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Ranking New Brand Directors
Stories: Ranking New Brand Directors
누가 누가 잘하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열전
지금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대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브랜드의 흥망이 결정된다. 그러니 하이 패션계는 제대로 준비된 자에게 브랜드를 맡기는 일에 사활을 건다. 그리하여 준비했다. 지금까지 눈여겨 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5인’의 컬렉션과 그에 대한 에디터의 사심 가득 감상 콘텐츠.
“와, 잘한다.”
얼마 전 ANN DEMEULEMEESTER의 SS25 쇼를 보고선 절로 뱉은 말이다. 단 한 시즌만으로 물러나야 했던 비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드빅 드 생 세르냉가(Ludovic de Saint Sernin)를 뒤이어 ANN DEMEULEMEESTER가 선택한 인물은 바로 젊디젊은 96년생 신예 스테파노 갈리치였다.
신예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스테파노는 HAIDER ACKERMANN의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근무하며 경험을 쌓은 뒤, 지난 3년간 ANN DEMEULEMEESTER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일한 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내부 승진한 것이기 때문.
그가 보여준 컬렉션은 브랜드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화이트 셔츠와 중성적인 느낌의 앤드로지너스 테일러링의 블랙 자켓 그리고 가죽 액세서리를 적극 활용한, 말 그대로 ‘앤드뮐미스터’스러움의 향연이었다. 레이스 소재를 대거 활용하면서 섬세함을 살리고, 컷오프나 스트링을 더해 한껏 늘어뜨린 우아한 실루엣을 보여줬다. 거기에 펑크 록적인 요소까지 더했으니 시크한 무드를 좋아하는 패션 팬이라면 진심 환호할 수밖에 없는 조합. 쇼 직후 올라온 사진 중 가장 눈을 사로잡은 건 우수에 찬 눈망울의 모델(왼쪽) 마틴 이스마일(Mateen Ismail)이 소화한 처연한 룩!
이번 SS25에서 확실히 날개를 달았지만, 도시 외곽의 창고에서 공개된 그의 데뷔 쇼도 남달랐다. 레더 슈트로 그 서막을 알린 이 컬렉션은 특유의 절제된 관능미로 브랜드의 유산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으니.
스테파노 갈리치로 교체한 후 이 브랜드에는 분명 기대 이상의 기세가 있다. 흑백으로 가득한 그의 인스타그램은 ‘인간 앤드뮐미스터‘인가 싶을 정도로 브랜드가 새로이 나아가는 방향과 궤를 같이한다. 자신과 똑 닮은 아주 어둡고 로맨틱한 록커 스타일로 말이다.
에디터 감상 노트: ☆☆☆☆☆
96년생 영민한 신예가 보여준 흥미진진한 ANN DEMEULEMEESTER 세계. 앞으로 그가 그려갈 ANN DEMEULEMEESTER가 기대된다.
자기 색깔이 강한 디렉터를 꼽자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인물, 바로 알렉산드로 미켈레다. 긴 머리에 화려한 옷차림, 한껏 레이어드한 액세서리까지, 홀리한 느낌 가득 풍기는 그는 GUCCI의 새로운 부흥기를 이끌며 자신만의 판타지를 실현해 낸 주역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아름답고 화려한 고전적인 상징을 재조합해 만들어 낸 ‘맥시멀리즘’과 선명한 컬러와 프린트의 양말, 모자, 넥타이, 커다란 안경 등을 정신없이 매치시킨 ‘긱시크’로 패션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그. 워낙 스타일이 확고한 그이기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임명 소식이 들렸을 때, 어떤 VALENTINO가 탄생할지 어렴풋이 예상은 됐다.
어쩌면 로마 태생의 그가 로마를 대표하는 하우스의 수장이 된 건 운명처럼 보인다. 미켈레가 보여준 VALENTINO는 그 특유의 젠더 플루이드 스타일과 창립자 가라바니(Garavani)의 우아함이 어우러져 패션이 보여줄 수 있는 극강의 맥시멀리즘 황홀경으로 인도했다.
그럼에도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 하우스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LVMH, 케어링 그룹에서 돌고 도는데 ‘더 이상 새로움은 없는가?’라는 질문이다. 예전 GUCCI의 연장선상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이다.
에디터 감상 노트: ☆☆☆
미켈레맛 발렌티노. 그야말로 미켈레가 미켈레했다. 알아서 맛있는 맛이지만 새로움은 다소 부족하다.
이제 미켈레가 떠난 GUCCI다. 후임을 두고 누구를 앉힐지 말이 무성했지만, GUCCI는 잘 알려지지 않은 83년생 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 사바토 드 사르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한다. 처음 미켈레가 임명될 당시에도 무명에 가까웠던 걸 반추해 본다면, GUCCI는 꽤 대담한 선택을 하는 구석이 있는 브랜드다.
크래프트맨쉽과 테일러링을 강조하는 디자이너답게 사바토 드 사르노가 선보인 첫 번째 컬렉션은 그동안 맥시멀리즘의 대표주자였던 GUCCI와는 반대되는 단순하고 미니멀한 룩들을 다수 선보였다. 아래 컬렉션 사진만 비교해도 그 변화가 확 느껴질 것.
그의 GUCCI는 기본에 충실하다. 우아하면서도 세련되고, 젊고 대담하다. 이런 측면에서, 요즘 GUCCI 매장을 지나가면 볼 수 있는 기존 미켈레의 색이 반영된 화려한 인테리어를 좀 확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걸려 있는 옷과 공간이 주는 감각 사이에서 오는 괴리가 있어서다. 사바토 드 사르노의 실적이 더 잘 나오면 전 세계 매장의 인테리어가 바뀔까? (그저 추측이다.) 그 순간을 기다려 보련다.
에디터 감상 노트: ☆☆☆☆
섹시하다. 섹시함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믿는 에디터에게 사바토 데 사르노의 GUCCI는 그저 옳다. 최근 색깔이 가장 많이 바뀐 브랜드 중 하나지만.… 이 변화 꽤나 흥미진진하다.
2020년 PRADA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된 라프 시몬스. 벨기에 출신인 그는 패션계 대단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의 대표적인 브랜드 DIOR, 미국의 대표적인 브랜드 Calvin Klein에 이어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PRADA를 맡고 있으니. 나라별로 도장 찍듯이 각 하우스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보여 준 그. 이 리스트에 안 넣고 배길 수 있겠는가.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 이 둘은 어딘가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지점들이 있다. 미우치아의 여성을 돋보이게 하는 감각과 라프 시몬스의 미래지향적 펑크적 요소와 컬러, 패턴 플레이가 만나 완벽한 시너지를 이룬다.
PRADA FW21,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가 함께 선보인 첫 남성복 패션쇼.
언젠가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가 PRADA를 떠나는 때가 온다면, 라프 시몬스가 PRADA를 맡게 될 확률이 아주 높을 텐데, 둘이 함께하는 지금의 과정에서 라프는 온전히 브랜드를 자신의 걸로 만드는 방법을 익히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에디터 감상 노트: ☆☆☆☆☆
여타 하우스 브랜드처럼 갑자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바뀌면 급격한 변화가 찾아오기도 하는데, 이 둘의 캐미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언젠가 라프 시몬스가 디렉션을 온전히 잡는 날이 오게 된다면, 과연 PRADA는 어떤 모습일까?
리 알렉산더 맥퀸(Lee Alexander McQueen).
이 이름을 들으면 늘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누군가는 그를 두고 비운의 천재라고들 한다.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든 간에 그가 천재라는 사실은 반박할 수 없을 거다. 맥퀸이 보여주었던 아름다움은 추하고, 지독한 것들에게도 허락된 것이란 걸 알려주었기에 더 값졌다.
더 이상 그의 컬렉션을 볼 수는 없지만 Alexander McQUEEN의 유산은 유유히 이어지는 중이다. 생전 자기가 죽으면 브랜드를 더 이상 이어가기를 원치 않았던 그지만 절친이자 오른팔이었던 사라 버튼(Sarah Burton)이 어언 13년간 브랜드를 지켜준 걸 안다면 그럼에도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그렇게 사라의 챕터가 끝나고 ‘맥퀸을 이어받을 자가 누구일지’에 대한 주제는 패션 팬들의 유구한 관심사였다.
그렇게 나타난 션 맥기르. 패션계에 다양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지금, 또 백인 남성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오른 것을 두고 분명 달가운 반응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에디터 또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나, 인간의 마음은 예상치 못한 데서 또 쉬이 풀리는 경향이 있는 법이다.
션의 Alexander McQUEEN 데뷔 컬렉션이었던 FW24. 영상을 처음 틀었을 때 울려 퍼진 건 아일랜드 가수 Enya의 노래였다. 그 순간, 불신의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며 사실 옷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눈물을 닦으며 그 숭고한 순간을 곱씹었을 뿐이다. 쌉싸름하면서도 로맨틱하고 동시에 누군가를 애도하는 것 같기도 한 그 신비로운 체험. 떠난 자와 남은 자. 생전 맥퀸의 쇼처럼 화려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새로운 시작을 경건하게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그가 FW24 시즌부터 보여준 컬렉션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는 ‘커머셜함’이다. 맥퀸이나 사라 버튼과는 다른 점이다.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가 알렉산더 맥퀸을 ‘새롭게' 만드는 것일 만큼 어떤 하우스보다 발칙했던 노골적이었던 맥퀸의 유산을 그가 어떻게 풀어낼지가 궁금했다.
특히 맥퀸의 대표작인 범스터 팬츠(Bumster)가 그랬다. 밑위가 극도로 이 짧은 바지의 의도를 두고 맥퀸은 엉덩이를 노출하기 위한 게 아닌 “척추 아랫부분의 연장”이라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션이 새롭게 재해석한 범스터 팬츠는 노골적이지 않다. 여전히 엉덩이골에 걸치듯 입는 팬츠지만, 훨씬 웨어러블하게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다. 거기에 레이스를 더해 모던한 자신의 감각을 드러냈다. 이처럼 맥기르는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을 선보이며 하우스를 이끌어나갈 생각으로 보인다.
아래의 팬츠 또한 이전의 맥퀸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맥퀸의 커머셜함이 드러난다. 부츠 또한 맥퀸치고 다소 평범한 디자인이지만 메탈릭한 요소를 더해 알렉산더 맥퀸의 새로운 길을 열어 보였다.
이 글을 쓰다 문득 그리워진 리 알렉산더 맥퀸의 인터뷰 영상에서 만난 말을 공유한다.
“중요한 건 패션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거다. 이건 당신의 암이나 에이즈를 낫게 해주지 않는다. 이건 그냥 옷이다. 그러니까 나한테 거기 앉아서 그 재킷의 애스테틱이 어떻니 하며 말하지 마라. 이건 그냥 옷이니까.”
에디터 감상 노트: ☆☆☆
‘커머셜’하게 한다고 해서 실제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거기에 과거의 맥퀸을 그리워하던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또한 모르겠다. 그럼에도 맥기르에 기대를 한다. 리 맥퀸이 가졌던 어둡고 거친 면보다는 패션이 사람들을 낙관적인 방식으로 흥분시켜야 한다고 믿는 그의 철학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 소식. 이제 브랜드가 가진 기존의 이미지를 이어가는 것보다는 ‘변화’ 그 자체에 방점이 찍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 알던 것에 새로움이 더해져 생기는 변주는 언제고 흥미로우니. 앞으로도 패션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만들어 가는 변화에 주목해 주길.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