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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Jul 31. 2024

이토 준지와 그의 여자들

Stories: Junji Ito Character Clothes

Stories: Junji Ito Character Clothes
이토 준지와 그의 여자들




공포 만화계의 거장 이토 준지(Ito Junji). 이제 그의 영향력은 비단 만화계뿐만이 아닌 문화계 전반을 향해 무섭게 뻗어나가고 있다. 비범한 상상력과 그로테스크한 그림체, 나아가 개성 강한 캐릭터들까지. 그의 작품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장담한다.

자, 그렇다면 패션에서는 어떨까? 지금부터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패션은 물론 작가 본인의 패션까지 함께 탐구해 보도록 하자.




팜므파탈의 아이콘, 토미에


ⓒmedium.com


토미에는 1987년, 잡지 월간 핼러윈에서 개최한 제1회 우메즈 카즈오(표류교실로 널리 알려진 일본 3대 공포 만화가 중 한 명) 상에 투고했던 이토 준지의 데뷔작 <토미에>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가 처음 펜으로 그려 완성한 작품이기에 애정이 각별하다고. 데뷔 30년이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예사롭지 않은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애니화된 토미에의 모습 ⓒcbr.com


토미에의 모델이 이토 준지의 누나라는 썰이 떠돌고 있지만 사실은 이렇다. 그의 중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죽음이란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어린 나이였기에 그 친구가 갑자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순진한 얼굴로 나타날 것 같은 이상한 예감이 들었었다고. 그 때 느꼈던 오묘한 감정을 만화로 표현하고 싶었고, 성별만 바꾸어 실행에 옮긴 것이 바로 토미에다.(grape, 2019.06) 아무리 죽임을 당해도 기어코 어디선가 모습을 드러내는 그녀처럼 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또 있다. 토미에가 등장할 때마다 직접 자신의 입으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 외치고 있기에, 이 말을 지켜주기 위해 다른 여성 캐릭터는 토미에보단 덜 아름답게 그리려 애를 쓴다고. 맘 먹고 아름다운 여성을 그리려 하면 결국 토미에의 형상이 나와버린다고 하니, 앞으로도 그녀를 뛰어넘는 미모를 가진 여성은 나타나지 않을 듯 하다.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토미에 ⓒjunji-ito.fandom.com


수려한 외모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이 분 은근히 패션 센스가 넘친다. 물론 패완얼이라는 불변 진리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 미니멀리즘부터 빈티지 풍의 드레스까지 착장 구성이 탄탄하다. 역시 이토 준지의 미감은 믿고 볼 만하다.


CHANEL 1995 SS, Calvin Klein 1996 SS
Calvin Klein 1997 SS
90’s Ralph Lauren
Sofia Coppola
Alicia Silverstone ⓒjunji-ito.fandom.com, ⓒpinterest, ⓒcbr.com, ⓒvogue.com


이게 다가 아니다. 특별한 장식 없이 신체의 실루엣을 드러내는 심플한 원피스와 강렬한 패턴의 드레스, 발랄한 느낌의 미니 스커트와 아방가르드한 니트웨어까지 무난히 소화해내는 그녀. 아, 정말 뭘 입히던 예쁘다.


ⓒjunji-ito.fandom.com, ⓒpinterest


또한 그녀는 여러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이기도 하다. YOHJI YAMAMOTO는 2019년 토미에의 이미지를 이용한 의상을 제작하였으며, Sanrio에선 올여름 헬로 키티와 토미에의 콜라보라는 신박한 기획을 내놓았으니 말이다. 귀여운 고양이들 사이에 토미에를 다소곳이 앉혀 놓으니 어느새 섬뜩함은 사라지고 청량한 여고생의 모습만 남았다.


YOHJI YAMAMOTO X Ito Junji Sanrio와 토미에의 콜라보 ⓒhypebeast.com, ⓒcomicbook.com


작품 뿐만 아닌 현실에서도, 그녀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토 준지는 토미에의 불멸성이 독자를 사로잡는 주요한 특징이라 예측한다. 자가 증식과 분열, 결합, 때론 술의 원료(?)로 까지 쓰이며 온 동네 사람들을 환락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정도로 극강의 생명력을 가진 그녀니까. 인간의 DNA에 서린 죽음의 공포가 이런 그녀의 끈질긴 생존력에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거만할 정도의 도도함과 남을 위한 배려라고는 1도 없는 괴팍한 성격이지만,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 욕망에 충실하고, 호불호도 확실하게 표현하며 할 말 못 할 말 안 가리고 다 쏟아내는, 그렇게 자신만의 자유를 만끽하는 토미에의 자유분방함이 그녀가 가진 가장 큰 위력이 아닐까 하는.


토미에를 읽고 있는 토미에 ⓒjunji-ito.fandom.com






소용돌이 속의 키리에

ⓒuzumaki.fandom.com


토미에가 팜므파탈의 아이콘이라면, 이토 준지의 또 다른 대표작인 <소용돌이>의 주인공 키리에는 우수에 찬 매력으로 승부한다. 표정 자체에 사연이 그득한 데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위태로운 분위기,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흐르는 외모까지 토미에와는 전혀 다르다. 이토 준지 역시 이런 키리에의 애처로운 면모 때문에 결국 죽이지 못하고 끝까지 살려두는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갔다고 한다.

이런 우아함을 배가 시키는 데엔 스타일도 한몫한다. 화려한 토미에의 패션과 비교하면 수수한 편이지만, 바로 이런 특징이 그녀의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과 맞물려 조화를 이뤄낸다. 심플한 셔츠와 진, 무채색의 스커트와 니트웨어의 궁합으로 노출을 최소화하고 대신 밝은 머리색에 포인트를 주는 식으로 지루함을 벗어낸다. 결국 그 탐스런 머리칼에 소용돌이 저주가 걸려 작품의 중반엔 모두 잘라내 버리고 말지만.


ⓒuzumaki.fandom.com, ⓒpinterest






여기가 바로 교복 맛집


미숙한 자아와 모호한 미스테리의 궁합은 참으로 절묘하다. 능숙하지 않은 대처 때문에 계속 사건에 얽히게 되고, 결국 호기심이 공포심을 삼켜버리기도 하니까. 그래서 공포물엔 유독 청춘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 지점이 이토 준지의 작품이 교복 맛집인 이유다. 앞서 언급한 키리에 역시 마찬가지로 학생 신분이며 이토 준지의 다른 단편에 출현하는 캐릭터들도 대부분 그렇다. 때문에 그의 만화엔 일본 교복의 다양한 스타일이 총출동한다. 계절별 하복과 동복은 물론 리본과 넥카라, 치마 주름과 길이 등 디테일 한 부분까지 섬세히 차이를 두었다. 이처럼 여러 형태의 교복을 감상하는 것 역시 그의 만화 속 쏠쏠한 재미다.


ⓒpinterest





긱 시크의 대표주자, 이토 준지

이토 준지와 그의 반려묘 욘 ⓒhoneysanime.com


이쯤 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의문. 이 마성의 캐릭터들의 창조자인 작가 이토 준지 본인의 패션은 어떨까? 사실 검색하는 내내 웃음만 나왔다. 올해 초부터 트렌드로 떠오른 긱 시크 스타일과 딱 맞아떨어지는 아웃핏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grapeejapan.com, ⓒgq.com.tw, ⓒpinterest

셔츠와 치노 팬츠, 이젠 그와 한 몸이 된 듯한 안경까지. 긱 시크의 공식에 어긋나는 행색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더욱 공포스러운 건 매번 한결같은 스타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가끔 심플한 블레이저 정도를 걸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앗, 이건 확실한 변신이다 할 만한 건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작품 철학만큼이나 굳건한 패션 철학이다. 존경한다.


일본 게임계의 거장 디렉터 코지마 히데오와 이토 준지 ⓒhoneysanime.com, ⓒforadoplastico.com.br, ⓒmedium.com


더 재밌는 것은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의 대부분이 이러한 이토 준지의 패션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용돌이>의 남주인공 슈이치는 마치 작가가 제 발로 컷 속에 뛰어든 것만 같은 모습이다. 짙게 내려온 다크 서클과 우울한 표정,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사소한 제스처들까지 싱크로율 100%.


이토 준지와 똑닮은 슈이치 ⓒuzumaki.fandom.com, ⓒpinterest
가끔 미소년이 등장한다해도 결국 이런 모습… ⓒpinterest


그렇게 따지면 이토 준지의 작품 속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남자 캐릭터는 공포 단편선에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소이치다. 심한 빈혈 때문에 입에는 항상 못을 물고 있고(철분 공급용) 흑마술 매니아에 어설픈 저주를 일삼으며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은근 개그캐다. 비교적 스케일이 큰 다른 작품들에 비해 소이치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일상의 소박함을 느낄 수 있어 정겹다.


ⓒpinterest


근데 이런 소이치, 시즌 최고 유행 아이템인 쇼트 팬츠를 즐겨 입는다? 섹시한 남자는 짧은 반바지를 입는다는 에디터 N의 말처럼 소이치 역시 이런 트렌드를 애진작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일까. 때로는 단순하게, 때로는 과감한 패턴까지 시도하는 걸 보면 그의 패션 센스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을 듯. 어쩌면 그가 꼭 끼고 다니는 저주인형까지 액세서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만!


ⓒjunjiitomanga.fandom.com, ⓒpinterest


이토 준지의 작품엔 미와 추가 공존한다. 극도의 아름다움과 극도의 추함. 이 둘은 하나의 컷 안에서 성역도, 경계도 없이 화끈하게 맞다이로 붙는다. 자신이 얼마나 이상하게 그릴 수 있는지, 혹은 얼마나 아름답게 그릴 수 있는지 단 두 가지만 생각한다(다비치 매거진, 1998.10)는 그의 신념 덕분에 우린 끝없이 분열하고 확장되는 공포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다. 그리고 기꺼이, 중독된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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