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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Apr 30. 2024

에디터의 화이트 셔츠 예찬록(錄)

Stories: The White Shirt


Stories: The White Shirt

에디터의 화이트 셔츠 예찬록(錄)






‘기본 아이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템, 바로 화이트 셔츠다. 격식을 갖춰 입어야 하는 직장인부터 이제 막 멋을 부리기 시작한 학생들까지. 누구나 옷장 속에 이 하얀 셔츠 하나쯤은 고이 모셔뒀을 터.



이토록 섹시한 화이트 셔츠


사실 화이트 셔츠만큼 섹시한 옷도 없다. 별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할까. 가장 순수한 색의 얼굴을 하고선 단추 두세 개 풀어주면 드러나는 발칙함(!). 그 누구라도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으리라. 특히 남녀 불문, 본업 잘하는 지적인 이들의 몸 위에 화이트 셔츠가 입혀졌을 땐, 속수무책으로 그저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tumblr.com, ©buzzfeed.com

배우 톰 하디(Tom Hardy), 배우 라이언 고슬링(Ryan Gosling)

©vogue.com, ©pinterest.co.kr

가수 두아 리파(Dua Lipa),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Kristen Stewart)



화이트 셔츠를 입은 이를 보고 있으면 확신하게 된다. 과하면 촌스럽다는 말은 진리라는 걸. 오히려 더 빼고 더 단순하려고 할 수록, 입는 사람의 매력이 더 드러난다고 할까.

처음부터 화이트 셔츠의 매력을 알았던 건 아니다. 원래 진가는 서서히 밝혀지는 법이지 않나. 깔끔치 못한 식사를 하게 될 때면 셔츠에 뭐를 묻힐까봐 노심초사 해야했고, 구겨진 화이트 셔츠는 안 입느니만 못한 법이니 빳빳하게 다려서 입어야 했으니..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였다.



©samfreeov.life

화이트 셔츠를 입고 식사할 때 꼭 음식을 묻힌다.



그러다 중요한 미팅을 위해 거금 주고 구매한 PRADA 화이트 셔츠가 발단이 됐다. 굉장히 흡족한 소비였다고 자부한다. 한 번 사니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기본 템인데다가, 어떤 아이템이랑 매치하느냐에 따라, 포멀한 룩부터 캐주얼룩까지 무궁무진한 스타일 표현이 가능했다. 액세서리를 어떻게 더해주느냐에 따라서도 완전히 다른 무드를 연출할 수 있고 말이다.

철저히 가성비를 따지는 에디터에게 어떤 룩에 매치해도 실패할 확률이 낮다는 건 아주 큰 매력이었다. 게다가 밝은색 덕분에 얼굴도 화사해 보이는 건 덤이었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의 트렌드인 긱시크, 프레피, 올드머니의 중심에 있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이렇게 셔츠야말로 진정 사계절 내내 입을 기본 템이면서도 트렌디한 옷의 대명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옛날 옛적엔, 속옷이었죠


Q: 이런 셔츠, 언제 만들어졌을까?

A: 원래 화이트 셔츠는 지금과는 달랐다. 애초에 상반신용 속옷이었다고 한다. 그 기원을 논하자면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가야 한다. 당시 로마 남성들은 천으로 만든(Tunic: 헐렁한 소매가 달린 무릎길이의 의복)을 두 겹 입고, 그 위에 다시 품이 넉넉한 토가(Toga: 우아하게 주름 잡은 겉옷) 입었다고 전해지는데.. 바로 이 튜닉이 지금 화이트 셔츠의 시초인 셈이다.


©wikipedia.org

안에 입은 화이트 튜닉을 주목.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된 셔츠의 여정.

13세기에 셔츠의 손목과 목, 엉덩이 부분이 일부 드러나도록 디자인이 재단되고, 15세기에 이르러 깃과 소맷부리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 부분이 쉽게 더러워진다는 단점이 있었으니.. 그래서 한 세기 후에는 세탁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깃과 소맷부리만을 탈부착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수정했고, 이후에는 세탁법이 발달하면서 지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형태의 셔츠로 바뀌었다고 한다.



©etnashirts.com


세탁을 자주 해줘야 하는 흰색의 속성 때문에 화이트 셔츠는 신사의 상징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이 특성은 향유 계층을 나누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는데.. 화이트 셔츠는 앉아서 일을 하는 사무직 종사자들이 주로 입었고, 반면 쉽게 때를 타지 않는 짙은 컬러의 셔츠는 야외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직업으로 경제 계층을 일컫는 말인 ‘화이트 칼라(White Collar)’와 ‘블루 칼라(Blue Collar)’라는 단어도 여기서 탄생한 것이다.


이후 시대가 흐르면서 화이트 셔츠는 점차 대중화되었고, 그 위에 더 씌워진 계층적 의미는 점차 희미해졌다. 이제 화이트 셔츠는 어엿한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자 ‘스타일’이다.




화이트 셔츠는 모두의 것


지금까지만 보면 화이트 셔츠가 남성만의 아이템이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답은 NO다.

정확히는 1920년대, 디자이너 코코 샤넬(Coco Chanel)를 필두로 한 디자이너들은 여성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당시 공고하던 성별과 계층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스커트의 자리에 바지를 두고, 코르셋을 남성용 셔츠로 바꾸는 식으로 말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화이트 셔츠도 여성복의 영역에 유입되었다고 한다.


©fashionistastales.com, ©vogue.fr

코코 샤넬, CHANEL 1987 FW Haute Couture



특히 1940년대 이후에 화이트 셔츠는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당대 핫한 스타들이 멋스럽게 입고 남긴 사진들은 여전히 아이코닉하게 남아 있다.


©instyle.com

‘매니쉬 룩’으로 유명했던 캐서린 햅번(Katharine Hepburn), 1950년대 후반
에바 가드너(Ava Gardner), 1960, 마돈나(Madonna), 1978



영화 펄프 픽션(Pulp Fiction)을 본 적은 없어도, 이 장면은 익숙할 것.



©dazeddigital.com

영화 속 화이트 셔츠를 입고 등장한 우마 서먼(Uma Thurman).

©pinterest.co.kr

1900년대 ‘아이비리그 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이었던 화이트 셔츠.




패션이 사랑하는 화이트 셔츠


화이트 셔츠가 대중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전격 부상한 시기, 1990년대와 2000년대다.

당시 심플함을 기조로 하는 미니멀리즘 덕분에 Calvin Klein과 DKNY 컬렉션에서 화이트 셔츠를 선보였고, 후에 JIL SANDER, HELMUT LANG 그리고 피비 파일로(Phoebe Philo)가 OLD CÉLINE의 핵심 아이템으로 등장케 했으니.


©vogue.com

DKNY 2023 FW, Calvin Klein 1996 SS

©vogue.com, ©archived.co

HELMUT LANG 1998 SS, DIOR HOMME 2002 SS

©vogue.com, ©fashionartisan.com

CÉLINE 2012 SS, Maison Martin Margiela 2011 SS





런웨이에서 스타일링 영감 얻기


화이트 셔츠라고 해서 다 같은 화이트 셔츠가 아니다. 심플한 옥스퍼드 셔츠여도 재질, 카라, 단추 등의 디테일 차이로 옷의 분위기나 퀄리티가 확 달라지니까. 심플할수록 섬세한 스타일링이 요구되니, 런웨이에 등장한 스타일링에서 영감을 얻어보자.



대충 걸쳐도 멋스러운, 오버 사이즈 셔츠


담백하고도 낙낙한 화이트 셔츠, 그 어디에도 어울리는 아이템이다. 루즈한 팬츠나 쇼츠, 그 어떤 것이든 좋다. 여름에 운동을 열심히 했다면 휴양지에서 Ludovic de Saint Sernin처럼 다 풀어 헤치고 다니는 것도 좋겠다. 다만 이 글을 읽는 시기가 간절기를 지나는 중이라면 VALENTINO의 손등을 덮는 넉넉한 품의 셔츠에 윗 단추 몇개만 풀어줘도 보온과 동시에 자연스러운 멋을 낼 수 있을 것.


©vogue.com

Ludovic de Saint Sernin 2023 SS, VALENTINO 2023 SS

©hypebeast.com, ©complex.com

sacai 2023 SS, COS 2024 SS




데님엔 역시 화이트 셔츠


늘 그랬듯 화이트 셔츠와 데님은 늘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 아니던가. 외출 시간은 다가오는 데 하의가 고민이라면 데님을 입도록 하자. 데일리 룩으로 이만한 스타일이 없으니까. 이때 거울 앞에서 어딘가 허전하고 밋밋하게 느껴진다면 얇은 가죽 벨트로 시크한 포인트를 주는 것도 좋겠다.


©vogue.com

Stella McCartney 2024 SS, coperni 2024 SS

©hypebeast.com, ©luxferity.com

VALENTINO 2024 SS, RICHERT BEIL 2024 SS




긴 기장이 주는 우아함, 셔츠 드레스


상의와 하의가 한 벌로 해결되는 화이트 셔츠 드레스. 긴 기장 덕분에 풍기는 자연스러운 품위와 우아함이 있다. Peter Do의 스타일링에서 하나의 스타일링 팁을 얻을 수 있다.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섬세하게 걷어올리는 것. 어쩐지 프로페셔널 해보이는 인상을 줄 수 있다.



©vogue.com

Peter Do 2024 SS, HELMUT LANG 2024 SS

©vogue.com

FENDI 2024 SS, COS 2024 SS




레이어링 할수록 매력은 덤


순백의 화이트 셔츠 위엔 뭘 올리든 자유다.

넥타리, 길게 늘어뜨린 스트링 탑, 혹은 시크한 무드의 블랙 뷔스티에. 이 탁월한 스타일링을 선보인 OTTOLINGER와 ANN DEMEULEMEESTER을 보라. 페미닌한 무드가 부담스럽다면, 셔츠보다 조금 짧은 기장의 워크 재킷이나 스웨터를 위에 레이어드 해주면 좀 더 가볍게 입기 편안한 무드를 연출할 수 있을 것.


©vogue.com

OTTOLINGER 2024 FW, ANN DEMEULEMEESTER 2024 SS

©vogue.com

KENZO 2024 SS, Willy Chavarria 2024 SS





눈이 즐거운 화이트 셔츠의 무한 변주


패션의 재미란 기존의 아이템에 디자이너만의 감각이 녹아든 디테일이 더해졌을 때다. 그리하여 새롭게 탄생한 화이트 셔츠의 흥미로운 변주들.


©instagram.com, ©rtieej.buzz

YOHJI YAMAMOTO ‘Many Buttons’ Shirts, JUNYA WATANABE MAN COMME des GARCONS Shirts

©pinterest.co.kr, ©vogue.com

YOHJI YAMAMOTO 2014 SS, HELMUT LANG 2003 SS Harness Shirts

©andredoval.com, ©pinterest.co.kr

HELMUT LANG, Maison Martin Margiela 2013 FW Fall

©pinterest.co.kr, ©google.com

Maison Martin Margiela



화이트 셔츠의 대가로 불린 디자이너, 지안프랑코 페레(Gianfranco Ferre).

인간의 몸을 건축물로 생각하고 옷을 그 위에 쌓아 올린 그는 “화이트 셔츠는 가볍고 유연하며, 꾸밈없이 소박하며, 호화롭게 전신을 휘감기도 하고, 타이트하게 몸을 조이도 한다. 화이트 셔츠는 인간의 얼굴을 만들고 제2의 피부로 몸을 조각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토록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혁신적인 화이트 셔츠의 매력. 어찌 예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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