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and Music
패션의 역사에서 음악은 항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패션의 손이 닿지 않는 감각의 영역을 인간 본능과 가장 가까운 예술 장르인 음악이 대신 채워 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협업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음악은 언제나 많은 디렉터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었고, 대중들은 브랜드의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플레이리스트를 염탐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패션과 음악의 만남, 이 둘만의 은밀한 관계 속 로맨틱한 울림에 대해 살펴보자.
피비 파일로 (Phoebe Philo) CELINE가 절제된 페미닌함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면, 이에 반해 2019년 이후, 에디 슬리먼 (Hedi Slimane)의 뉴 CELINE는 화려한 락 시크적 무드가 강하다. 에디는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록 음악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드러내 왔었기에, 그의 손을 거쳐간 작업물에서도 동일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The White Stripes의 Jack White와 함께한 CELINE의 프로젝트.
최근 로스앤젤레스의 랜드마크인 월턴 극장 (The WILTERN)에서 개최된 2023 FW 컬렉션의 오프닝 곡 역시도 에디의 이런 한결같은 음악 취향이 엿보였다. 미국의 락밴드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The White Stripes)의 ‘Hello Operator’에 맞추어 캣워크를 펼치는 모습은 새로운 음악 장르에 치여 맥을 못 추던 락 팬들의 추억 속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에 더해, 런웨이 이후 진행된 라이브 퍼포먼스에서는 이기 팝 (Iggi pop), 더 스트록스 (The Strokes), 인터폴 (Interpol), 더 킬스 (The Kills)의 공연이 이어졌는데, 이 모두가 락의 역사를 거론할 때 절대적으로 언급될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었기에 패션계는 물론 음악계까지도 이 컬렉션에 주목할 정도였다.
CELINE 2023 FW
심플한 비트의 테크노, 공간감이 풍부한 엠비언트, 차분한 클래식 위주였던 런웨이 음악에서 정통 락의 등장은 흔한 일은 아니다. 자칫하면 기복이 심한 멜로디와 파워풀한 연주에 가려져 메인인 의상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디는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꾸준히 밴드 음악을 런웨이와 패션 필름 등에 사용하며 CELINE를 서서히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락 소울을 단지 디자인적 무드뿐만이 아닌 청각적으로도 전달하려는 입체적 표현의 시도를 반복해 온 것이다. BLACKPINK의 리사와 함께한 향수 론칭 영상에서 흐르는 벨벳 언더그라운드 (The 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나 크라우트 락의 개척자인 독일 락밴드 캔 (Can)의 Vitamin C가 삽입된 2022 SS 컬렉션 필름은 익숙한 선곡이 영상의 몰입감을 높였던 대표적 케이스다.
CELINE 2022 SS
뉴 CELINE 역시 트렌드의 궤도에 무사히 안착하면서, 에디 슬리먼은 이제 불패의 신화가 되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성공적인 커리어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고집스러운 취향 덕분에 2019년 이후, CELINE에게 벌어졌던 당황스러울 만큼이나 급작스러운 변화가 락의 저항 정신을 기반으로 한 타당한 개혁이였음을 성과로써 납득시켰으니 말이다. 2020년 4월, BRITISH VOGUE와의 인터뷰에서 에디는 “당신이 듣는 것과 보는 것은 모두 하나의 전체이자, 하나의 세계의 일부분”이라는 인상적 말을 남긴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앞으로 전개될 CELINE의 컬렉션이 당신의 감각을 더욱 다채롭게 자극할 것임을 예고한다.
LEMAIRE의 공식 홈페이지엔 특별한 카테고리가 있다. 바로 LEMAIRE & MUSIC. 이곳엔 런웨이에서 사용한 음악들은 물론, LEMAIRE의 무드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주제들로 큐레이션 된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이 중엔 일본의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나 한국 대중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산울림과 같은 저명한 뮤지션은 물론, 각자만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색을 확고히 쌓아가는 인디, 컬트 뮤지션의 음악까지 수록되어 있다. 천문학적인 수의 곡들이 넘쳐나는 소리의 바다에서 LEMAIRE의 빛깔을 품은 노래들을 브랜드가 직접 선별해 두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음악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들 덕분에 음지의 뮤지션들은 대중에게 노출될 절호의 기회를 얻었고, 또한 LEMAIRE 역시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그들만의 고유의 분위기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으니 결국 서로 윈윈인 셈이다.
LEMAIRE의 수장 크리스토프 르메르 (Christophe Lemaire)는 2014년 VOGUE와의 인터뷰에서, 청춘을 대표하는 노래로 비지스 (Bee Gees)와 큐어 (Cure)를 꼽으며, 스스로를 탐욕스러운 음악 애호가라 칭했다. 나아가 런웨이의 제작과 연출에 있어 음악이 미치는 영향력이 중대함을 강조했는데, 전체 분위기의 조성은 물론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스타일 자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일례로 2018 SS 컬렉션은 독일 프로그 락과 80년대 초반 밴드에 관한 것으로써, LEMAIRE는 패션과 음악이라는 두 영역의 관계성을 이러한 결과물로 몸소 증명했다.
LEMAIRE 2018 SS
2011년부터 LEMAIRE의 음악적 파트너를 도맡았던 필루스키 (Pilooski) 역시도 전위적 음악 스타일로 프랑스 인디신에 이름을 날렸는데, 그가 창조해 낸 런웨이 음악 역시 소리와 적막이 적절히 어우러진 낯설지만 신선한 울림으로 관객을 유혹했다.
“청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 원했다”
는 필루스키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곡이었다.
LEMAIRE의 음악적 파트너 Pilooski
LEMAIRE의 플레이리스트 속 장르나 나라, 방식을 구애받지 않는 곡들의 향연은 이제껏 그들이 보여준 행보와도 일맥상통한다. LEMAIRE의 런웨이에선 그 어떤 쇼보다 다양한 인종과 나이, 직업 등의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2020 FW 컬렉션에서 카를로스 백을 메고 등장한 한 노인의 정성스러운 위킹은 그 어떤 캣워크보다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미국 원주민 출신의 포크 아티스트인 조셉 요아쿰(Joseph E. Yoakum)과의 협업 역시도 그들이 다문화적인 색채를 디자인에 녹여내려 하는 적극적인 시도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경계를 허물고, 타인을 환대하며, 조건을 초월한 모두에게 어울릴 만한 ‘무엇’을 만드는 일. LEMAIRE야 말로 이 성스러운 작업을 부여받기에 가장 적합한 브랜드가 아닐까?
Joseph E. Yoakum의 그림이 프린트 된 의류와 가방
LEMAIRE 2020 FW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