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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고 보고 맛보고 즐기고 1편


Stories: Food & fashion

입고 보고 맛보고 즐기고


패션과 음식, 다른 듯 닮은 두 분야가 빚어내는 완벽한 연대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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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감(美感)과 미감(味感)



패션과 음식의 관계는 미스터리하다. 이 둘은 꽤 오랜 기간 동안 마치 서로를 배척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섭식 장애로 고생하는 모델들의 위태로운 삶이 조망되었을 시기엔 더욱 그랬다. 이상적인 핏을 소화하기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포기해야 하는 삶. 이는 하나를 얻기 위해선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기회비용이 가장 잔인하게 적용된 사례였으니.


하지만 2010년, 프랑스의 한 모델이 거식증으로 인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면서 패션계는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기로 다짐한다. 타협이나 개선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아예 관련 법규를 제정하여 엄중히 단속하기로 작정한 것. 그 어떤 취향도, 미감도, 이상도 결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순 없으니 말이다.

1.jpg ⓒtheguardian.com



사실 전혀 다른 듯 보이는 이 두 분야는 오히려 공통점으로 가득하다. 우선 둘 다 삶의 기본 조건인 의식주의 영역을 관장하고 있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생존에 문제가 생긴다. 또한 유행과 계절에 민감하다. 해마다 달라지는 트렌드와 제철 음식을 파악하는데 우리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계절이 변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옷장 정리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날씨와 어울리는 음식이니까.


그리고 마침내, 패션 산업은 음식 업계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여러 럭셔리 브랜드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투영한 식문화 공간들을 차례로 론칭하기 시작했으며, 나아가 저명한 푸드 비즈니스 기업들과 협업을 진행했다. 이는 위압감과 선입견으로 가득한 패션계에 친근한 이미지를 선사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맛도 좋고 보기도 좋은 음식과 공간을 통해 한층 더 고객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영리한 비책인 셈.

2.jpg Dolce & Gabbana 2012 SS ⓒvogue.com, 작년 7월, 파르나스 제주에서 열렸던 BVLGARI의 팝업 카페 ⓒjejuweekly.net



입고 보고 맛보고 즐기고



음식은 패션에게 그 무엇보다 달콤한 영감이다. 서로에게 흠뻑 취한 둘의 운명 같은 만남. 그 안에서 탄생한 주옥같은 작품들을 감상해보자.




먹지 마세요 패션에게 양보하세요



화려하고 웅장한 무늬도 좋지만, 때론 먹음직스러운 무늬도 대환영! 우리들의 눈과 침샘을 동시에 자극할 맛있는 무늬들이 나타났다.


귀여운 체리로 가득한 Carolina Herrera의 2023년 리조트 컬렉션과 매번 독특한 시도로 주목받아온 Collina Strada가 올해 봄 시즌 선보인 브로콜리 백은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하고 신선하다.

3.jpg Carolina Herrera, Collina Strada ⓒdazeddigital.com



상큼한 레몬과 오렌지를 선택한 BOTTEGA VENETA와 Stella McCartney. 마치 온몸에서 새콤달콤한 시트러스 향이 풍길 것만 같은 모습이다.

4.jpg BOTTEGA VENETA 2022 FW, Stella McCartney 2011 SS ⓒvogue.com



2011년의 PRADA와 2004년 피비 파일로(Phoebe Philo)의 Chloe는 바나나로 가득한 착장을 런웨이에 등장시켰다. 항상 우스꽝스러운 소재로만 쓰였던 바나나가 이토록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당시 미국 VOGUE의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Anna Wintour)가 이 바나나 룩을 입고 등장해 더욱 화제가 되었다. 언제나 유행을 선도하는 그녀 덕분에 그 해 파티장은 온통 바나나 천국이 되었다는 후문.

5.jpg PRADA 2011 SS, Chloe 2004 SS ⓒ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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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과 시크함의 대명사인 CHANEL도 2014년, 위트 있는 도전을 결심했다. 바로 거대한 슈퍼마켓을 컬렉션의 주제로 채택했던 것. 직접 제작한 세트장의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500개가 넘는 기성 제품이 CHANEL의 로고로 리라벨링되었으며, 모델들은 고급스러운 체인으로 장식된 철제 장바구니를 손에 들고 진열대 사이를 여유롭게 거닐었다.

7.jpg ⓒnbcnews.com, ⓒvogue.com



이 스펙터클한 쇼는 소비주의에 대한 CHANEL만의 패셔너블한 풍자로 해석된다. 특히 가지런히 정리된 총천연색으로 가득한 슈퍼 안의 풍경은 사진가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의 1999년 작 99센트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역시 소비사회 속에 압도당한 인간의 위치를 시사하는 작품으로, 런웨이의 주제와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8.jpg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99센트 ⓒartsy.net



호기심 두 배, 포만감도 두 배!



멋진 요리의 기본은 재료의 궁합이다. 자신의 강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잘 어우러지는 패션과 음식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신선한 시도들을 소개한다.

9.jpg ⓒhypebeast.com



미국의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점 맥도날드(McDonald's). 현재 BALENCIAGA의 디렉터로 활동 중인 뎀나 바질리아(Demna Gvasalia)는 자신의 독립 브랜드 VETEMENTS의 2020년 SS 컬렉션을 바로 이 맥도날드 매장 안에서 개최했다. 이 엄청난 이벤트를 위해 간택 받은 곳은 자신의 고향이었던 조지아 주에 위치한 지점. 가슴엔 자본주의!(Capitalism!)라는 명찰을 단 모델들이 스타일리시하게 재해석된 맥도날드 유니폼을 입고 테이블 사이를 지나는 모습은 정말 획기적이다.

10.jpg ⓒfootwearnews.com



뎀나는 이 발칙한 시도를 통해 패션계와 대중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쇼에 참석한 손님들을 위해 밀크셰이크와 콜라를 제공한 것은 물론이며, 몇몇 모델들은 위킹을 하면서 감자튀김까지 집어먹는 재치만점 연출까지.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었다.

11.jpg ⓒvogue.com



맥도날드의 패션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Moschino의 런웨이는 마치 맥도널드 굿즈 매장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 맥도널드의 키컬러인 빨강과 노랑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을 비롯, 로고까지 비슷하게 변형시킨 제품들로 가득했다.


특히 감자튀김 박스 아이폰 케이스는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던 아이템. 이외에도 버드와이저(Budweiser)와 허쉬 초콜릿(Hershey's) 등 우리에게 친숙한 식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차용한 의상들을 함께 선보여 그 해 컬렉션 중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12.jpg ⓒvogue.com



콜라보의 제왕 Nike와 Supreme 역시 이러한 행보에 빠질 순 없다. 2020년 발매된 Nike와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앤제리스(Ben & Jerry's)의 덩크 로우 ‘Chunky Dunky'는 리셀가 5000불, 한화 약 660만 원의 가치를 자랑하는 초 레어템. 귀여운 얼룩무늬와 꿀을 발라놓은 듯 흐르는 스우시가 찰떡처럼 어울린다.

13.jpg ⓒbenjerry.com, ⓒhighsnobiety.com





같은 해, Supreme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쿠키 브랜드 오레오(OREO)와의 콜라보 제품을 발표했다. 고유의 블랙을 포기하고 Supreme의 레드를 입은 쿠키의 모습.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한 Supreme 팬들은 이 오레오 봉지를 차마 뜯지도 못한 채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맛은 레드벨벳 케이크와 흡사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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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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