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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Jun 17. 2024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가 패션이 되는 법

Stories: Luca Guadagnino

Luca Guadagnino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가 패션이 되는 법





카메라 속에 담긴 인물들의 서사는 옷과 함께 존재한다.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에 대하여.



영화 <챌린저스(Challengers)>가 말아주는 스포티룩


올해 가장 스타일리시한 영화를 꼽으라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챌린저스>를 꼽겠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LOEW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 젠데이아(Zendaya) 그리고 테니스. 이 환상적인 만남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조나단 앤더슨과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jonathan.anderson


아, 테니스는 이용당했구나. 이 영화를 보고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17년 잡지 Fantastic Man과의 인터뷰에서 루카 감독은 말한다. “내가 아주 잘 아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게이든, 이성애자든, 어떤 관계에서든 그사이에 흐르는 에로틱한 텐션이다”

<챌린저스>는 테니스라는 집요한 긴장감을 요구하는 스포츠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말하려는 건 인간의 욕망이다. 그의 영화 기저에는 늘 사랑 같은 강렬한 감정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에너지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어찌 됐든, 루카 감독이 테니스라는 소재를 택한 덕분에 우리는 <챌린저스>에서 풍요로운 스포티룩의 향연을 즐길 수 있게 된 셈이다.

LOEWE 2023 SS 캠페인에 등장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LOEWE 2023 SS 쇼 피날레에 ‘챌린저스’라고 적힌 긴팔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 조나단 ©lvmh.com, ©



루카 감독은 <챌린저스>의 의상 디자이너로 조나단 앤더슨을 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나단은 패션과 인간의 행동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에 대한 타고난 이해를 하고 있다.” 최근 토마토 밈을 실제 클러치 백으로 탄생시켰듯, 그간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럭셔리 웨어를 창조해 온 조나단의 작업을 떠올려 보면, 루카와 조나단은 납득할 수밖에 없는 조합이라는 말에 끄덕이게 될 것.



옷을 보면 캐릭터가 보인다


“사람들이 이걸 코스튬 디자인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거라는 게 좋았다. 이건 그냥 일상복이다. 테니스 경기의 세계에 들어가 있을 뿐”
-W 매거진 인터뷰에서 조나단 앤더슨



조나단 앤더슨이 그린 <챌린저스> 의상 스케치 ©wwd.com


그의 말처럼 <챌린저스> 속 의상은 일상적인 기본 아이템이 주를 이룬다. 티셔츠, 폴로 셔츠, 스웻 후드 집업, 파자마, 대학 스웨터 등. 누구나 옷장에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심플한 옷들이니까. 하지만 스타일링, 실루엣, 소재나 액세서리와 같은 디테일로 한 끗 차이가 난다. 특별한 프린트도 없는 흔한 회색 티셔츠조차도 무언가 달라 보이게 만드는 조나단의 능력은 재능이란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wmagazine.com


무엇보다 <챌린저스>에서 눈에 띄는 아이템은 ‘I TOLD YA(내가 말했지)’라고 프린트된 레터링 티셔츠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입고 등장하는 이 티셔츠는 90년대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의 아들이 입었던 옷에서 영감받은 것이라고 한다. 조나단 앤더슨은 LOEWE 화보와 영상으로 이를 그대로 재현해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 티셔츠를 입고 나오는 패트릭 역의 조쉬 오코너(Josh O’Connor)는 실제로 조나단과 절친한 사이로 LOEWE의 글로벌 앰배서더이기도 하다.

90년대 존 F. 케네디 아들에게서 영감받아 디자인된 ‘I TOLD YA(내가 말했지)’ 티셔츠 ©@jonathan.anderson, ©theimpression.com



최고급 선수들은 스포츠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고, 광고 캠페인을 통해 사랑받는다. 극 중 타시 덩컨 역의 젠데이아는 ADIDAS의 모델로, 그녀의 얼굴이 박힌 광고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녀가 촉망받는 테니스 선수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femestella.com



또 하나의 인상적인 착장이 있다면, 젠데이아가 입은 로열 블루 자카드 미니 드레스이다. 광택이 도는 푸른빛 드레스는 LOEWE 2020 FW 컬렉션에서 영감받은 것으로, 앞길이 창창해 보이는 그녀의 댄스와 어우러져 캐릭터의 매력을 더해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giphy.com


©machonnes.tumblr.com



인생이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 법이다. 후에 젠데이아는 선수 생활을 접고 코치로서 남편 아트 역의 마이크 파이스트(Mike Faist)를 전담하게 된다. 이때의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는 그녀의 스타일링은 LOEWE 드레스 셔츠, CHANEL 에스파드리유 슈즈 그리고 Cartier의 골드 주얼리다. 이 우아한 비즈니스 룩이 연출하는 각 잡힌 모습에서 남편에 대한 통제 욕구가 읽히기도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서사에서 두 남자의 옷차림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들이 젠데이아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다. 젠데이아를 위해 테니스를 치는 순종적인 남편인 아트는 지금은 슬럼프를 겪고 있지만 분명 에이스 선수였고, 여전히 그렇다. 그가 입고 있는 테니스복에 UNIQLO의 스폰서 로고가 붙어 있는 것이 그 사실을 알려준다. 실제로 테니스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이 장면에서 ‘테니스 황제’라고 불리는 선수인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선수를 떠올렸을 것. 그 또한 UNIQLO의 스폰서 옷을 입고 경기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UNIQLO 스폰서 테니스복을 착용한 마이크 파이스트와 자신의 운동복을 착용한 조쉬 오코너 ©giphy.com


‘테니스 황제’라고 불리는 로저 페더러 선수 ©vogue.com


반면 여전히 아마추어로 남은 마이크 역의 조쉬 오코너의 옷은 어떤가. 솔직히 집에 있는 운동복 아무거나 입고 나왔다 해도 무리가 없을 차림이다. 당연히 스폰서도 없다. 하지만 그가 가진 날것의 도전적인 태도는 남편인 아트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그 점이 젠데이아를 사로잡는다. 이처럼 감독은 옷으로 두 인물의 차이를 드러낸다.



패션으로 영상을 장악하라


루카 감독이 패션 디자이너와 작업한 건 <챌린저스>가 처음이 아니다. 그가 처음 영화계에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영화 <아이 엠 러브(I Am Love)>에서는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이 라프 시몬스(Raf Simons)의 JIL SANDER를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라프 시몬스의 JIL SANDER를 입은 <아이 엠 러브>의 틸다 스윈튼, 영화 프로모션 행사에 함께 참여한 라프와 틸다, 2011 ©@eljosecriales, ©wwd.com



이탈리아 태생의 감독답게 그는 주로 이탈리아 상류층, 중산층의 금기적 사랑을 특유의 우아하고 낭만적인 영상미로 구현해 내왔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루카의 주 무대는 유럽이었다. <챌린저스>는 예외적으로 미국에서 더욱 캐주얼한 옷을 보여줬지만 말이다. 영화 <비거 스플래쉬(A Bigger Splash)>,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서스페리아(Suspiria)> 그리고 드라마 <위 아 후 위 아(We Are Who We Are)> 이 모든 작품에서 유럽을 무대로 한 루카의 세련된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비거 스플래쉬>에서 라프 시몬스의 Dior을 입은 틸다 스윈튼 ©vogue.com



사실 에디터에게 패션으로 가장 강렬하게 기억된 루카 감독의 작품은 드라마 <위 아 후 위 아>다. 패션은 개인의 개성이 발현될 때가 가장 흥미롭다고 믿는데, 이 드라마 속 캐릭터인 프레이저 역의 잭 딜런 글레이저(Jack Dylan Grazer)의 경우가 그렇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인 그의 캐릭터가 옷에서 너무 잘 드러난다.


RAF SIMONS 티셔츠를 입은 잭 딜런 글레이저, Bernhard Willhelm 베스트를 HENRIK VIBSKOV 셔츠 위에 입은 모습. ©showstudio.com



특히 잭 딜런 글레이저가 처음 RAF SIMONS 2013 SS 티셔츠를 입고 나온 장면을 잊지 못한다. 티셔츠에 그려진 여성의 공허한 눈빛에 이끌린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하여간 그날은 인터넷을 하루 종일 뒤졌다. 안타깝게도 이미 나온 지 꽤 된 시즌이라 다 팔리고 없거나 가격이 오를 대로 올라 구매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캐릭터 자체가 가진 패션에 대한 깊은 관심이다. 극 중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를 언급하고,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를 아냐며 뎀나는 VETEMENTS의 수석 디자이너였는데 지금은 BALENCIAGA의 디자이너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또래들과는 쉬이 어울리지 못하는 그의 남다름은 Bernhard Willhelm, HENRIK VIBSKOV, COMME des GARCONS, SAINT LAURENT, VETEMENTS을 선택하는 취향과 만나 유니크해진다.


영화 <챌린저스> 출연진과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challengersmovie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올해로 53세다. 나이는 그저 숫자라지만, 루카처럼 세련된 미적 감각을 가지기란 나이를 불문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캐릭터, 패션, 음악, 스토리 이 모든 걸 적재적소로 조합해 하나의 예술로 완성해 내는 그의 능력은 매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니 내로라하는 패션 디자이너들도 루카 감독의 작품에 함께하는 것일 터.

다음 작품 영화 <퀴어(Queer)>에서도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과의 협업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힌 루카 감독. 그동안 미처 아직 보지 않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작품이 있다면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그의 작품 속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입은 옷을 보는 것만으로 우리의 삶에서 패션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테니!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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