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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음악 사이, 그 애틋한 관계성에 대하여 2편

Fashion and Music


Stories: Fashion & Music


패션의 역사에서 음악은 항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패션의 손이 닿지 않는 감각의 영역을 인간 본능과 가장 가까운 예술 장르인 음악이 대신 채워 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협업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음악은 언제나 많은 디렉터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었고, 대중들은 브랜드의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플레이리스트를 염탐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패션과 음악의 만남, 이 둘만의 은밀한 관계 속 로맨틱한 울림에 대해 살펴보자.




GUCCI: 힙스터의 성역


팬데믹 시대 속, 패션계는 더 이상 대면 런웨이를 진행할 수 없음에 대한 리스크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이에 컬렉션 필름은 잠재적 고객들과 온라인상으로 소통이 가능하고,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을 고유의 영상미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있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었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알렉산드로 미켈레 (Alessandro Michele)로 파격적인 디렉터 교체를 감행한 뒤 승승장구하던 GUCCI가 재미난 기획을 선보였다. 2021년 발표한 컬렉션 필름 ‘GUCCI Aria’가 바로 그것이다.


시작부터 세계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릴 펌프 (Lil pump)의 GUCCI Gang에 맞춰 캣워크를 하는 모델이라니! 다가 이후 이어지는 곡들 역시 제목에 GUCCI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점이 재치 있고 신선했다. 릭 로스 (Rick Ross)의 Green GUCCI Suit, 배드 베이비 (Bhad Bhabie)의 GUCCI Flip Flops, 다이 앤터워드 (Die Antwoord, Dita Von Teese)의 GUCCI Coochie까지. 모두가 발칙하고 발랄한 악동 이미지로 인기를 끈 젊은 뮤지션들이었다.


©gucci.com


2009년 새로운 CEO를 영입한 이후로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던 GUCCI가 트렌드를 좌지우지하는 힙합 뮤지션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 시작한 것은 역시 2015년, 알렉산드로의 출현부터다. 온몸을 GUCCI로 휘감고 다니는 힙스터들의 모습은 제품을 소비하는 세대 자체의 연령대를 확장시키고, 오랫동안 고여있던 GUCCI의 행보에 큰 수확을 안겨준 데에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그래서인지 ‘GUCCI Aria’는 마치 이에 대한 감사 인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racked.com

Lil Pump


©nextluxury.com

Scott Dudelson




한편 다른 런웨이에선 절제된 클래시컬한 음악들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 역시도 GUCCI의 디자인적 지향점과 일치한다. 현대적인 복장에 르네상스적 요소를 가미해 고전미를 더하는 것이 알렉산드로의 장기니까. 컬렉션 발표 장소 역시 매번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을 선정하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라면 이해가 쉽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2023 SS Twinsburg 런웨이에서, 음악을 맡은 프로듀서 구스타브 루드만 (Gustave Rudman)은 과거 위크앤드 (The Weeknd), 라브린스 (Labrinth)와 함께 작업했던 이력과는 달리 보다 클래시컬한 현악기 위주의 음악을 선보였다. 대신 연주 중간에 마치 질문을 던지는 듯한 내레이션을 첨가하여 현대적인 느낌도 공존하도록 설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의 문화를 적절히 믹스매치시켜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GUCCI. 그들이 꿈꾸는 미래는 결코 잊지 못할 추억들도 함께 공존하는, 아련하고 기이한 세계다.




BALENCIAGA: 해체주의 DNA


BALENCIAGA의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와 뮤지션 비프렌드(BFRND). 이 둘은 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쿵짝이 잘 맞는 듀오다. 뎀나가 2014년 VETEMENTS 설립할 당시부터 쭉 함께해 온 비프렌드는 이제 BALENCIAGA의 퍼즐을 이루는 한 조각이나 다름없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사실 뎀나 이전의 BLENCIAGA는 한물간 브랜드 취급을 받고 있었는데, 그가 처음으로 참여한 2016 FW 컬렉션이 공개된 이후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기대 이상, 상상 이상, 마치 DNA가 재조합된 듯 뼛속까지 달라진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과장된 어깨와 긴 소매, 기존의 것들을 분해한 재료들로 재탄생한 재킷과 팬츠, 하지만 절대 웨어러블함을 잃지 않는 뎀나 특유의 디자인은 패션계에 어마어마한 돌풍을 일으켰으며 시즌의 전 제품군이 대부분 솔드 아웃 될 정도의 큰 성과를 이루어냈다.


12.jpg ©dazeddigital.com

BFRND



기존에 존재하던 것을 해체하고 파괴하여, 고정관념을 전복시키고 그로부터 야기된 혼란 속에서 긍정적인 해답을 찾는 뎀나의 해체주의적 철학은 2021년 Summer Pre-collection 필름에서 비프렌드의 곡을 만나 완벽한 합을 이룬다. 영상 내내 선글라스를 착용한 모델들이 등장해서 인지, 컨셉과 딱 들어맞는 ‘Sunglasses at Night’이란 곡은 원래 1984년 캐나다 뮤지션 코리 하트 (Corey Hart)의 곡을 커버한 것이다.


그 당시에도 빌보드 핫 100 7위까지 올랐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곡이었는데, 거의 40년 가까이 된 이 노래가 2021년 비프렌드의 손을 거쳐 다시금 이토록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게 된 것이다. 가사를 살펴보면, 뭔가 미스터리한 곡의 분위기와는 달리 남성인 화자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애인의 외도를 애써 외면하며 괴로워하는 이야기다. 여기서의 선글라스는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남자를 보호하는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등장하는데. 아, 그래서 캣워크를 펼치는 모델들의 표정이 그토록 분노에 가득 차 보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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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gs.com, ©vogue.com

Corey Hart가 표지를 장식한 매거진을 들고 좋아하는 팬들의 모습


©officemagazine.net

BALENCIAGA 2021 SS


이러한 비프렌드의 ‘커버 작업’이 기존의 곡에서 필요한 부분을 추출하여 재구성한다는 데에 의미를 둔다면, 창작에 있어 뎀나와 비프렌드의 철학은 이 지점에서 비로소 온전히 맞닿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BALENCIAGA의 2023 SS 컬렉션의 진흙밭 일색인 풍경과 비프렌드의 음악이 가진 불안하고 무거운 분위기 역시도 묘하게 어우러지며 아포칼립스적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이제 런웨이 속 음악은 물리적 공간을 장식하는 것뿐만이 아닌 브랜드의 철학 자체를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비프렌드는 2020년 Numéro와의 인터뷰에서 뎀나와의 첫 만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곧바로 매료되고 말았다. 누군가 마침내 내가 이해하고 있는 언어로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패션과 음악, 각자의 영역에서 나름의 커리어를 쌓으며 협업까지 성공시킨 이 둘의 만남은 분명 운명일 것이다.




사랑의 정의에 대해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라 답한다. 패션과 음악의 관계 역시 이와 무척 닮아있다. 오랜 시간 동안 패션이 상업성만을 추구하는 분야란 불명예 속에 공격받고 있을 때, 음악은 그만이 본성이 가진 고유의 호흡으로 패션이 예술의 차원에 진입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런웨이 속 캣워크에 리듬을 실어주고, 컬렉션 필름에 완성미를 더하고, 고객의 소비엔 낭만을 심어주면서 말이다. 결국 이 둘은 열렬한 사랑의 한 방식을 통해 공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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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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