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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Jun 03. 2024

나만 알기엔 너무 미안한 아티스트 7인

Culture: Rising Artists


Culture: Rising Artists
나만 알기엔 너무 미안한 아티스트 7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온갖 장르의 덕질을 해봤지만 아티스트 덕질만큼 재미난 게 없다. 그들과 나의 만남은 정말 운명처럼 시작되는데, 우연히 인스타 피드에 올라온 작품을 발견하면 곧장 폰과 내 마음속에 저장한 뒤 작가의 정보를 서칭해 따로 메모해 두는 게 출발이다. 또는 아트페어와 같은 대규모 전시에서 불현듯 마주칠 때도 있다. 이렇게 보니 배우나 뮤지션의 덕질이랑 별 다를 게 없다. 인스타 팔로우는 기본, 소속된 갤러리와 함께 활동하는 작가들까지 숙지해 두고, 전시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만약 해외 아티스트라면 혹여나 내한을 해줄까 기대하며, 어쩌다 신작이 나오면 그에 대한 인터뷰라도 있을까 열심히 유튜브를 뒤져보니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좋은 걸 나만 알기엔 너무나도 아깝다. 그래서 준비했다. 나의 마음을 앗아가 버린 아티스트 7인의 이야기를. 사실 선정 기준은 오로지 내 취향이지만, 독자들의 다양한 취향도 겨냥해 최대한 여러 장르를 다루어 보았다. 자, 지금부터 등장하는 이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잘 기억해 둘 것.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접속을 위한 접촉

비비안 그레벤 (Vivian Greven, 1985, 독일)


작년 프리즈(Frieze) 서울에서 단숨에 반해버린 그림 한 점이 있었다. 나는 홀린 듯 그 앞으로 다가갔고 한참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즉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열심히 벌어서 반드시 저 작품을 사고 말 테다. 그리고 혹여나 잊을까 서둘러 작가의 이름을 적어 두었다. 비비안 그레벤.

그녀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접촉이다. 표정과 대화 없이도, 오직 잔잔한 진동과 감촉 만으로 서로를 느끼는 귀중한 순간들이 그림 속에 출현한다. 한 몸과 다른 몸의 만남. 나아가 몸들과 함께 호흡하는 배경. 이 모든 것들을 친절히 품어내는 프레임 속, 허락된 공간. 그곳엔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사소한 감각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Lamia, 2017
)( XI, 2022, Crac IV, 2022


All, 2022 ©viviangreven.de




스스로를 구원하라

이재헌 (1976, 한국)


이재헌의 인물들은 기이하다. 하나의 몸에 여러 얼굴이 중첩되어 있는데다 이목구비 마저 흐릿하게 지워진 채다. 오직 한 사람에게 집중해 공들여 그려낸 흔한 초상과는 전혀 다르다. 모든 정보가 불확실하다. 때문에 그림을 마주한 관객은 그 어떤 판단도 섣불리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불확실함은 프레임 속 인물에겐 오히려 자유의 신호다. 나이나 국적 따위는 물론 얼굴 표정만으로 타인에게 일방적 해석을 당할 염려도 없다. 그렇게 불안과 우울 속에서 길을 잃은 자아는 분열로써 스스로를 구원한다. 자신을 지워냄과 동시에 고독도 함께 지워내며. 하나이면서 셋, 혹은 셋이면서 하나가 되는 방식으로. 이거 참, 꽤나 매력적인 도피가 아닌가.



꽃밭 속의 형상(Figure in a garden), 2021-2023
꽃밭 속의 형상 (figure in a garden), 2021-2022, 꽃밭 속의 형상 (figure in a garden), 2021
셋이면서 하나 (three in one), 2023 이재헌 인스타그램 ©@white.castle.motel




순수를 향한 애도

마티야 보비치치 (Matija Bobičić, 1987, 슬로베니아)



얼핏 보면 마치 아이가 그린 것만 같은 마티야의 작품. 그는 영감의 대부분을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 찾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작품에서도 90년대를 주름잡던 대중문화 아이콘들이 자주 목격된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닥치는 성장의 과정 속에서, 그에 수반되는 수많은 변화 속에서, 나아가 예측불가한 현대 사회의 불안정한 기류 속에서, 어린 시절의 순수함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장렬히 전사한다. 어느새 어엿한 어른이 된 작가는 박제된 추억의 잔상을 훑으며, 몰라보게 변한 세상과 그곳에 머무는 인간의 불안을, 이 모든 게 뒤섞여 한몸이 되어버린 돌연변이같은 현실을, 그저 묵묵히 그려낼 뿐이다.


The Tortouse, the Mouse and the Wolf, 2023
The Cyborg, 2018, Number One, 2021
The Judgement, 2024 마티야 보비치치 인스타그램 ©@bobicicmatija, sim-smith.com




사이키델릭 연금술사

장 마리 아프리우 (Jean - Marie Appriou, 1986, 프랑스)


고대 연금술사들의 목표가 새로운 물질이었다면, 이 시대의 연금술사인 아프리우의 목표는 새로운 세계다. 신화와 전설, 공룡, 미래 문명과 우주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머릿속에 저장된 온갖 스토리와 정보들을 꺼내 재료로 삼는다. 그리고 그렇게 상상된 세계를 오브제로 거침없이 표현한다. 서로 접점하나 없어 보이던 이야기들은 그의 손 끝에서 무사히 결합되고 재현된다. 알루미늄과 청동, 유리, 점토 등 저마다 다른 특성의 물질들을 놀라운 기술로 다뤄내는 것 역시 그의 연금술사적 면모를 드러내는 지점.


Horizons, 2023
Mitosis (cellular being), 2023, The Trip (Mist), 2020
아푸리우의 스튜디오 전경 ©artflyer.net, ©artviewer.org, ©perrotin.com




그날의 분위기

김은정 (1986, 한국)


그리움의 목적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의 그리움은 어떤 대상이나 행위 자체를 원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 대상과 일구었던 어느 순간, 그 당시의 분위기를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음악을 들어도 결코 재현될 수 없을, 그날의 분위기를 말이다. 김은정의 작품에는 이런 분위기가 스며있다. 너무나 사소해 일기에도 적지 않을 보잘것없는 일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돌아가고 싶은, 힘껏 뛰어들고 싶은, 순간들이.



무제, 2022
산책, 2018, 방과 후, 2018
여기 있어, 2022 ©hakgojae.com




장인의 기술로 장난치기

타쿠로 쿠와타 (Takuro Kuwata, 1980, 일본)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장인의 기술이 현대적 미감을 만나면? 쿠와타의 작품을 보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오늘날 일본 미술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예가로 손꼽히는 그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공예 기법들을 모조리 섭렵한 뒤, 오히려 이를 적용해 전통적 형태를 과감히 전복시켜 버린다. 세상에, 이런 도자기는 그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그의 발칙한 상상력과 든든한 손 끝, 또한 물불 안가리는 실행력이 너무나 부러울 따름.


타쿠로 쿠와타 X LOEWE 2020 FW ©surfacemag.com, ©takurokuwata.com




나만 없어 고양이

정나온 (한국)



고양이 나만 없어. 슬프다. 하지만 괜찮다. 정나온의 그림을 보면 된다. 현생의 고양이는 집을 어지르고, 집사의 몸에 스크래치를 내고, 털뭉치를 쏟아내고, 이유 없이 방 안을 후다닥 질주하며 혼을 쏙 빼놓고, 가끔 졸졸 따라다니며 시끄럽게 잔소리를 해대지만 정나온의 고양이는 다르다. 새침한 표정으로 오직 나만을 바라봐준다. 뿐만 아니다.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방문하면 고양이는 기본 옵션, 이 세상의 귀여움을 찐하게 농축시켜 놓은 것들이 한가득이다. 두고봐라. 세상을 구하는 건 결국 귀여움이 될 것이다.



©정나온 인스타그램 @naon_on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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