한 스타일로 주목받게 된 건 GUCCI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와의 만남이 한몫했다. 

ⓒdazeddigital.com

GUCCI 2015 FW 




요즘 디자이너들은 이렇게 합니다


사실 젠더리스라는 단어를 계속 꺼내는 것도 촌스러운 일이다. 이미 패션계에선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여전히 여성복, 남성복을 나눠서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디자인만 놓고 보면 딱히 성별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당장 2024 FW 컬렉션들만 봐도 그렇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패션 위크가 시작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됐지만 쇼 사진을 볼 수 있는 Vogue 런웨이 사이트에선 젠더리스적인 요소가 없는 브랜드를 찾기가 오히려 더 힘들 정도다. 특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Sabato De Sarno)가 전개한 새로운 GUCCI의 이번 남성복 컬렉션은 그의 데뷔 쇼였던 여성복 2024 SS 컬렉션과 의도적으로 비슷한 룩들을 보여줬으니.



ⓒvogue.com

GUCCI 2024 SS, GUCCI 2024 FW Menswear



진정한 젠더리스는 이런 것이다. 남성복 컬렉션에서 여성 스타킹을 모델들에게 신겨 하의 실종 패션을 보여준 JW ANDERSON.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은 “스타킹은 아름다운 두 번째 피부이자, 심리적으로 뒤틀린 것을 표현한 수단” 이라며 남성 모델들에게 스타킹을 신긴 이유를 밝혔다.



ⓒvogue.com

JW ANDERSON 2024 FW Menswear 

ⓒbehindtheblinds.be

Achilles Ion Gabriel 2024 FW 

ⓒvogue.com

Ludovic de Saint Sernin 2023 FW MENSWEAR

ⓒamiparis.com

Ami Paris 2023 FW 

ⓒvogue.com

Simone Rocha 2023 SS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한 번에 답할 수 있는가.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사회로부터 정상성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압박을 받는 소수자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이들은 패션이라는 표현 수단을 통해 그 공고한 사회 규범에 저항하기도 한다. 그 저항의 표현이 생물학적 성별의 반대 성별의 것으로 규정된 복장을 입는 크로스 드레싱(Cross dressing)이다. 즉 크로스 드레싱은 생물학적 성별의 반대 성별의 것으로 규정된 복장을 입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던졌던 예술가들은 크로스 드레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여성으로 분장해 ‘레이디 워홀’ 시리즈를 남긴 앤디 워홀(Andy Warhol)이 대표적이다. 생물학적 남성이지만, 사진을 통해 여성적인 특징으로 여겨지는 헤어와 짙은 메이크업, 포즈를 연출함으로써 자신의 이중적 성 정체성을 드러냈다. 화면을 응시하는 그의 눈을 묻는 듯하다. 젠더는 무엇인지, 과연 당신은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dazeddigital.com

예술가 앤디 워홀의 드랙 셀카들. 



또 다른 예술가로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있다. 소변기를 <샘>이라는 이름으로 예술 작품을 내놓아 새롭게 현대 예술을 정의한 그 사람 맞다. 자신의 페르소나로 로즈 셀라비(Rrose Selavy)라는 유대인 여성을 만들고 그 이름으로 작품의 주인공, 작가 등의 정체성의 지닌 인물로 활동했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이고, 그것이 자신을 옭아매는지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는 과정의 일환이었다.



ⓒanothermag.com

Rrose Selavy (Marcel Duchamp), 1920




BALENCIAGA가 사랑하는 드랙이라는 저항


크로스 드레싱에서 더 나아가면 드랙(Drag)이라는 행위예술이 있다. 단순히 생물학적 성별에 규정된 복장을 바꿔 입는 것뿐만이 아니다. 가발, 메이크업, 옷을 과장되게 스타일링해서 기존의 젠더 수행을 모방하며 크로스 드레싱이 전달할 수 있는 충격의 세기를 더한다. 겉으로 보기에 젠더가 확실히 구분되는 옷을 입고, 얼핏 사회적으로 정해진 젠더 역할을 수행하는 듯 보이는 연극을 통해 정상성으로 규정된 젠더 개념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dazeddigital.com

미국의 유명 드랙 아티스트 루 폴(Ru Paul) BALENCIAGA x Ru Paul Edition. 

ⓒvogue.com, ⓒnytimes.com

드랙이 등장한 BALENCIAGA 2024 SS, 배우이자 트렌스 젠더인 엘리엇 페이지(Elliot Page)가 등장한 BALENCIAGA 2024 SS



런던 베이스의 게이 클럽씬을 런웨이에서 선보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담은 컬렉션을 전개하고 있는 CHARLES JEFFREY LOVERBOY. 찰스 제프리 또한 드랙 퀸 친구들과 어울리며 브랜드 CHARLES JEFFREY LOVERBOY를 통해 자신도 그 문화의 일부임을 드러내곤 했다.



ⓒper-spex.com, ⓒvogue.com

CHARLES JEFFREY LOVERBOY, Dsquared2 2024 FW 드랙을 하고 나타난 쌍둥이 디자이너, 딘과 댄 케이튼.

ⓒgq-magazin.de

셰인 올리버(Shayne Oliver)의 Anonymous Club. 





자신으로 존재할수록 강해지는 존재감


핫핫 뮤지션의 패션은 항상 궁금하다. 트로이 시반(Troye Sivan)의 패션도 그렇다. 5년 만에 발표한 그의 정규 앨범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둘러싼 수많은 물음표들과 답이 느껴졌다. 그것도 아주 자신 있고 당당한 형태로. 트로이 시반의 진정한 전성기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제대로 시작됐다. 아티스트로서 연차가 쌓이면서 점점 자기다움에 대한 욕망이 커졌으리라 짐작해 본다. 멧 갈라에 슬림한 블랙 저지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고 등장한 그는 젠더리스 패션의 진정한 승자!


ⓒwonderlandmagazine.com, ⓒpinterest.com


젠더리스 스타일로 말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스타인 엠마 코린(Emma Corrin). 영화 시상식에서 젠더 구분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던 그는 스타일뿐만 아니라 배우로서의 삶에서도 진정한 ‘젠더리스’를 추구하는 중이다. 사실 누가 입은 옷이 남자 옷인지, 여자 옷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편견 없는 멋진 태도니까.



ⓒelle.com, ⓒpinterest.com



옷은 옷일 뿐. 단순히 옷차림으로 성별을 구분하는 걸 넘어서 그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회적 관념, 당위들에 질문을 던져보자. 그런 노력들이 지속된다면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언젠가는 굳이 ‘젠더리스’가 필요조차 없는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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