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Food & fashion
입고 보고 맛보고 즐기고
자, 이제 가장 궁금한 사실만이 남았다. 영감도 콜라보도 아닌 진짜 ‘먹을 수 있는 옷’은 없는 걸까? 훗, 그럴 리가.
세계 3대 패션 스쿨 중 하나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고, Maison Margiela의 인턴을 거친 디자이너 Leeann Huang의 2019 SS 컬렉션의 의상들은 놀랍게도 먹을 수 있다. 실제 젤리와 초콜릿으로 만든 니트, 새우 크래커를 사용하여 만든 윤기나는 액세서리, 오렌지로 장식된 구슬 팬츠 등 몽땅, 전부, 다 섭취가 가능하다. 그녀는 DAZED와의 인터뷰에서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걱정되지만, 솔직히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면 왜 안 됩니까? 라며 되묻는다.
상상만 해도 쉽지 않아 보이는 이 여정은 예상만큼 험난했다. 그녀는 어릴 적 꿈인 요리사를 뒤로하고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지만, 식용 옷을 만들기 위해 여러 전문 기술들을 연마해야만 했다. 니트 하나를 만들기 위해 매일 케이크 가게에 출근 도장을 찍었고, 바지에 장식된 오렌지 청도 직접 담가야만 했으니. 또한 일 년 내내 파리의 시장을 관찰하며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수집했다고 한다. 역시,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다. 그것이 흔치 않은 일이라면 더더욱.
최근 국내에도 하나둘씩 론칭되기 시작한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미식 공간. 브랜드의 개성과 정체성을 한껏 살린 인테리어와 푸드 스타일링, 끝내주는 맛까지 보장된 매력적인 공간들을 살펴보자.
국내에서만 총 세 번의 팝업 레스토랑을 오픈한 Louis Vuitton. 첫 팝업은 한국계 프랑스인 셰프 피에르 상 보이에(Pierre Sang Boyer)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는데, 세간의 관심만큼이나 손님들의 극적인 찬사를 받았다. 이후 자연주의 요리의 대가 알랭 파사르(Alain Passard)가 이끈 두 번째 팝업 역시 전 시간대 전 좌석 매진을 기록하며 미식가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과거 육류와의 결별을 선언하며 채식 위주의 식단을 추구하던 그는, 이 협업에서도 특기인 채식 요리 위주로 메뉴를 구성했다.
올해 5월 4일에 오픈한 이코이(Ikoyi) AT Louis Vuitton은 런던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인 이코이와 함께 하는 Louis Vuitton의 세 번째 팝업이다. 앞선 두 번의 성공으로 확신에 확신을 더한, 브랜드의 야심 찬 기획이 돋보인다. 총괄 셰프인 제레미 찬(Jeremy Chan)은 ‘문화 간의 만남’이 담긴 요리를 주제로 한 메뉴 구성에 남다른 심혈을 기울였다고. 후기를 살펴보면, 맛에선 호불호가 심한 듯하나 분위기 하나만큼은 환상적이었다고 하니 특별한 날 찾기에는 이만한 장소도 없을 듯. 물론 예약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이탈리아, 미국, 그리고 일본. 전 세계 단 세 곳뿐이었던 GUCCI의 레스토랑, GUCCI 오스테리아. 최근 이태원 GUCCI 가옥 6층에 네 번째 둥지를 틀었다. 오픈 2주 전에 실시한 사전 예약이 단 4분 만에 마감되면서, 국내에서의 GUCCI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피부로 와닿는 계기가 되기도.
GUCCI의 고유 색상인 초록과 갈색이 어우러진 실내 인테리어와 커트러리부터 매장 내 비치된 사소한 소품까지 모두 GUCCI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이템으로 꾸며져 있어, 들어서는 순간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후문이다. 또한 친숙한 이탈리아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화 메뉴까지 만나볼 수 있어 고객들의 기대감은 수직 상승 중.
본격적인 식사가 조금 부담스럽다면, 간단한 음료와 디저트로도 럭셔리 브랜드의 향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Dior과 Maison Kitsune는 스토어 내에 카페 공간을 독립적으로 설계하여 매장을 찾은 손님들의 하루를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전문 바리스타와 파티셰를 고용하여 여느 유명 카페 못지않은 퀄리티는 물론 환상적인 인테리어로 시선까지 사로잡았다. 쇼핑은 물론 혀끝까지 만족스러운 장소이기에 한두 시간 웨이팅쯤은 거뜬하다는 후기.
JIMMY CHOO, BVLGARI 역시 작년 서울과 제주에 각각 팝업 카페를 열어 많은 고객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매장 내부부터 그릇, 티슈까지 온통 핑크로 가득했던 JIMMY CHOO의 Choo Cafe는 오픈 기간 내내 인스타 피드를 점령했을 만큼 핫한 장소였다. 사진만으로도 딸기향이 솔솔 느껴질 정도의 강렬한 핑크빛 인테리어가 정말 인상적.
아직 국내에선 만나볼 수 없지만, 주얼리 브랜드 TIFFANY & CO.와 Ralph Lauren도 카페와 바를 오픈하여 고객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TIFFANY & CO.의 핵심 컬러 ‘티파니 블루’로 가득한 블루 박스 카페는 주얼리 매장 특유의 엄숙한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한 색다른 접근이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워서 이젠 지역의 명소라는 칭호까지 부여받았을 정도. 뉴욕 본점 같은 경우는 한 달 전에 예약해야 겨우 입장할 수 있다고 하니 혹시 여행 계획이 있다면 미리 일정을 조율해야만 방문이 가능할 듯.
아메리칸 럭셔리를 표방하는 브랜드의 성격만큼이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Ralph Lauren 바. 다양한 주종과 칵테일은 물론이며 가벼운 스낵을 뛰어넘는 곁들임 요리까지. 제철 체소와 해산물로 구성된 메뉴는 맛과 플레이팅까지 완벽하다. 이에 더해 마치 50년대 갱스터들이 밀회를 나눌 법한 은밀한 분위기, Ralph Lauren 스토어를 떠올리게 하는 원목 인테리어와 컬러감은 다른 바들과 경쟁력을 갖게 하는 중요한 요소. 인파들로 가득한 뉴욕 맨해튼의 중심부에서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내기엔 최적의 장소다.
그렇다면 대체 왜, 럭셔리 브랜드들은 본업을 넘어서면서까지 미식 공간으로의 진출을 꾀하는 것일까?
최근 명품업계 수요층의 나이가 점점 낮아지면서, 새로운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 그들은 SNS을 통해 맛집의 정보를 활발히 공유하고, 먹기 위해 긴 시간을 기꺼이 대기하고, 생소한 음식에 서슴없이 도전하며, 나아가 고가의 오마카세까지 즐긴다. 다시 말해 요즘 세대에게 식(食)은 생존이나 소비를 넘어선 귀중한 ‘경험’을 획득하기 위한 행위라는 것. 따라서 식문화를 통한 럭셔리 브랜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또한 이는 다양한 이유로 멀어지는 고객의 마음을 되돌릴만한 좋은 방책이기도 하다. 생산 개수의 제한 때문에 원하던 상품을 놓쳐 상심한 손님, 본인의 취향과는 맞지 않아 구매욕을 상실해버린 손님들이 맛있는 음식과 함께 마음을 달래며 브랜드와의 종속감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패션을 느끼는 미감(美感)과 음식을 즐기는 미감(味感), 담당하는 감각의 이름마저 같은 둘. 이건 분명 소울메이트라는 하늘의 계시다. 앞으로도 계속될 그들의 영원한 축제를 위해, 건배!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